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읽어 주는 남자 Ep.02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한국 드라마가 여자 주인공의 나이를 '퉁' 치는 방법. | 드라마,완벽한여자

드라마 에서 성준(강봉구 역)은 고소영(심재복 역)을 끊임없이 ‘아줌마’라 부른다. 극 중 성준의 캐릭터 ‘강봉구’는 변호사라는 이유로 무례함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이기에 눈감고 넘어가려 했는데, 그 와중에 고소영이 극 중에서 81년생이란 설정을 듣고 물음표가 두 개 떴다. ‘37살, 81년생이면 나랑 동갑인데, 우리 나이면 벌써 아줌마고 아저씨인가?’하는 슬픔의 물음표가 하나. ‘근데, 대체 왜 소영이 누나는 아직 81년생인가?’하는 의문의 물음표가 하나. 72년생 고소영은 내가 2차 성징을 겪고 있을 때부터 이미 톱스타였는데, 어쩌다 나랑 동갑이 되셨을까?배우가 한 10살쯤 까먹고 들어가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에서 81년생 전지현(당시 33세)은 28살이었고, 우리 나이로 54살인 김희애 씨는 작년에 에 46세로 출연했다. 상대 남자 배우의 나이는 하나같이 어리다. 에선 90년생 성준과 고소영의 러브라인이 싹트고 있고, 천송이는 26세의 김수현과 사랑에 빠졌다. 에서 김희애한테 사귀자고 덤볐던 곽시양은 심지어 87년생. 이 러브라인에 어떻게든 설득력을 주려다 보니 남자 배우의 나이를 슬쩍 올려, 극 중 나이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다. 400년 전에 지구에 온 외계인 도민준은 서른 살이라는 설정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극 중에서 민증을 깠다. 우연히 옆집에 살게 된 셰프 박준우(곽시양)의 나이는 홈페이지에 떡하니 35살이라 박혀 있다. 성준의 인물 소개는 더 노골적이다. ‘81년생 재복(고소영)을 반말로 부려먹는 87년생 흙수저 변호사’. 에선 도민준이 심지어 천송이보다 2살 오빠였다.스타성을 담보로 캐스팅을 짜다 보니, 이런 액면 기만의 사태가 생기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그러나 제작진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한창 방영 중인 의 이건준 CP는 “대략의 스토리와 기획이 먼저 나와 있었고, 남녀 배우 후보군을 두고 이 정도 나이 차이는 커버할 수 있겠다 싶어서 캐스팅한 것이지, 고소영이나 성준을 캐스팅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 다른 드라마 관계자 역시 “최근에는 스타성에만 집착해 캐스팅에 사활을 거는 경우는 드물다”며 “오히려 금융에서 안전성 중심의 채권과 수익을 노린 주식을 섞어서 포트폴리오를 짜듯이 안정감 있는 베테랑 스타를 영입했다면, 상대역은 조금 과감하게 신인급 배우를 기용하는 식으로 균형을 맞춘다”라고 밝혔다. 그러고 보니 꼭 여자 주인공에만 베테랑이 기용되는 것도 아니다. 에서 유이(28)보다 18살 많은 이서진, 에서 혜리(23)보다 17살 많은 지성, 에서 민아(24)보다 15살 많은 남궁민(39)도 어떤 의미에서는 흥행 포트폴리오 속의 채권이었을 것이다.다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아직 남녀 간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일단 남자가 연상인 경우엔 이렇게까지 심하게 퉁 칠 필요가 없다. 딴따라의 지성(39)과 혜리(22)는 17살 차이를 거의 그대로 드러냈고, 에서 47살의 이서진(극 중 37세)의 상대역을 맡은 유이 역시 26살의 실제 나이로 등장했다. 왜? “남자가 연상일 땐 그 정도 나이 차이는 현실에서도 많으므로 거부감이 적다”는 게 드라마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남자 연상’은 거부감의 허들이 낮다 보니 설득력 있는 러브라인을 만들기가 쉽다. 에서 기획사 대표인 지성은 소속 밴드 멤버의 누나인 혜리한테 초콜릿 주고 머리 쓰담 쓰담 하고, 같이 캐러멜 마키아토나 마시며 사랑을 싹틔운다. 그런데 의 고소영은 성준과 미필적 사랑에 빠지기 위해 이미 한참 힘들었고 앞으로도 한창 힘들 예정이다. 37세에 두 아이의 엄마인 고소영은 남편(윤상현 분)이 바람을 피우고, 본인과 남편이 회사에서 잘리고, 남편과 바람 피운 여자가 죽었는 줄 알았는데 살아 돌아오고, 옛날 남자친구의 아내가 나타나 남편을 빼앗으려 하고, 알고 보니 남편과 바람 피운 아내가 전 직장 상사이자 현 직장 상사의 여동생이고 등등, 설명하기도 복잡하고 힘든 막장의 폭풍을 겪고 나서야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성준의 품에 겨우 한번 안긴다. 그래도 는 힘든 드라마로 설득력이라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은 편이다. 에서 곽시양은 겁도 없이 4회 만에 옆집에 이사 온 나이 많은 여자에게 사귀자고 고백했다가 시청자들에게 ‘개연성이 없다’는 욕을 된통 먹었다.나이 든 여자 배우의 사랑은 중요하다. 매거진은 지난 2015년 배우 IMDB(TV 시리즈 포함)에 있는 6천여 명의 배우를 조사해 ‘커리어 하이’를 통계로 발표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여배우의 전성기는 30세, 남자 배우의 전성기는 46세였다. ‘벌처(Verture)’에서도 남녀 주연의 나이 차이에 대해 조사를 했었다. 덴젤 워싱턴의 경우 57세까지 상대 여배우의 나이는 35세를 넘지 않았고, 해리슨 포드는 63세에 44세의 버지니아 매드슨과 부부로 나왔다는 게 그 내용이다. 타임의 통계를 실명으로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재밌게도 매거진은 이런 흐름의 훌륭한 반례로 매릴 스트립을 들었다, 매릴 스트립의 전성기는 남자배우들보다도 훨씬 많은 57세였다. 그녀는 최근까지 5년에 8 작품씩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눈을 감고 생각해봐도 매릴 스트립이라면 아직 한참은 더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김희애, 고소영, 전지현 중에도 매릴 스트립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