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니콜라스 제스키에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루이 비통의 아티스틱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유서깊은 프랑스 패션 하우스와 함께 미래지향적인 오디세이에 나섰다. | 인터뷰,루이비통,니콜라스 제스키에르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만나는 날, 도시의 풍경은 한 폭의 유화 같았다. 추운 날씨였으나 하늘은 맑았고 파리의 아이콘적인 건물들은 그 모든 역사와 로맨스에 완벽한 배경을 제공했다.파리 리브 드루아트, 퐁뇌프 다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리볼리 거리에 위치한 멋들어진 건물 2층, 이곳 루이 비통 아틀리에에는 향초가 켜져 있다.안으로 들어갔더니 직원들은 미셸 윌리엄스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입고 갈지도 모를 드레스를 열심히 마무리하고 있다. 마네킹에 걸쳐진 이 고전주의적 드레스는 온갖 스케치, 핀, 벨루어와 튤 소재 샘플 등에 둘러싸여 있으며, 희망과 약속의 완벽한 조화를 상징하는 듯하다.알리시아 비칸데르를 위한 또 다른 아카데미상 시상식용 드레스는 피팅을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배달될 예정.(그녀는 그곳에서 새로운 를 촬영 중이었다.) 아틀리에 방마다 향초가 타오르고, 실에 매듭이 매어졌다. ‘황금’이 완성되는 것은 수 시간이 걸린다.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경우 방 안으로 걸어 들어오기보다는 자신의 에너지와 열린 마음으로 인해 밀려 들어오는 듯하다. 우리는 센 강이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하얀 방에 갇혀버린 럭셔리한 포로처럼 인사를 나눈다.“최고의 업무 환경을 겨루는 경쟁이 있다면 당신이 1등일 거예요. 칼 라거펠트의 사무실보다 크고, 사라 버튼의 사무실보다 아름다우며, 프라다 여사의 사무실보다 더 하얗거든요.” 내가 말한다. “그렇군요. 좋지 않은가요?”그가 웃으며 답한다.그의 웃음은 중요하다. 발렌시아가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던 15년 동안 제스키에르는 진지함, 수줍음, 그리고 셀러브리티 친구들과의 파티를 꺼리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그러나 이제 제스키에르는 좀 더 긍정적이고 대하기 쉬운 사람, 세상에서 자신이 차지한 위치를 잘 이해하고 자신의 재능에 편안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진다.제스키에르는 지금 최고의 자리에 위치해 있으며, 새로운 문제는 그에게 마치 산소와 같다. 다시 한 번 불어온 새로운 바람에 가벼워진 제스키에르는 경험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언젠가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론칭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의 일이다.현재의 그는 기쁜 마음으로 루이 비통을 이끌고 있으며, 대화하기에 즐거운 사람이고,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고 보다 뚜렷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지성을 갖춘 남자다. 셀러브리티 친구들과도 자연스레 어울린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삶이 제자리를 찾았으며 날아오를 준비가 되었다는 점이다.“정확한 순서로 스물다섯 개의 질문을 던져보는거죠.” 앤디 워홀에게 아티스트 인터뷰하는 법을 배운 친구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흥미로워한다. 그래서 우리는 널찍한 흰 소파에 앉았고, 나는 그의 새로운 비상을 축하하는 뜻에서 종이에 질문을 하나씩 적은 뒤 비행기를 접어 그에게 날렸다. 제스키에르는 프랑스 서부 루뎅(Loudun)에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골프장의 매니저였고, 제스키에르는 페어웨이를 넘어선 곳에서의 삶을 꿈꾸며 자랐다고 전했다. “당신에게 고향은 무엇인가요?” 내가 물었다. “파리가 곧 고향이죠. 고향은 청소년기를 향한 향수이며 일종의 판타지와도 같아요.” 그가 답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시인 랭보가 ‘삶은 다른 곳이다’라고 말했었죠.” “그렇습니다. 삶을 바라보기에 좋은 시구예요. 그리고 여기에 여행이라는 개념, 새로운 경험을 더하는 거죠. 저는 더 이상 어린 시절의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죠. 설령 그곳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더라도 말이에요.”발렌시아가의 아이덴티티를 다시금 정의해 패션계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제 책임이었습니다.현대의 패션 디자이너, 특히 위대한 디자이너들은 훌륭한 조각가임과 동시에 사업에서도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제스키에르는 두 방면에서 모두 혁신적인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 발렌시아가에서 아름다운 옷을 만들었고, 덕분에 회사가 부활했다. 크리스토벌 발렌시아가가 박스 재킷과 색(Sack) 드레스로 새로운 룩과 실루엣을 발명했다면, 제스키에르는 슬림 라인 팬츠, 건축적인 재킷, 일명 ‘레고’ 슈즈, 토가 드레스, 메탈릭 레깅스, 기발하게 사용된 플라워 프린트, 새롭게 해석된 유틸리티 웨어(그가 ‘테크노 보헤미안’이라 칭한) 등을 제안했고,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라리앗 핸드백을 판매했다. 그는 황금 손을 가졌다. 발명의 재능과 상품화의 재능을 동시에 지닌 것이다. 문득 그가 어디서 이러한 통찰력, 창의력을 얻었는지 궁금해졌다. 젊은 시절 장 폴 고티에와 아녜스 베에서 일했을 때 배운 것일까? “아녜스와 일할 때는 아주 어렸죠. 그냥 관찰을 했어요. 하지만 장 폴 고티에에게서 ‘컨트롤’에 대해 정확히 배웠습니다. 그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또는 배의 키를 쥔 것처럼 거의 모든 것을 통제했어요. 