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진보적인 러브스토리 EP.1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세계 경제 대통령, 세기의 대배우,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 세상에 앞서간 그녀들은 어떤 사랑을 선택했을까? | 여자,페미니즘,크리스틴 라가르드,IMF,엘리자베스 테일러

크리스틴 라가르드-20년 전 인연, 노년의 연인이 되다'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칭송 받는 IMF의 수장, 경제인 최고의 패셔니스타인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두 번 결혼해 이혼했고 첫번째 결혼에서 두 아들을 얻었다. 2006년부터는 컨설팅 및 세금 관련 사업가인 자비에 지오캉티(Xavier Giocanti)와 11년째 연인 관계를 유지 중이다. 결혼보단 느슨하지만 법적으로 파트너 관계를 인정받는 시민연대협약(PACS)이 대중적인 프랑스이기에 그들이 결혼하지 않고 동거한다고 해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거나 비판하는 이는 없다.두 사람은 ‘80년대 후반 낭테르 대학 법학 수업을 함께 들으며 처음 만났다. 이후 연락처를 잃어버리고 서로 결혼과 이혼을 겪었으며 둘씩 자녀를 두는 평행의 삶을 살다 20년 후 사업상 만남을 통해 운명처럼 연인으로 발전했다. 2007년 결혼을 계획했지만 라가르드가 프랑스 재무장관이 되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자연스럽게 미루게 되었다.마르세유와 파리를 오가는 일정으로 함께 할 시간이 많은 상황, 라가르드가 IMF 총재에 선출되자 지오캉티는 “그는 인류의 미래"라며 크게 기뻐했다. 라가르드가 워싱턴에 머물러야 할 때도 수시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매달 방문할 정도로 연인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프랑스 남부 코르시카섬에서 보내는 낭만적 시간을 사랑하는 두 사람의 보트와 자전거를 즐기는 그림 같은 모습이 종종 목격되곤 한다.엘리자베스 테일러-7명의 남편과 8번의 결혼식클레오파트라가 현신한 세기의 미녀, 미국 영화 협회(AFI) 선정 가장 위대한 여배우 7위,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해 아카데미상 2회, 골든글로브 4회, 영국 아카데미상 2회를 수상한 가히 20세기의 아이콘이랄 만한 대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수식어는 끝이 없다. 그는 8번의 결혼으로도 유명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또 결혼을 했습니다”란 뉴스가 흘러 나오면 보수적이었던 과거 한국사회에서도 다들 ‘그러려니’하고 수긍했을 정도.‘사랑하면 결혼해야 한다’는 독특한 가치관을 지녔고 힐튼호텔 체인 창립자의 상속자 콘래드 힐튼부터 대배우 리처드 버튼까지 7명의 남자가 그에 충실히 부응했다. 결혼기간은 각기 9개월부터 6년까지 길지 않았으며(리처드 버튼과는 두 번 결혼했다.) 사별도 겪었지만 사랑이 식으면 바로 이혼했다. 또한 결혼하기 전까진 상대방과 혼전순결을 지켰으며, 결혼할 때마다 마지막 사랑이라고 믿었다니, 진정한 결혼 지상주의자, 동화 속 공주가 아니었나 싶다.그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했다. 보석을 사랑해서 리처드 버튼에게 선물 받은 까르띠에의 69.42캐럿 다이아몬드 ‘테일러 버튼’을 비롯해 수 없는 보석 컬렉션을 남겼다. 또한 영화당 출연료 백만 달러를 넘긴 최초의 배우이기도 하다. 말론 브란도가 백만 달러 개런티가 ‘소문’에 불과했다면 테일러는 ‘클레오파트라>(1963) 출연하며 공식적으로 2백만 달러에 가까운 출연료를 요구하고 계약을 관철시켰다. 현재도 여배우와 남배우의 출연료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가히 혁명적 기록일 것! 차이잉원-알파걸의 표상, 비혼주의자대만 총통 차이잉원은 부호였던 아버지가 4명의 부인을 둬 낳은 11명의 이복형제 중 막내딸이다.(그의 어머니가 5번째 부인이란 말도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런던 정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만에 귀국, 국립정치대 교수로 임용되었고 27세에 대만 정부의 WTO 협상 대표로 발탁되며 리덩후이의 자문위원, 행정원 부원장을 거친 후 정치가로 변신, 민진당 당수가 되었다. 첫 번째 총통 선거에선 석패했지만 4년 후 압도적인 표차로 대만의 총통이 된다. 60세인 현재까지 결혼한 적이 없고 사귀는 남자도 없으며 화장도 하지 않는단 이유로 스밍더(施明德) 전 민진당 주석이 “레즈비언이 아니냐? 진실을 밝히라”며 의혹을 제기해 여야 막론 지탄을 받았다. 그에 차이잉원 총통 본인은 “미국 유학시절 사귀던 남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이후 사귈 기회가 없었다.”고 일축했다. 또한 동성애자의 권익 보호, 동성결혼에 찬성하는 입장이라 이를 계기로 LGBT계의 몰표를 받았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 합법화를 이뤄낸 나라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