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피시, 병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버터처럼 살점이 연하고 부드러운 병어. 꼬리의 쫄깃한 살점, 등지느러미가 붙은 쪽의 담백한 살점, 기름진 뱃살은 회로 즐기고, 남은 서덜로는 조림을 한다. 제철 햇감자를 듬성듬성 깔고 양파며 마늘 다진 것과 향 좋은 고춧가루에 간장 뿌려서. 하얗고 부드러우며 ‘꼬순’ 병어가 입에서 녹아난다. | 병어

새벽 수산시장에 가면 빛나는 두 스타가 있다. 무슨 ‘쌍라이트’ 같은 빛이다.(조춘은 뭐하시나. 조춘을 모른다고? 음, 말하자면 이주일의 차력사 버전 같은 분이었다. 이주일도 모르면 할 말이 없고.) 하나는 갈치다. 아아, 제주 성산항에서 새벽 위판장에 가보면 알게 된다. 새벽인데도 위판장의 조도가 너무 눈부셔서 선글라스를 꺼내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을 대면 그대로 비칠 정도인데, 거짓말 좀 보태서 이마에 난 뾰루지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제다이의 검처럼 기다랗고 스스로 번쩍이는 칼이다. 그래서 갈치이자 칼치다. 갈치낚시를 실제로 보면 마치 바다에서 막 벼린 칼을 건져 올리는 것 같다.다른 빛은 병어다. 갈치만큼은 아니지만, 병어도 수산시장의 촉수 높은 전등 빛을 받아 반짝반짝한다. 두 어종의 얼굴은 아주 대조적이다. 갈치는 언제든지 살아서 사람을 물어뜯을 것처럼 험상궂지만, 병어는 유순한 강아지처럼 고분고분하게 보인다. 병어의 눈망울을 보면 도저히 회칼을 들이밀기 어렵다. 다행스러운 건 병어가 산 채로 유통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는 점이다. 병어는 잡혀서 얼음이 가득 든 나무 상자에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다. 작고 반짝이는 병어는 마치 별을 따다가 진열한 것처럼 보인다. 상인들은 작은 병어에는 ‘세꼬시감’이라고 써서 붙여놓거나, 입으로 호객을 한다. “이봐, 세꼬시 할 거면 다른 데 갈 필요 없어. 막 경매 뗀 거야. 물에 다시 던지면 헤엄친다고.”순하고 작은 눈을 뜬 채 얼음에 누운 병어의 시신이 물에서 다시 헤엄칠 리는 없겠지만, 그 말을 믿고 싶을 만큼 아름답게 반짝인다. 그게 병어다. ‘세꼬시’란 뼈째 써는 일본식 요리 용어인데, 그게 일본어인 줄 아는 요리사도 별로 없을 정도다. 한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세밀하고 꼬소하게 써는 법”이라고 대답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다. ‘세꼬시’는 작은 생선을 따로 살점을 회 뜨지 않고 그대로 가늘게 썰어내며, 뼈째 그대로 썰기 때문에 고소한 맛이 도드라진다.덕자병어는 두툼하고 넓적하다. 그래서 그걸 정리하는 걸 보면, 도서관 사서처럼 보일 때도 있다. 마치 책을 서가에 꽂듯이 세워서 차곡차곡 나무 상자에 담는다.노량진수산시장은 가게별로 주 전공이 있다. 대구와 왕문어를 잘 다루는 은하네가 있고, 고등어라면 눌러만 봐도 뭘 주로 먹고 살았는지 아는 진성집이 있으며, 병어 한평생의 품길상회도 있다. 품길상회는 처음에 ‘품질상회’인 줄 알았다. 그 오독은 실제랑 다르지 않았는데, 특히 병어의 품질이 좋았다. 더구나 크고 아름다운 멋진 병어 전문이다. 이 집을 지나갈 때면, 아 저 주인 내외분은 참 부자겠구나 하고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 비싼 병어를 산처럼 쌓아놓고 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다루는 병어 중엔 ‘덕자병어’도 있다. 마치 커다란 백과사전이나 최신호처럼 묵직하고 넓은 병어다. 한번은 일식 하는 내 친구한테 깜빡 속았는데, 암컷 대병어는 덕자병어이고, 수컷은 ‘덕구병어’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품길상회에 가서 주인 내외와 흥정하면서 “오늘 덕자랑 덕구 시세가 각각 얼마예요?” 하고 물어봤다. 이게 무슨 병어가 새벽에 해장술 마시는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분들이 나를 보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일식 하는 내 친구 영식이, 이 새꺄. 내가 개망신 당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덕자병어는 두툼하고 넓적하다. 그래서 그걸 정리하는 걸 보면, 도서관 사서처럼 보일 때도 있다. 마치 책을 서가에 꽂듯이 세워서 차곡차곡 나무 상자에 담는다. 그 상자에 열두어 마리의 덕자가 들어가는데, 아마도 상자 하나 값이 10년 몬 자동차 값이지 않을까 싶다. 진짜다. 덕자 한 마리에 5만원에서 시세에 따라 8만~9만원도 하는데 그게 열 마리 이상 들어간 상자라면 총액이 얼마겠는가. 