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털링턴의 아름다움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크리스티 털링턴 번스는 지금껏 변화의 여정을 거쳐왔다. 올해 마흔여덟 살인 그녀는 다양한 삶을 살았다. 모델로 활동하며 5백 개 이상의 잡지 표지에 등장했고, 엄마들의 건강에 헌신하는 자신의 비영리 재단 에브리 마더 카운츠(Every Mother Counts)를 통해 수많은 이들을 살리는 데 기여했다. | 크리스티 털링턴 번스,에브리 마더 카운츠

많은 이들은 조지 마이클의 컬트 뮤직비디오 에서 몸에 하얀 리넨 소재 침구 시트만 두르고 맨발로 우아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함께 등장한 린다 에반젤리스타의 짤막한 ‘플래티넘’ 금발머리는 촬영 전날 염색한 것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연출한 이 뮤직비디오에서는 김이 솟아오르는 욕조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신디 크로퍼드, 나오미 캠벨, 그리고 춤을 추며 립싱크를 하는 타티아나 파티츠도 인상적이었다. 모두들 놀랍도록 아름답고 부러울 정도로 쿨했다. 몇 달 후 지아니 베르사체는 밀라노에서 열린 1991년 가을 패션쇼의 피날레에서 바로 그 노래를 배경으로 털링턴, 에반젤리스타, 캠벨, 크로퍼드를 런웨이에 내보냈다. 그들은 조지 마이클의 가사를 웅얼거리며 패션계를 열광케 했고, 그렇게 패션사에 중요한 한 순간을 완성했다.팬 앰(Pan Am) 항공사의 미국인 비행사와 엘살바도르 출신의 승무원 사이에서 태어난 세 딸 중 둘째인 털링턴 번스는 열세 살 때 마이애미에서 승마를 하던 중에 발굴되었다. 그녀는 열여덟 살 이후 본격적으로 모델 일을 하고자 뉴욕으로 이주했으며, 전례없는 상승세를 통해 성공과 영향력을 갖게 됐다. 이 슈퍼모델의 상승세에는 베르사체가 크게 기여했고, 털링턴은 1990년 초반 리처드 아베돈과 어빙 펜이 촬영한 베르사체 광고 캠페인에서 아이콘적인 이미지를 그려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샤넬, 이브 생 로랑, 마크 제이콥스, 도나 카란, 프라다, 발렌티노, 루이 비통, 마이클 코어스, 메이블린, 캘빈 클라인 등 수많은 브랜드의 스타이기도 했다. 특히 캘빈 클라인은 그녀가 최초로 주요 계약을 한 브랜드. 털링턴은 곧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모델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그녀의 영향력과 성공은 패션계에 혁명을 일으켰다.그녀는 이러한 파워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주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고, 경제력 때문에 가족 내에서의 제 자리도 변했어요. 아주 일찍 아버지와 동등한 위치에 선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어요. 예전부터 이를 바랐고요.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데, 자라나면서 아버지가 훨씬 더 자유롭고 힘 있다고 느껴졌거든요. 전 그러한 아버지의 지위와 능력을 원했죠.” 그녀가 회상한다. “커리어는 일부러 계획한 것이 아니라 정말 우연찮게 시작한 것이었지만, 사실 훨씬 전부터 제 목표는 재정적으로 독립하는 것이었어요. 결정을 제가 직접 내리고 원하는 것을 하며 이를 다른 누구에게도 보고할 필요가 없기를 진정 원했으니까요. 재정적 독립은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함께 일하는 모든 여자에게서 이를 관찰할 수 있죠. 여자가 직접 생계를 꾸리고 여유가 생겼을 때 그들이 돈을 쓰는 방식은 남자가 일반적으로 돈을 쓰는 방식보다 훨씬 더 너그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게도 그런 힘이 생기면 이를 남용하지 않고 너그럽게 나눌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그녀는 이러한 신념에 충실했다. 그녀의 재단 에브리 마더 카운츠는 오늘날 방글라데시, 과테말라, 아이티, 인도, 네팔, 시리아, 탄자니아, 우간다, 미국 9개국에서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필수적인 의료를 제공하는 열한 개의 보조금을 자랑한다. 지금껏 50만 명 이상의 엄마들이 혜택을 받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10년에 론칭한 이 재단은 털링턴의 딸 그레이스(Grace)의 탄생 과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14년지기 남편인 배우 겸 감독 에드워드 번스와의 사이에 낳은 두 딸 중 첫째인 그레이스는 올해 열세 살이다. “놀라운 진화예요.” 