사시사철, 광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단돈 9900원에도 사시사철 우리를 위로하는 광어를 주제로 한 동화 혹은 연서를 읽어보자. | 박찬일,광어

그림형제의 동화 중에 아동 학대 혐의가 있어서 출판되지 못한 글들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도 그 얘기를 들은 바가 있다. 해적판이 있다는 말도 있었다. 운이 좋으면 헌책방에서 득템을 할 수 있다고도 한다. 지난여름, 베를린의 마우어 벼룩시장에 갔다. 허름한 옷을 입은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낡은 책을 몇 권 놓고 팔고 있었다. 권당 5유로. 내가 한 권을 집어 들고 뒤적거렸다.(독일어라 한 줄도 읽을 수 없었다.) 아저씨가 말했다. “사지도 않을 책을 들고 뒤적거리기만 하면 나는 뭘 먹고 살겠는가?”(이 독일어는 잘 들렸다. 왜냐하면 아저씨는 몹시 화가 나서 보디랭귀지가 격렬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책을 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번역기를 돌려서 책을 읽어보았다. 다음은 그 책의 비밀스러운 번역본이다. 옛날에 지독하게 부모님 말 안 듣는 한스가 있었다. 부모님이 화가 나서 저주를 퍼부었다. 불과 몇 살 먹지도 않은 한스에게 말이다. “한스! 넌 평생 중2병에 걸려 있을 거야!” 중2병. 세상에서 이보다 불치의 병은 없었다. 부모님의 저주를 들은 녀석은 더욱 화가 났다. “확 비뚤어져버릴 거야!” 놀랍게도 그 말을 마치자마자 정말로 녀석이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좌우대칭이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갔다. 없던 배가 생겨서 더러운 바닥에 닿았다. 배 쪽에 있던 눈이 더러운 바닥을 보고 살기 싫었던지 등짝으로 올라왔다. 눈 두 개가 서로 붙어 있었다. 두 눈에는 각자 이름이 생겼다. 먼저 등 쪽에 있던 눈이 배에서 올라온 눈을 깔보고 괴롭혔다. 배에 있던 눈이 예쁜 여자를 보면 얼른 상납하라고 을러댔다. 가끔 팬티도 빨라고 시키는가 하면, 썩은 멍게를 던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갑질한다고 비난했다. 그래서 두 눈 형제의 이름은 각각 갑질과 을질이었다. 이들의 부모님은 민어였다. 이상하게 몸이 바뀐 한스를 아들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너는 중2 같은 놈, 미친 녀석이니 앞으로 광어라고 부르마! 광어(狂魚)라는 신종 어류가 생긴 건 아동 학대, 갑질 문화의 어떤 상징으로 남았다. 이 책이 그림형제가 활동하던 보수적인 시기에 세상에 나올 수 없었던 건 당연했다.일찍이 에서 끔찍한 장어 같은 고기를 즐겨 다루던 귄터 그라스가 라는 이상한 소설을 쓰지 않을 리 없었다. 소설사에 이처럼 기괴하고 놀라운 소설은 드물 것이다. 인류보다 더 오래 살아온 넙치가 법정에서 온갖 설레발을 치는 얘기니까 말이다. 일독을 권한다. 초장 바른 광어회는 안 나온다. 농담을 하다 보니, 광어에게는 참 미안하다. 세상에서 제일 조용한 고기인데, 괜히 ‘狂魚’니 어쩌니 말도 안 되는 말을 떠벌렸다. 횟감의 왕이 광어가 된 것은 녀석 특유의 성격 때문이다. 바닥에 너부죽 엎드려 군소리 없이 주는 사료만 먹으면서 살을 찌운다. 게다가 맛도 좋다. 노래미 따위가 아무리 맛이 좋았던들 그처럼 양식을 많이 했을 리 없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양식한 광어는 거의 버터 먹여 기른 것 같다. 기름지기가 이를 데 없다. 광어는 먹이를 기름으로 바꾸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내 배와 흡사하다. 그냥 단백질을 먹어도 지방으로 변환시키는 신묘한 기능을 갖고 있는 듯하다. 기름진 광어회는 혓바닥에 척척 붙는다. 기름기가 넘쳐서 본드 바른 것처럼 붙는다. 광어는 게다가 잘 상하지도 않는다. 도미랑 광어랑 회를 떠 와서 깜빡 하고 그 다음 날 밤이 됐다고 치자. 도미는 안 먹는 게 좋지만 광어는 전혀 문제없다. 위생적으로 잘 포를 떠서 포장한 놈이라면 말이다. 잘 상하지 않으니까 이자카야 같은 곳에서도 사랑 받는다. 횟집이야 대개 즉석 활어회를 치니까 숙성이고 나발이고 없지만, 이자카야나 일식 집은 떠 놓은 포가 있게 마련이다. 하루쯤 두어도 그걸 ‘숙성’이라고 부를 정도라면 얼마나 사랑 받는 고기이겠는가. 오늘도 나는 귀갓길 길목에서 ‘광어 한 접시 9900원’ 같은 문구에 유혹 당한다. 저 한 접시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손바닥만 한 걸 뜻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더구나 싸기까지 하다. 남쪽 바다는 물론 동해안에서도 양식한다. 옛날 속초 같은 곳에서 회를 시켰더니 태풍도 없었는데 접시에 광어와 우럭만 있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얼마나 바보로 보였으면 그랬을까 싶다. 