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헤어진 남자의 SNS에서 하는 일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어쩌면 해서는 안 되는 일. | 인스타그램,SNS,연애,페이스북,전남친

1. '좋아요'라는 단서 이별 후 인스타그램은 온갖 추측의 무대가 된다. 참으로 잔인하게도, 아직 팔로우 상태라면 그의 SNS 활동을 ‘대충’ 감지할 수 있다. (이왕 될 거면 좀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주면 좋을 텐데!) 뭘 먹고 어딜 갔는지는 말할 것도 없고, 네가 남긴 댓글, 네가 누른 ‘좋아요’ 그리고 너의 새로운 ‘인친’까지, 그의 일상과 관심사, 심리를 짐작할 수 있는 정보들이 넘쳐난다. 자, 이제 셜록 홈즈 급의 열정과 실력을 발휘해 추적 또 추적하는 일만 남았다.로그인과 로그아웃 시간 정보를 알려주는 페이스북은 또 어떤가. 보지도 않던 메시지 창을 들락날락, 네가 언제 로그아웃 했는지, 혹시 너도 나 때문에 SNS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온갖 추리력(착각)을 끌어 모은다. 솔직히 말하건대, 이건 구질구질한 미련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본능일 뿐이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는 거다.2. 태그된 그 여자 이게 누구? ‘매의 눈’으로 그의 피드를 살피다 보면 자주 댓글을 남기는 혹은 모든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 유별난 이성이 눈에 들어온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나. 이건 그 여자가 태그된 사진 한 장이 덜컥 업데이트될 때가 다가왔다는 뜻이다.3. #해시태그 속 수만 가지 이야기 너의 사진 밑에 붙은 #해시태그. ‘#idontwannaloveyou’ ‘#밤의_해변에서_혼자’ 등 의미심장한 노래, 영화 제목부터 #다귀찮아 같은 일상 태그까지, 그 속엔 수만 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수능 볼 때는 잠잠하던 창의력이 갑자기 폭발해 단 한 문장이 만 갈래로 뻗어가기 시작한다. (그보단 그의 새 여친 피드에서 자주 발견되는) ‘#럽스타그램’ ‘#커플’ 태그의 경우엔? 유치하다고 욕하면서도 치밀어 오르는 짜증만은 감출 길이 없다.4. ㅊㅅㄱㅇ싸이월드 시절 구남친 미니홈피 BGM을 들으면서, 함축적이기 그지없는 대문글과 다이어리 글귀에(거의 시에 가깝다.) 울고 웃던 날들을 기억하는지? 이젠 그 ‘시’가 진화했다. 네이버에 ‘카톡 초성’으로만 검색해도 구남친, 구여친의 상태메시지를 해독해달라는 요청이 끝도 없이 등장한다. 'ㅂㄱㅅㅇ(보고싶어)' 'ㅁㅇㅎ(미안해)' 같은 건 물론 아니고, 초고난이도 퀴즈가 대부분!내가 무슨 암호해독기 에니그마도 아니고, ‘ㅇ ㅁ ㅁ ㅇ ㅎ ㄱ ㅂ ㄴ ㅅ ㅁ ㅇ ㅎ ㅂ ㄱ ㅅ ㅇ ㄱ ㅇ ㅇ ㅇ ㅇ ㅈ ㄱ ㄷ ㅇ’ 이걸 어떻게 맞추나? (네이버 지식인에 있는 실화다. 답은 아직 확실치 않으나 ‘아무말 안하고 보내서 미안해. 보고 싶을 거야. 00야 잘 갔다와.’가 유력하다고.) 고문 같은 초성게임보단 차라리 새벽 2시에 ‘자니?’ 문자를 보내는 게 낫다. 아이고, 머리 아파. 5. 2A.M 그리고 DM초성 상태메시지보다 덜 짜증나는 건 맞지만, 본래 새벽 2시 ‘자니?’는 전통적으로 지질함의 대명사였다. 허나 새벽 2시는 그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외로움이나 슬픔 한 방울을 찾아내기엔 참으로 적절한 시간대다. 자, 이제부터 망상 타임. 다시 만나면 어떨까? 그냥 전화를 해볼까? 아무리 그래도 ‘자니?’는 너무 전형적이니까, 구리니까, 그러니까… ‘뭐해?’ 그렇게 뒤척이다 그냥 잠이 든다.6. '따닥'이라는 대참사 처음엔 누구나 손끝을 세운다.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솜털을 어루만지듯 섬세한 터치로 조심스레 스크롤을 내린다. 허나 사람이라는 게 익숙해지기 마련. 열 차례 이상 그의 계정을 방문하다 보니 어느새 일상이 된다. 항상 정자세로 그의 계정을 염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뒹굴 거리면서 혹은 화장실에서 가장 무방비한 태도로 피드를 뒤지기 시작한다.그 다음은... 나도 모르게 ‘따닥!’ 도대체 왜 인스타그램은 ‘더블 터치’를 하면 ‘좋아요’가 되는 거지? 빛의 속도로 취소를 눌러보지만 내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메시지는 이미 그에게 도착해 있다. 그때부터 절망, 좌절, 더 없는 악몽이다. ‘으악!’ 비명이 절로 나오는 것은 물론 최소 ‘이불킥’ 1백번. 이 패배감은 내가 아니라 모두 인스타그램 탓이다.7. 있다 없으니까 남은 건 인스타그램 앱을 삭제하는 일 혹은 아예 계정을 탈퇴하는 일뿐. 그리고 얼마 못 가 다시 다운로드 받는 것. 아, 이토록 슬픈 무한반복의 굴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