털링턴이 말한다. “딸이 열세 살입니다. 딸을 낳은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기 시작한 지 13년이 된 거죠.” 그녀는 딸을 낳은 직후 잔류 태반 때문에 과다출혈에까지 이르렀다. “피를 아주 많이 흘렸어요.” 그녀가 회상한다. “다행히도 진정이 되었죠. 의사들과 관리인들이 처치를 잘해주었기 때문이었어요. 적합한 곳에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래서 안전했습니다. 아주 무섭고 고통스러웠지만 잘 해결될 것이라고 느껴졌으니까요.” 몇 주 후 털링턴 번스는 자신이 경험한 문제가 여자들과 소녀들 사이에서 가장 잦은 사망 원인 중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2분마다 한 명꼴로 임신과 출산 관련 문제로 여성이 사망하고 있으며, 사망 여성 중 98퍼센트는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를 알게 된 후 생각을 멈출 수 없었어요.” 그녀가 말한다. “처음에는 알고 있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다만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출산은 나의 삶에서 가장 큰 힘이 된 경험이라는 걸 떠올렸죠. 출산이라는 개념 자체에서 열정을 느꼈어요. 그래서 자연 분만을 홍보하는 일을 해볼까 생각도 했고요.”당시 털링턴은 사회운동에 이미 익숙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그녀는 어머니의 고향인 엘살바도르의 전후 복원 활동을 다양하게 후원했으며, 1997년 아버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는 금연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2005년, 둘째 핀(Finn)을 임신 중이었던 털링턴 번스는 빈곤퇴치 운동기구 캐어(CARE)와 함께 엘살바도르를 방문했다. “방문 마지막 날 정수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그녀가 회상한다. “그곳에는 많은 여자들이 물을 받으러 와 있었는데, 모두 임신 중이거나 아기를 등에 업고 있었죠. 그들과 오후를 보냈고,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들이 계속 생각났어요. 그 지방에는 포장된 도로가 없었고, 가장 가까운 대도시와는 두 시간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문제로 병원을 찾아가야 한다면 거리 때문에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점을 떠올리게 되었죠.” 아들을 출산하고 캐어와 함께 페루를 방문한 후 털링턴은 이 주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이 겪는 임신과 출산 관련 건강 문제의 심각성을 다룬 영화 가 지난 2010년 개봉했다.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동안 털링턴은 컬럼비아 대학에 지원, 공중위생학 석사 학위를 땄다. 이는 그녀가 처음으로 학교에 돌아간 경우가 아니었다. 그녀는 모델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뉴욕 대학에 지원했고, 발군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학교에 돌아갈 일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그녀가 말한다. “다만 이 일이 장기적인 일이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여행을 아주 좋아하니 일을 겸해서 세계 곳곳을 많이 방문해봐야겠다고. 그리고 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판단하겠다고요. 경험을 많이 하면 할수록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해지죠. 결국 느려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바빠졌습니다. 슈퍼모델이라고 불리기 시작하면서 대중매체의 관심이 증가했는데, 솔직히 그건 재미있다기보다는 싫었어요.” 당시 언니와 동생, 고향 친구들 모두 대학에 다니기 시작하던 때였는데, 그들이 더 부러웠다. “어머니께서도 50세 초반에 대학에 입학하셨는데, 이 또한 당시 일이었어요. 그러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죠. 다들 학교에서 무엇을 읽는지, 어떤 공부를 하는지 궁금했고요. 출장을 갈 때마다 책을 빌려 가져갔죠. 