그때는 다른 데서 날라 온 횟감이었겠지만, 이제는 동해안산도 있다. 뭐, 깨끗한 바닷물을 퍼 올려 육상에서 양식할 수 있으니까 어디든 장소가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 양식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고, 성격 순하고, 맛도 좋고, 가격도 싸니 광어가 아주 만만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도에 가면 육상에서 기르는 광어양식장이 꽤 있다. 바다는 파도가 세서 가두리 양식을 못하니까 바다에서 가까운 땅에 양식장을 짓는다. 까만 비닐을 덮어쓰고 있어서 무얼 기르는지 알기 어렵다. 안에 들어가면 너무도 조용해서 이곳이 양식장인지 알아챌 수 없다. 수조가 지어져 있는데, 녀석들은 맑은 물 안에서 조용히 바닥에 누워 있다. 등을 대고 있는 게 아니니까 엎드려 있다고 해야 하나. “일본에서 아주 인기가 좋아요. 맛도 좋고 값도 싸니까. 이 녀석이 얼마나 순하냐면 잘 재워서 비행기로 싣고 가면 미국 뉴욕까지 산 채로 간다니까요.” 마취용 침이나 가스를 쓰는 걸 양식업자는 이렇게 말했다. 무얼 쓰건 광어가 여북하니까 거기까지 조용히 가는 것 아니겠는가. 고등어를 그렇게 해서 싣고 간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원래 광어야말로 금싸라기 고기(였)다. 그물질로 잡을 수 있는 고등어나 전어도 아니고, 이 녀석들은 주낙을 써야 잡는 고기였다. 낚시질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봄에 광어가 몸이 근질근질해서 서해안을 들쑤시고 다닐 때는 광어낚시가 흔하다. 옛날처럼 뻥을 치기 힘들다는 게 좀 섭섭하지만. 옛날에는 스마트폰도 없고 어탁(魚拓)을 떠놓지 않는 한 고기 크기를 알 수 없었다. 대개 자신의 뇌의 한 부분에 저장해두었다가 입을 사용하여 술자리에서 재생시키는 게 특기다. 문제는 재생이 거듭될수록 고기 크기가 커진다는 점이다. 처음 ‘이따만’하다고 하면서 팔뚝을 휘두르던 크기가 나중에는 “빨래판보다 조금 더 컸”다고 하며, 종국에는 “애들 두엇 태우고 다녀도 될 정도로 컸”다가는 어떤 경우에는 “선장이 옆에 세우고 사진을 찍자고 했는데 그 양반 어깨에 주둥이가 닿더라”는 데까지 간다. 봄 광어는 사실 맛이 없다. 산란하려고 서해안을 슬슬 돌아다니다가 심지어 그물에도 걸리는 게 봄 광어다. 대체로 5월부터 6월까지 광어가 잘 잡힌다. 이 무렵, 서울 어디를 다니다가 ‘자연산 광어 입하’ 어쩌구 써 있는 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건 선수들은 안다. 그 무렵, 노량진수산시장에 가면 광어가 산이다. 그것도 자연산으로. 얼마나 큰지 멀리서 보면 수산시장에 보트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광어 고르는 법이라고 검색하면 지느러미 쪽 살을 집어봐서 두툼하면 좋다고 나와 있다. 이건 틀림없이 수산시장 아저씨가 쓴 글이다. 실제로 우리 같은 호구가 수산시장에 가서 그런 숨겨진 기술을 구사할 수 없다는 걸 아는 이가 썼다는 말이다. 자, 당신이 수산시장 활어골목에 광어를 사러 갔다고 치자. 거의 헤드록을 걸거나 발목에 부메랑을 던지지 않았다 뿐이지 악착같이 당신을 유혹하는 삐끼들을 피해서 원하는 집을 찾아갈 수나 있겠는가. 원하는 집이 어딘지도 사실 모르지만. 아저씨를 따라가 딱 5초면 저울에 올라가 있는 광어와 우럭을 보면서 지갑을 열게 될 것이니까. 여차여차해서 어느 집에 가서, 광어 몸통의 살 밥이 두툼한지, 지느러미 쪽을 손으로 잡아서 고개를 끄떡일 수나 있을까. 아닌 말로 마음씨 착하고 욕심 적은 아저씨가 나를 살살 다뤄주기를 비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아니면 집에다가 양어장을 꾸미고 순한 광어를 받아다가 길러보는 것도 좋겠고. 아 참, 그러면 당신은 절대 광어회를 못 먹는다. 이름 붙여주고 먹이 주다가 정 들고 나면 그걸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는가. 오늘도 나는 귀갓길 길목에서 ‘광어 한 접시 9900원’ 같은 문구에 유혹 당한다. 저 한 접시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손바닥만 한 걸 뜻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면 내가 주문을 하면 틀림없이 “아이쿠 막 떨어졌습니다요.” 같은 말을 듣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어찌 되었든 광어가 이토록 싼 것은 한국 양식업 기술을 보여주는 상징이면서 동시에 양식업자들이 달리 기를 고기가 별로 없다는 뜻도 된다. 많이들 드시라. 그래도 우리를 위로할 생선회가 광어 빼면 또 뭐가 있겠는가. 더구나 그 맛이 자연산이고 나발이고 혀에 살살 녹는 맛이니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