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천의 타임라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미디어 아티스트 김희천은 3D와 VR 등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재료 삼아 가상과 현실 사이 어디쯤을 그려낸다. 그가 포착한 지금, 서울의 타임라인 속엔 로그아웃하고 싶은 ‘내’가 있다. | 김희천,미디어 아트

김희천의 영상작품 ‘썰매’는 필름이 끊긴 다음 날부터 시작한다. 술에 취해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잃어버린 후, 갑자기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저 물건 하나 잃어버렸을 뿐인데 내 모든 것이 유출돼버릴 것 같은 익숙한 공포감. ‘썰매’에서 교차 편집되는 또 다른 이야기, 게임 방송 유튜버가 유난스레 보도하는 신종 자살클럽 소식 역시 낯설지 않다. 유튜버다운 유쾌한 내레이션에 내내 킥킥거리게 되지만 사실 그건 심각한 실소에 가깝다. 미술평론가 임근준은 ‘썰매’를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6 속 단 한 점의 문제적 신작이라 꼽으면서 “2010년대 중반의 무시간성과 타임라인화하는 공간 인식의 특성을 그 누구보다 효과적으로 ‘영화화’해냈다”고 말했다. 김희천은 시대가 환호하는 디지털 인터페이스들, 3D, 페이스 스왑(Face Swap, 얼굴 바꾸기) 앱, VR 등을 재료 삼아 온라인과 오프라인 어디쯤에서 부유하고 있는 시공간을 포착해낸다. 아이러니하고, 동시대적이며, 세기말에 가까운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자연히 이런 생각이 든다. 침대 위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는 정말 여기에 존재하나? 아니면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어디쯤? 타임라인에서 수없이 공유되는 나의 생각, 감정, 경험들은 정말 온전한 것일까?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아주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바벨’ 역시 결코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3D 모델링 툴을 이용해 만든 가상의 공간 내부를 탐험하는데, 표피만을 본뜬 어설픈 3D 공간은 2D보다도 판판하게 느껴진다. 몇 가지 데이터로 받아들여야 했던 아버지의 죽음, 디지털 세계로 공유되는 수많은 경험들이 실체보다 공허하고 평평하듯이. 커먼센터의 창문을 모두 뜯어내고 전시한 ‘랠리’의 제2 롯데월드는 또 어떤가. 지금의 서울을 반사하는 거울인 동시에 투명한 유리이지만 사실은 칸막이일 뿐인 유리 파사드 건물. 실내와 실외가 구분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저 모호하고 절망적인 존재를 보다 보면 나지막이 읊조리는 내레이션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금 당장 로그아웃하고 집에 가고 싶다.”건축과를 다니다 처음 미술 작업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가 아르헨티나에서 보낸 일 년이었다고? 한국이 싫어서 떠난 건가?정확하게 말하자면 싫은 것보단 한국에서 가장 멀리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간 건데, 아르헨티나에는 젊은 작가들이 모여서 공간을 운영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자기 작업 보여주면서 다 같이 어울려 노는 그런 곳. 진지한 사람도 있었지만 사실 맥주 마시면서 오프닝 파티 하려고 작업하나 싶은 친구가 더 많을 정도로 편한 분위기였다. 특별한 부담감이나 사명감 없이 ‘뭔가를 성취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재미있는 걸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과연 느닷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까? 만약 종말이 온 후에 내가 찍은 사진이 남아 있으면 재미있겠다, 하는 생각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운석이 막 떨어지는 풍경을 촬영하는 상상을 하면서.정말 종말론을 믿었나? 실제 2012년 12월 21일 멸망의 날엔 밖에 나가면 위험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찍지 않았다는 얘기가 무척 흥미로웠다.믿었다는 것보단 그냥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한 거지만 생각해보니까 세상은 이미 망해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이대로 더 나빠지거나 더 나아지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게 더 절망적이지 않나. 