저 또한 ‘컨설팅’이라는 단어를 싫어하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잘 모릅니다.”그는 발렌시아가를 부활시키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뒤를 이어 짐을 짊어진다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려울지는 짐작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25살이었고 투지를 불태울 만한 주변 환경이 갖춰져 있었죠. 발렌시아가의 아이덴티티를 다시금 정의해 패션계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제 책임이었고 제가 이룬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그가 이 업적에 뿌듯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2012년 회사를 떠날 때 일어난 법적 논쟁은 패션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난제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비전을 추구하면서도 하우스의 전통과 상업적인 목적에 충실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혼란스러웠죠.” 그가 말했다. “한때는 회사가 곧 저이고, 제 것이며, 나와 동일한 존재, 동일한 DNA로 구성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일종의 실패한 결혼처럼 행복했지만 고통스러웠고, 내가 덫에 걸려 있는지, 아니면 자유로운 건지 판단하기 힘들었습니다.”자유는 지혜와 함께 자라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올해로 45세가 된 제스키에르는 흐르는 세월이 주는 시험을 즐겁게 맞이하는 듯했고, 항상 그러하듯 그 즐거움은 그의 결과물에 묻어난다. 나는 그의 성장이 여성이 나이 드는 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물었다. “여성이 나이를 들면 패션보다는 스타일이 중요해집니다. 점점 더 자신을 잘 알게 되고, 동시에 새로운 것을 찾는 여성에게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자리 잡게 되죠. 단순히 패션에 중독되는 것이 아니에요. 저는 그 점에 흥미를 느낍니다.” 그러나 익숙함에 중독된 세상에서 독창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은 힘든 일. 나는 오트 쿠튀르가 아직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오트 쿠튀르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탄생한 것이고, 당시 여자들은 용감했죠. 또 새로운 형태를 갖고 싶어했어요. 자신의 의견이 다른 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기를 바랐고, 그 욕구를 잘 인식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장식이 더 강조되고 있어요. 그 중요성은 이해하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쿠튀르가 아닙니다. 쿠튀르는 일종의 모체였고, 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물론 생 로랑이나 웅가로 같은 디자이너들이 쿠튀르의 특별함을 기성복에 표현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그는 루이 비통에서 쟁쟁한 파트너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 또 그들의 대담함 덕분에 옛 쿠튀르 기술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전한다. “우리의 앰배서더들을 두고 하는 말이에요.” 그가 푸른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이는 배우 사샤 레인과 후쿠시마 릴라(이 화보에 등장하는), 카트린느 드뇌브, 레아 세이두, 미셸 윌리엄스와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녀들은 두려움이 없어요. 레드 카펫에서 지루한 드레스를 입고 싶어하지도 않죠.” 일부 패션계 사람들은 직감만 믿고 행동하지만, 제스키에르는 생각하는 부류다. 질문을 던지면 답을 찾아 나선다. 그와 자주 일하는 무대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Es Devlin)에게 그가 가진 특별한 점이 무엇인지를 묻자 그녀는 “생각의 신속성”이라 답했다. “다른 사람과 했으면 세 시간 정도 걸릴 크리에이티브 회의를 니콜라와 하면 20분 만에 끝나거든요.”루이 비통에는 그의 완벽주의에 걸맞은 재원들이 존재한다. 캣워크 쇼는 화려하면서도 숭고한 행사이며, 특유의 깊은 빛을 낸다. 나는 그가 루이 비통에 첫 발을 내딛은 2014년 가을에 열린 패션쇼를 기억한다. 자정을 넘은 늦은 시간에 불로뉴 숲의 루이 비통 재단에 설치된 쇼장을 방문했었는데, 쇼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목공들의 작업이 한창이었다. 다음 날 아침 열린 쇼는 시적인 감성이 담긴 걸작이었고 그는 또 한 번 패션계에 완벽하게 군림했다. 거울로 꾸며진 홀, 비디오 화면에 등장한 젊은 얼굴들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의 대사를 읽었다. “시작은 아주 섬세한 시간이다.” 그 대사는 루이 비통의 아티스틱 디렉터로서의 제스키에르를 두고 한 말일지도 모른다.그의 컬렉션 대부분은 미지의 미래가 가진 꿈같은 풍경을 연상케 하며 깨끗한 라인에 의존한다. 그는 공상과학물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상 창조적인 차원을 믿어왔어요.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죠. 평행 세계는 그 무엇보다도 ‘기대감’과 관련이 있습니다.”패션도 기대감이라는 순수한 요소를 고체의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제스키에르는 럭셔리 철학자가 되어 오래된 유산을 지닌 브랜드에 미래적인 현실을 주입해 보다 신선하고 새롭게 만들고자 한다. “모든 것은 언젠가 새로웠던 적이 있어요.” 그의 말에 내가 답했다. 모든 꿈은 그 꿈을 꾸는 사람에게 새롭다고. 뉴욕의 퀸스 지구든, 프랑스 리옹이든, 그가 디자인한 가방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렇습니다. 그 점을 인식한 이들은 창조력의 존재를 알고 있죠. 