내가 이미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경험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반대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거든요. 자비로 뉴욕대를 다니고 내가 원하고 선택한 일이었기에 단 하루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어요. 제가 진정 원하는 것이었고 아주 만족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얼마 전 털링턴은 최고의 커리어를 누리다가 대학에 가기로 결심하고 뉴욕대에 원서를 넣기로 한 모델 칼리 클로스를 위해 추천서를 썼다.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죠.” 털링턴이 클로스를 두고 말한다. “아주 열린 마음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제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제 어린 모습을 보는 듯해서인지 지난 몇 년 동안 아주 친하게 지냈어요. 학교를 다시 다니고 싶다고 내게 말했을 때도 정말 기뻤고, 기꺼이 추천서를 써주고 싶었죠. 이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한 일이에요. 요청하는 누구든지.... 요청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니까요. 누군가가 무언가를 요청하고, 질문을 하거나 조언을 구할 정도로 신념이 깊다면 이를 존중해야 해요. 잠시 일을 멈추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이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요.”세계보건, 모성보건, 공중보건을 연구하고 조사한 털링턴은 어디서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에브리 마더 카운츠(EMC)를 통해 그녀는 교통, 자재 공급, 교육 등 전 세계 모성보건의 발전에 장애물이 되는 요소들을 공략한다. 대중의 인식을 장려하며 기금을 모으고, 세계 곳곳에서 파트너십을 맺으며, 공공교육 프로그램과 지역공동체 참여를 개발한다. 프로그램을 론칭한 지 5년이 되었고 열 명의 사원을 거느린 EMC는 1천 3백만 달러 이상의 기금을 모았는데, 그중 일부는 마라톤을 통해 모은 기금이다. EMC는 지난해 뉴욕 마라톤에서만 26만 달러를 모았고, 그들의 달리기 프로그램은 지금껏 2백만 달러 이상의 기금을 모았다. “2011년 내가 처음 뛴 마라톤에 열 명의 EMC 대표가 참가했어요.” 털링턴이 회상한다. “준비할 시간이 많이 없었지만, 훈련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멋진 경험이었어요. 저의 최고 기록을 넘기는 순간, 달리기는 단순히 의식을 높이기 위해 뛰는 것 이상임을 깨달았어요. ‘거리’라는 것 자체가 때로 여자들이 응급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이기에 우리의 활동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세계 곳곳, 특히 개발국가의 대부분 여자들은 의사 및 건강관리를 제공하는 기관과 업체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요. 따라서 마라톤은 우리가 왜 이 활동을 하는지 알리는 데 일종의 특별한 방식이 되었습니다.”털링턴은 마라톤에 참가하거나 세계 곳곳을 방문하지 않을 때면 가끔씩 모델 일을 한다. 그녀는 티파니의 최신 광고 캠페인에 등장했고, 메이블린과 캘빈 클라인 ‘이터너티’ 향수의 얼굴로 남아 있다. ‘이터너티’의 최신 광고 캠페인에는 남편인 에드워드 번스도 등장했다. “지금까지 남편이 다섯 명이었죠.” 1988년도 처음 시작한 이래 그녀와 함께 광고에 등장한 남자 모델들을 두고 그녀가 농담을 한다. “오래전이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다섯 번째, 아니면 여섯 번째인 것 같네요. 다 연습의 과정이었죠!” 몇 달 전 털링턴 번스는 에반젤리스타, 캠벨과 다시 만나 야생동물 불법거래 근절을 위한 얼리펀트 크라이시스 펀드(Elephant Crisis Fund) 홍보 사진을 찍었다. “둘 다 이제 뉴욕에서 살고 있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털링턴이 말한다. “가끔 이메일을 보내거나 문자를 주고받지만,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요. 그러던 중 린다가 이번 일을 내게 제안했고, 나는 돕고 싶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말했죠. 다행히 일이 잘 풀려 촬영을 잘 준비할 수 있었어요. 오랜만에 함께 한자리에 모이니 정말 재미있어요.