그래서 ‘망조의 것들’을 사진으로 모아놓게 됐다. (어떤 장면들을 포착했는지?) 말로 하면 우스워질 수도 있는데.... 그냥 깨진 보도블록처럼 아주 사소한 것들도 있다. 망한 순간을 포착하는 결정적 순간의 사진이란 것은 없고 도리어 사진들을 잔뜩 모아놓으면 세상이 망한 것이 보일까 생각했다. 사진 데이터를 가지고 망한 세상을 시뮬레이션하는 것 말이다. 따로 작업으로 보여준 적은 없지만 계속 사진을 찍어 모으고 있다.그런가 하면 첫 영상 작업인 ‘데굴데굴 데모험’은 ‘관객과의 대화’라는 퍼포먼스 중심의 작업이었다. 영상이 먼저가 아니라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싶어서 영상을 만든 셈인데, 왜 관객과의 대화였나?관객과의 대화라는 게 말만 대화지 그냥 감상을 말하거나 자기가 이해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자기과시형 질문을 던지는 식 아닌가. 만약 상대가 프랑스 감독이면, 자기가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고 막 불어로 질문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자기소개 형식의 이벤트가 일상 속 진짜 대화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느꼈다. 술자리든 어디서든 남 얘기는 듣지도 않고 어차피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래서 실제로 빙고게임 형식의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이기기 위해서 질문을 해야 한다면 정말 궁금한 걸 묻는 게 아니라 단어를 듣기 위한 질문을 할 테고, 그런 일방적인 소통을 극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게임이니까 사람들이 좀 더 이상한 술수를 쓸 거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엉뚱한 질문을 안 하더라. 두 시간 가까이 지나도 게임이 끝나지 않았을 땐 다신 ‘데굴데굴 데모험’은 하기 싫을 정도로 진짜 다들 힘들어 했다. 하지만 영상 제작 자체는 너무 재미있었다. 원래 영상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굉장히 진지해졌다. 영상 작업 스토리와 비주얼에서 모두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편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 ‘바벨’, 스스로를 인터뷰하는 ‘Soulseek/Pegging/Air-twerking’(이하 ‘S/P/A’)은 물론 ‘썰매’에서는 페이스 스왑 앱을 이용해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당신의 얼굴로 바꿔버렸다.느닷없이 작품을 위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편은 아니고 사적인 이야기가 작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실화 같은 톤은 관객들의 작품 이입을 돕는 일종의 장치가 되기도 한다. 출발점이 되는 경험이 1백 프로 작업에 맞는 이야기는 아닐 수 있으니까 내러티브를 조금씩 다듬어가면서 작업을 풀어가는 식이다.만취해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잃어버린 후의 ‘썰매’ 역시 본인의 경험인가?반성하고 있다.(웃음) 커먼센터나 술집 ‘신도시’ 파티에서 몇 번 DJ를 할 기회가 있었다. 특별히 디깅할 필요 없고 촌스럽지만 일단 들으면 무조건 흥이 오르는 음악, 춤추기 좋은 곡을 선곡하는 편이다. 그날 패트병에 소주를 담아서 마시면서 무아지경으로 놀고 있는데 중간쯤 필름이 끊겼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휴대폰이 없었다. 남들보다 유난히 휴대폰을 밀접하게 사용하는 편이 아닌데도 불안했다. 정말 휴대폰 속에 중요한 정보까지 다 넣어두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심각한 공포감이 밀려왔다.가상세계라는 말보다는 어떤 상태라는 단어가 정확하지 않을까? 가상세계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머릿속에 그려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거리감이나 차이를 설명하기엔 이미 너무 부정확해져버렸다.지난 2016년 10월호 미디어시티서울 리뷰 기사로 ‘썰매’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했을 때 이런 답을 보내왔다. “’바벨’ ‘S/P/A’ ‘랠리’ 3부작을 만들 당시에 ‘이미 망했다’는 느낌과 ‘썰매’를 만들 때의 느낌은 다소 다르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더 망할 것 없이 이미 애매하게 망한 것 아닐까?’였는데 한국은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전히 그런가?