그래서 품길상회 앞을 지나갈 때마다 노량진 마을금고가 따로 없네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작은 병어는 조려서 애들 반찬을 하거나 술안주로 먹고, ‘세꼬시’로 썰어서 소주를 넘기는 데 좋지만 덕자는 나름 다루는 솜씨가 있어야 한다. 여의도의 유명한 한국형 일십집 ‘쿠마’의 김셰프는 말했다. “이런 덕자를 손님상에 올리는 걸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 내가 알기론 여수의 41번 포차 ‘박덕자 여사’다.” 이 집에 가서 내가 이렇게 물었다.“지금 써시는 게 뭐다요?”아짐은 혼자 웃는다. 그러면서 들릴락 말락 하는 소리로 “덕자더러 덕자 써냐고 물어보는 거여 뭐시여?”이러는 것이었다. 이분 성함이 앞에 쓴 대로 덕자 씨다. 이 집은 덕자를 부위별로 먹어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집이다. 원래 여수시장 옆 연등천 하천가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분이다. 그때 상호를 시에서 강제로 붙였다. 1번부터 쭉. 관리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렇게 받은 번호가 41번. 지금도 그 상호 그대로인데, 가게는 다른 동네로 옮겼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천에서 지지고 굽는 일을 30년 넘기고 정식 가게를 얻은 것이었다. 그래도 이름은 그대로 41번 포차. 이 집에 이맘때 가면 덕자를 얻어먹는다. 마치 참치처럼 부위별 해체를 한다. 꼬리의 쫄깃한 살점, 등지느러미가 붙은 쪽의 담백한 살점을 내고, 뱃살은 기름지게 해서 회로 또 낸다. 이 뱃살을 한번 얻어먹으면 여간해서 다른 회를 못 먹는다.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하얗고 부드러우며 ‘꼬순’ 뱃살이 입에서 녹아난다. 사람 입안의 온도 36.5°C에서도 기름이 녹는 것 같다. 융점 낮은 기름인 것 같다. 우물우물 입에서 한번 굴리면 녹아버린다. 소설가 한창훈 선생이 ‘구름 같다“고 표현한 그 맛이 아닐까 싶다. 병어는 영어로 버터피시다. 버터처럼 살점이 연하고 부드럽다는 뜻이렷다. 그렇다. 익히지 않아도 덕자의 뱃살은 녹는다. 그리하여, 내 몸과 마음도 녹아버린다.아짐, 덕자의 신(神) 박덕자 여사는 남은 서덜로 조림을 한다. 병어 제철이 햇감자 나올 때다. 큰 햇감자를 듬성듬성 깔고 양파며 마늘 다진 것과 향 좋은 고춧가루에 간장 뿌려서 조림을 한다. 횟점을 우물거리고 있으면, 묘하게 식욕이 당기고 탄수화물이 끌리는데 그 시간에 어김없이 박덕자 여사의 별미 병어조림이 나온다. 밥을 시켜서 썩썩 비벼서 먹어도 좋고, 병어조림만 먹다가 나중에 기막힌 김치를 곁들여 밥 한술 떠도 좋다.시절에 따라 생선처럼 가치가 많이 변한 것도 드물다. 한때 너무 많이 잡혀서 삽으로 퍼 담아서 사료로 썼던 정어리가 이젠 시장에 나오기만 하면 값도 묻지 않고 사 가는 물건이 되었으며, 무한리필을 해주던 고등어가 이젠 달랑 한 토막에 술안주로 2만원씩 받는 세상에 되었다. 병어도 마찬가지다. 한때 병어는 가난한 자들의 술안주였다. 인천사람들은 병어를 먹고 자랐다. 동인천에 삼치골목이 생겨서 값싼 삼치구이에 막걸리로 배를 채우던 청춘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밴댕이골목에 가서 밴댕이와 병어로 주린 배를 채우고 술로 해갈했다. 그때 병어는 싸고 넘쳤다. 병어는 거의 사철 나오는 생선이었고, 맛도 좋았다. 값이 싸고, 내장은 적고, 대가리도 작아서 살점이 넓은, 도대체 악덕이라고는 없는 멋쟁이였다. 차이나타운 앞, 언덕길이 시작되는 곳에 바로 밴댕이골목이 있었고, 지금도 건재하다. 이곳의 터줏대감은 수원집이다. 서점분 여사가 이 집에서 아직도 병어를 썬다. 날이 시퍼렇게 선 칼로 쓱싹쓱싹 병어를 도륙 낸다. 포를 뜰 정도로 큰 병어도 있고, 뼈째 썰기에 알맞은 작은 놈도 있다. 지금 병어철이니 한번 들러보시길 바란다.갓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 우리들은 인천에 갔다. 서울내기들에게 인천은 제법 먼 곳이었고 여행의 맛이 있었다. 인천행 전철을 타고 동인천에 내려서 연안부두행 버스를 갈아타고 들어갔다. 회센터가 그때도 있어서 호객을 했다. 돈을 탈탈 털어봐야 그때 5천원이나 있었을까. 그 돈으로 먹을 수 있는 회는 병어밖에 없었다. 아주머니가 한 접시 가득 병어를 썰어 냈다. 회를 그때 배웠고, 병어회 맛은 혀에 문신처럼 남아서 잊혀지지 않는다. 바닷물 냄새, 병어의 부드러운 살점, 어금니를 건드리던 병어 등뼈의 억센 촉감, 그리고 회센터 안으로 불어들던 인천 짠바람이 볼에 달라붙던 시간들이 있었다. 다시 돌아가지 못할, 다시 먹을 수 없는 병어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