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재미난 추억이 많기 때문이죠. 함께 많이 웃었고, 불과 몇 시간이었지만 정말 즐거웠어요. 동시에 저는 요즘 일로 너무 정신이 없었는데, 둘 다 제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기꺼이 도와주려고 하고 있어요.” 털링턴은 다른 슈퍼모델들과도 연락을 유지하고 있지만, ‘슈퍼모델’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익숙하지 않다.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어요.” 그녀가 말한다. “그러나 내가 공감하거나 동질감을 갖는 개념은 아닙니다. 이 단어를 보면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어떠한 상상을 할지 생각이 들죠. 아주 글래머러스하지만, 제 현실과는 거리가 멀고 전혀 상관이 없어요. 다만, 모델 일을 하며 보낸 시간은 즐거웠다고 확신합니다. 그 경험과 현실은 거부하지 않아요. 하지만 슈퍼모델이라는 이름표,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죠.”오늘 촬영에서 털링턴은 존경스러운 프로 근성과 우아함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그녀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아직도 티끌 하나 없으며, 불과 몇 개의 주름은 그녀의 실제 나이를 믿기 힘들게 만든다. “모델로 일하면서 열네 살 때부터 사람들에게 몇 살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시에도 크게 고민하지 않았고, 20년이 지나서도 그렇죠.” 그녀가 말한다. “한 해가 지날수록 나의 목표, 우선사항, 그리고 지금껏 경험을 비추어 더욱 만족스러운 삶이 되어가고 있어요. 저는 삶을 살아온 흔적이 보이는 얼굴이 마음에 들어요. 미적으로 선호하는 얼굴이죠. 제겐 이러한 얼굴이 매력적이에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부인하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화보를 위해 털링턴은 여자 디자이너들의 옷만을 입고 촬영했으며, 세계 여성의 날에 맞춰 화보를 공개하기를 원했다. 그녀는 항상 여자를 기리고 싶어하는 듯하다. “패션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아요.” 그녀가 말한다. “하지만 오늘 입은 여자 디자이너 대부분을 알고 있죠. 피비도 알고, 미우치아와는 초창기부터 알고 지냈으니까요. 더욱 크게 성장하고 파워풀해진 그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기뻐요.”지난 2014년 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인 털링턴은 다른 여자들을 위한 무대도 준비하고 있다. “저는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만, 좀 더 깊게 생각하면 평등주의자입니다.” 그녀가 말한다. “목소리를 가지고 싶고, 이 목소리를 사용하고 싶어하며, 내 말이 다른 이들의 말만큼이나 영향력 있기를 바라는 것은 제가 가장 깊게 믿는 신념이죠.” 여자 감독들이 아직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영화계처럼 다양한 산업에서 진정한 성평등이 이루어지기에는 아직 해결할 과제가 많지만, 그녀는 오늘날 성공하기를 원하는 여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존재한다고 믿는다.“시간이 갈수록 평등해질 기회가 많아지고 있으며, 아이디어가 있으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습니다.” 털링턴이 말한다. “여자라는 점 때문에 잘 나갈 수 없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까지 많은 투쟁을 해왔지만 이것이 이유라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요. 여자들이 하는 사업에만 자금을 지원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각각의 여자들이 좀 더 빨리 움직이고 좀 더 높은 곳으로 상승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원 시스템이 더 많아졌고요. 그 방식이 전부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족과 일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죠.” 지금껏 이룬 업적으로 미루어볼 때 크리스티 털링턴 번스는 아주 완벽한 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