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요한슨의 사운드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영화 <시카리오>와 <컨택트>에서 우리를 송두리째 사로잡았던 음향, 소리 그 자체에 대하여. | 시카리오,컨택트,요한 요한슨,드니 빌뇌브

세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던 독창적인 음악이 언제부터인가 아이슬란드로부터 발견되기 시작했다. 온천 말고도 음악이 있었던 것이다. 하기사, 화산과 안개와 빙하가 뒤덮인 비현실적인 풍광에 고립되어 있다면 도시 태생의 팝음악도 어쩔 수 없는 변형을 거쳐 향유될 수밖에 없었을 테다. 아무튼, 북유럽 특유의 우주적인 이국성은 비요크, 시규어 로스, 뭄 같은 세계적인 뮤지션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북유럽과는 다른, 미지의 땅으로부터 들려오는 차갑고 유혹적인 소리. 1990년대를 풍미했던 대안적인 록 밴드 음악의 전형 아래에서 이들은 독창적인 몽환을 개발했고, 일렉트로니카나 앰비언트, 그리고 포스트록 같은 세밀한 음악의 지류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그리고 21세기의 첫 10년이 한참 지난 지금,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뮤지션을 한 명 꼽으라면 단연 요한 요한슨일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에서 펑크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경력을 시작한 그는 2000년대 초반이 되자 터치 같은 다소 아방가르드한 영국의 인디 레이블에서 솔로 앨범을 내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그의 음악은 아이슬란드라는 키워드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했던 것 같다. 리듬이나 멜로디 이전에 보다 근원적인 요소로 존재하는 소리 자체에 방점을 두는 방식 말이다. 질감이 중요한 음악을 듣는 경험은 마치 고막이 공기 중에 부유하는 소리의 입자를 하나 하나 포착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격정과 흥을 자제하는 고요함 속에서 환희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음악의 근원에 방점을 두는 활동은 힙합이나 록 음악 같은 대중음악과는 애초부터 가는 길이 달랐다. 엇비슷한 것끼리 덩어리져 특정한 문화를 창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일까? 현재 활동하는 많은 아이슬란드 출신 음악가들처럼, 요한 요한슨 역시 무용이나 연극, 영화 등 음악이 필요한 다양한 예술 영역과의 협업을 활동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생각하는 듯하다. 언제인가 인터뷰에서 특정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만드는 일이 자신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밝혔던 것을 상기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이는 음악 자체가 던지는 메시지나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한 규준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소리를 매만지는 데에 큰 매력을 느낀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치 그래픽 디자이너가 작품마다 시각적 요소를 배열하는 일련의 방법을 재배열하듯이, 언제나 그 쓰임에 걸맞은 방법을 창안해서 소리를 대입하는 것이 그의 창작의 핵심인 셈이다.드니 빌뇌브와의 연속된 협업으로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던 그는, 올해 ‘컨택트’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개봉한 의 사운드 트랙으로 오스카 상을 수상했다. 테드 창의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인류가 공히 생각하는 방법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미지의 생명과 소통해야만 하는 한 인간에 대해서 다룬다. 주인공이 짊어진 고뇌는 생각하는 방식을 전환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분히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논리가 동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지의 생명체와 마주하는 일의 설렘과 불안함은 어떤 숫자로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기 마련. 아마도 감독인 드니 빌뇌브는 외계인이 아름답게 쓰는 원형의 붓글씨와 요한 요한슨이 여러 보컬을 조합하고 반복시켜서 만든 음악을 통해, 영화의 차가움을 아름답게 보완하려고 한 모양이다. 요한 요한슨은 감독으로부터 음악에 관한 전권을 보장 받았으며, 아날로그 테이프를 루핑시키면서 소리를 중첩하는 방식으로 청아하되 가볍지 않은 우주의 공명을 만들어냈다.이러한 행보를 미루어볼 때, 지금의 요한 요한슨은 몽환적인 아이슬란드 팝음악의 영역에서만 설명할 수 없는 보편적인 거장이 되어버렸다. 관습으로 전해오는 양식적 특성을 거부하고, 매 영화마다 그에 걸맞은 형식을 실험하는 그는 소위 현대음악이라고 불리는 다소 실험적이고 비대중적인 영역에서 더 자주 언급되곤 한다. 그는 이제 가장 전통적이기 때문에 그만큼 보수적으로 여겨지는 클래식 레이블인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앨범을 발매하는 몇 안 되는 살아 있는 작곡가다. 또한, 가깝게는 마이클 니먼 같은 미니멀리즘 영화음악 거장은 물론, 막스 리히터 같은 포크 앰비언트의 전설과도 비견된다.요즘 드니 빌뇌브가 미래의 영화를 책임질 거장으로 추앙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곁에서 영화의 이미지에 버금갈 정도로 정서적 내러티브를 구축해내는 요한 요한슨의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적막하고 어두운 극장에서 그가 들려주는 소리는 재즈가 섞인 오케스트라를 사용해서 메인 테마를 변주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영화 스코어와는 완전히 다른 효과를 갖는 새로운 음악이자 음향, 소리 그 자체다. 전통적인 개념의 어깨 위에 서서 가능성을 탐색하는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