루이 비통의 경우 이러한 표현의 규모가 너무나 거대해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마치 하나의 공동체에 속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거든요.” 제스키에르는 과거의 무게가 젊은 감성을 통해 여과됨으로써 영향력 있는 패션 하우스로 거듭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스웨터에 난 구멍을 만지작거렸다. “문제아들에게는 고전주의가 훌륭한 레퍼런스가 될 수 있죠.”루이 비통에서 그의 야심은 이동하는 현대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드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틈새 디자이너로 여겨져왔어요. 그런 평판도 나쁘지 않지만, 좀 더 큰 규모로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의 다자인이 좀 더 날 서 있기를 바라며, 시즌이 바뀌어도 유용하기를 원한다. 그의 목적은 “프랑스의 귀족적인 노하우를 오늘날의 젊고 자유로운 스타일과 조합하는 것”이라고. 그는 자신이 유명해질 운명이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워했으나 성공을 통해 안정을 찾게 되었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이 일을 사랑해요. 저녁에 퇴근해서 그날 한 일을 돌이켜보면 아주 행복하죠. 처음 시작했을 때와 동일한 감정을 아직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은 억압적일 수 있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자신을 억압하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제 스스로를 놀랍게 하지 않으면 기분이 좋지 않아요. 마감은 억압적이지만, 저는 시대를 초월하는 것을 만들고 싶거든요. 감정을 가지고 욕구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제 일인 셈이죠.” 제스키에르는 정치적인 성향의 인물은 아니지만,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가치가 있음을, 그리고 목표달성을 위한 진전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이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 것이다. 항상 여행을 기반으로 해온 루이 비통에게 있어 오늘날 세계 곳곳의 국경이 닫히고 있는 국제 정세는 어떤 문제로 인식되고 있을까? “두려움이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바깥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은 최악이죠. ‘다른’ 것과 ‘다른’ 이들에 대한 두려움은 오늘날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지만 막상 거리의 젊은이들은 ‘세계는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세대 전체가 그렇게 말하고 있죠. 저는 그러한 점에서 젊음을 믿고 있어요.”여성이 나이가 들면 패션보다는 스타일이 중요합니다.제스키에르는 이상하면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독특한 아이디어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이번 화보를 아티스트 뱅상 푸르니에와 함께 작업하면서 즐거워했다. “그의 지성에는 영화적인 면이 있어요. 사고가 열려 있는 창의적인 인물들과 일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화보는 로베르 말레-스티븐스(Robert Mallet-Stevens)가 1930년대에 디자인한 현대주의 저택 빌라 카브루아(Villa Cavrois), 그리고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가 1971년에 디자인한 프랑스 공산당 본부에서 진행되었는데, 두 장소 모두 제스키에르의 미래적인 미학과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뱅상 푸르니에는 시간과 변화에 대한 제스키에르의 집착에서 흥미를 느꼈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미래와 아주 가깝게 맞닿아 있어요.” 푸르니에가 말했다. “미래에 대한 큰 기대감과 동시에 과거도 무척 잘 이해하고 있죠.”대화가 끝날 무렵, 제스키에르의 스웨터에 난 구멍은 더 커졌지만, 그는 과거의 업적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요?” 내가 물었다. “버림받는 것입니다.” 그가 답했다. “이젠 버림받기 불가능해졌죠.” 내 말에 그가 어깨를 으쓱했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일부의 사람들, 특히 벽지 출신의 소년들은 과거가 막을 내렸다고 굳게 믿지 않는다. 과거는 항상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파리 한가운데에서 그의 모습을 보는 것, 자신의 가장 빛나는 꿈을 증명하고, 그로 인해 성공을 거둔 그의 모습을 보는 일은 즐거웠다. 2014년 모나코에서 열린 루이 비통의 크루즈 쇼가 끝난 뒤 마주한 그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는 발렌시아가와의 거친 마찰,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의문으로 아주 지쳐 보였다. 쇼는 왕궁 앞에 특별히 설치된 유리 건물에서 열렸다. 런웨이는 흐르는 물의 이미지가 새겨진 투명한 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위로 등장한 옷들은 깨끗하면서도 평화로울 내일의 느낌을 전했다. 이는 제스키에르가 공을 들여 창조해낸 무드였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런웨이에 오른 그는 이러한 낙관주의에 부끄러워하는 듯했지만, 이미 그러한 낙관 속에 살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당신의 편집 능력이 점점 더 섬세해지는 것을 느껴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워요.” 그가 말한다. “미래지향적인가요?” 내가 물었다. “그럼요. 그게 바로 미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