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를 꿈꾸던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스펙과 능력에 차이가 없는 남자에게 ‘오직 여자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밀리는 것은 여자 입장에서는 테러를 당하는 기분이다. 이건, 불평등한 승진을 대하는 ‘여자 마음 설명서’다. | 페미니스트,커리어,비즈니스,강경화,김현미

새 정부는 인사를 통해 수많은 ‘최초’를 기록하고 있다. ‘70년 외교부 역사상 최초의 여성장관’, ‘최초의 여성 국토부 장관’을 비롯해 19개 중앙 부처 중 4개 부처의 수장이 모두 여성으로 내정돼 ‘최초로’ 여성 장관 30%를 기록했다. 많은 이들이 이에 박수를 보낸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언답게, 대통령은 매우 ‘성평등한’ 인사를 보여줬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물론 이전 정권과 비교하자면 그렇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 여성 대통령임에도 여성 장관이 11.1%에 불과했고, 그 이전 정부 역시 10% 미만이었으니 독보적인 발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학창 시절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동등하게 스펙을 쌓으며 커리어를 시작했음에도 여성들은 왜 ‘리더’의 위치에 고작 30%의 비율조차 점유하기 어려운 것일까?도대체, 리더를 꿈꾸며 시작한 그 많은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여성 리더 30%를 사수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 되는, ‘최초’라 칭찬받는 사회. 그것은 ‘남성 중심이라 일컬어지는’ 공공부문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 전 분야에서 여전히, 매우 고르고, 극명하게, ‘유리천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견고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직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승진에 미끄러지고, 임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꿈꿀 수 없는 현실, 그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이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입증된 바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28개 OECD 국가 중 최하위 점수를 기록하며 3년 연속 꼴찌에 자리매김했다.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대졸자의 비율은 47%, 전문직 비율은 40%, 고용률은 49.3%로 크게 늘었지만 각 기업의 중간관리직 및 선임 관리직의 비율은 6%에 불과하며 2%만이 고위직에 오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대학진학률, 전문직, 고용률 등의 수치는 남녀가 거의 동등한 상황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관리직이나 고위직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이와 같이 여성의 커리어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발전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들은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주된 요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성의 타고난 생애주기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실제로 커리어 현장에는 결혼, 임신, 육아 등을 병행하면서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성들이 상당히 많죠. 게다가 경력단절 없이 그대로 커리어를 유지하고 있는 여성들조차 동일하게 부당한 현실을 겪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지 경력단절 문제를 넘어서는 보다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차별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헤드헌팅 업체 파인의 강연희 상무의 지적처럼 말이다. 최근 2030 여성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2.9%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승진 차별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절반에 가까운 여성들이 승진차별을 몸소 실감하고 있다는 것. 외국계 무역회사로 이직해 성차별에 시달리고 있는 이한별 씨(29세)가 바로 그런 경우다. “외국계 회사에는 이전에 다니던 국내 기업과 달리 성차별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었어요. 중요한 거래처들은 성과나 실력에 관계없이 무조건 남자들 담당이 되더군요. 제가 담당하는 거래처는 항상 대만, 동남아시아쪽인데 반해 저보다 경력이 한참 부족한 남자 직원은 유럽, 미국 등 큰 거래처를 맡게 됐고요. 게다가 제가 기획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미팅에 가면 프레젠테이션은 무조건 남자 직원만 하게 했어요.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업무에 전부 남자가 배치되니 당연히 남자들이 고과도 높게 받고 승진도 빨리 하지 않겠어요?” 그녀는 이러한 부당한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컴플레인을 했고, 주도적으로 업무를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돌아온 대답은 그런 건 ‘원래’ 남자가 해야된다는 식의 납득도 안 되는 변명뿐이었어요. 이런 차별이 없는 회사로 이직하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주변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그나마 제가 사정이 나은 것 같아서 망설이고 있죠.”남초 회사의 경우 그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팀 내에 저 혼자 여자예요. 공채로 입사해 힘든 점도 있었지만 업무가 적성에 잘 맞았기에 그럭저럭 잘 다니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제가 하는 일은 남자 직원들을 서포트하는 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는 주로 자료를 만드는 일을 하는데, 이 자료를 활용해서 성과를 내는 건 저의 남자 입사동기들이더군요. 애초에 다른 조건으로 입사를 한 거라면 몰라도 같은 조건으로 같은 직무에 입사했는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중심 업무에서 배제된 거예요. 심하게 남초인 회사라 제가 반발하면 할수록 제 입지만 좁아지더군요. 왕따가 된 듯한 이 상황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지금 이직을 준비하고 있어요.” 국내 제조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서진씨(33세)의 이야기다. 남성과 동일한 스펙, 경력, 자질을 갖춘 여성들이 남자들의 서포터즈로 전락해 살아가고 있는 현실. 남성 중심의 조직 속에서 여성은 부서 배치, 업무 분담 과정에서 차별을 받고, 그로 인해 인사 고과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며, 결국 승진에서 누락되는 매우 주도면밀한 차별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인사평가를 할 때, 팀 별로 상대평가가 이뤄지죠. 팀 인원이 5명일 경우 A,B,C,D,E 중 누군가 한 명은 E를 받아야 하는데, 여기서 이유없이 하위로 평가되는 여자가 많아요. 성과평가를 하기 애매한 부서의 경우는 야근시수로 평가를 하기도 하죠. 야근을 많이 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여자들은 야근을 기피하고, 남자들은 야근을 불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남자들이 높은 점수를 받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 어떤 식으로든 남자를 먼저 승진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여자가 없죠.” 민우회에서 발간한 소책자 에 담긴 어느 인사담당자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회사라는 조직 속에서 ‘남성 리더 양성’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애쓰는 광경을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다. “회사가 여자 직원을 키우기 위한 노력은 1도 안 한다고 보면 돼요.” 그녀가 남긴 이야기처럼 말이다.여자라는 이유로 업무에 대한 기회가 공평하지 않고, 자기 인정 욕구가 실현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동기를 얻고, 몰입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을 견뎌내고 어렵게 리더의 자리에 오른다 해도, 여성 리더를 불편하게 보거나 저평가당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더 열심히 노력하라’고 채찍질을 당한다. 국가 조직, 기업 문화가 남성 중심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상황 속에서 여성 개인의 노력을 촉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임에도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의 노력을 빛나게 할 사회구조상의 대대적적인 변화이다. “국가적으로 여성임원할당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죠. 선진국에서는 이미 도입해 이사회 여성할당제 의무화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기업들 역시 CEO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여성 리더 승진을 권장하는 회사 방침을 세워야 하고요.” 여성정책연구원 김난주 부연구위원의 조언처럼 말이다. 페이스북 CEO 셰릴 샌드버그 역시 남성 중심의 조직 개편을 촉구했다. “기업들은 성차별 해소를 위한 진척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직원들이 성차별, 편견을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성차별 해소를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 직장 내 여권 신장과 여성 임원 비율을 높인 세계 기업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국가적, 기업적 차원에서 성차별 해소를 위해 우선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추진한 최초의 일들이 우리 사회 전반에도 확산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여성이 리더인 것이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 되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