국내에서나 국제적으로나 워낙 이슈가 많아서 생각을 정리해봐야 하는 때인 것 같다. 끝없이 망하고 있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식물도 키운다.(웃음) 집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서.작품을 보다 보면 가상과 현실의 거리가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 든다. 언젠가는 이 두 세계가 완전히 뒤섞여 구분할 수 없게 될 거라 믿는 건가?이미 그 가상세계란 말도 모호한 것 같다. 가상세계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머릿속에 그려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거리감이나 차이를 설명하기엔 이미 부정확해져버렸다. 오히려 어떤 세계라기보단 어떤 상태에 가깝지 않을까? 옛날에 네이트온에서 온라인, 오프라인, 자리비움 이렇게 상태 표시 하듯이, 그런 일종의 상태로 표현해야 한다. 당신 작품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는 영화 에세이 같은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젊은 소설가들의 영화 수다’라는 칼럼에서 소설가 정지돈과 이상우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당신을 꼽았다. “‘바벨’과 ‘랠리’가 미술작품이 아닌 영화라는 이름으로 공개됐다 하더라도 아마 다른 영화들을 다 씹어 먹었을 것”이라면서. 혹시 영화를 만들 생각도 있는지?전혀 없다. 필요에 따라서 내 작업이 영화인 것처럼, 마치 영화감독인 척은 할 수 있겠지만 아직 진짜 영화를 만들고 싶진 않다. 평소 미술 영상 작업보단 영화를 더 많이 봤기 때문에 내 작업에 그런 요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종종 한다. 그 사실을 아주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영상 작업을 끝까지 볼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목표 중 하나라서 아무래도 영화를 봤던 리듬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또 다른 특징을 꼽으라면 3D, VR, 페이스 스왑 같은 당시 가장 ‘힙’한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로우파이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는 거다.조악한 것을 좋아하고 거기서만 발생하는 에너지 같은 게 있다고 믿는다. 특히 한국의 조악함은 정말 재미있다. 못생긴 게 되게 많지 않나. 도시 관리도 안 되고 천장이 너무 낮은 주거환경이나 짜고 뜨거운 찌개 같은 식문화도 고통스러울 정도고. 그런 면에서 조악함은 서울을 표현하기에 꽤 잘 어울리는 옷이라고 생각한다.작품 색깔 때문인지 힙스터 아티스트 같은 이미지가 있다. 신도시에서 음악을 트는 것도 그렇고.(웃음)그런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는 알겠는데, 스스로는 오히려 점점 촌스러워지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어디 여행 가서도 전시만 보는 게, ‘아우, 이제 촌스러운 미술인 다 됐네’ 싶었다. 사실 힙스터란 어떤 고유의 캐릭터라기보다는 밖에서 보는 시선 아닌가. 트위터에서 누가 자기랑 안 놀아줄 거 같은 사람을 힙스터라고 부른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나 역시 힙스터일 수도 있다. 아무와도 안 노니까.(웃음)‘@seoul_choripan’ 인스타그램 계정도 비공개였다. ‘2015.6.12.-2016.6.11’ 프로필에 암호 같은 기간이 적혀 있었는데 뭘 의미하는 건가?일 년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새롭게 만든다. ‘@seoul_choripan’이 첫 번째고 2016년 6월 12일부터 2016년 12월 31일까지 사용했던 게 ‘@r.i.p_pm2.5’다. 초미세먼지를 pm.25라고 하는데 미세먼지 없는 도시에서 편히 쉬고 싶다는 뜻이었다.(웃음) 지금 사용하는 세 번째 아이디는 아직 아무도 팔로잉하지 않은 상태로 일기장처럼 사용하고 있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식물에 물을 주는 등 주기적으로 해야 할 일들, 가장 일상적인 사진을 포스팅하는 식으로 말이다.그 기록들이 언젠가 인스타그램 사진 1천6백 장으로 만든 화면보호기 작품 ‘Savior’처럼 되지 않을까?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큰 의미 없다. 살짝 보여주자면, 뭐 이런 것들인데... 오늘 먹은 밥, 커피는 몇 잔을 마셨고, 영화는 뭘 봤는지 등의 사소한 것들을 가장 인스타그램스럽게 촬영해서 기록해두고 있다. (셀카도 몇 장 보이는데?) 스트레스 받았을 때는 거울 보면서 셀카를 찍어야지 하고 마음먹었으니까. 이때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