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의 뒷모습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아트바젤 VIP 릴레이션 디렉터 아이린 킴이 지난해 겨울, 마이애미 비치에서 열린 아트바젤의 업무일지를 보내왔다. 비하인드 신이 분 단위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D-4에서 시작한다. | 아트페어,아이린 킴,아트바젤

D-4, 토요일살얼음 낀 도로 위로 노란 택시가 미끄러지듯 오가는 뉴욕에서 비행기로 세 시간, 한겨울에도 서핑과 선탠을 즐길 수 있는 마이애미에 도착! 앞으로 5일 후면 아트바젤 마이애미의 15번째 오프닝이다. 설렘과 긴장감을 양손에 가득 안고 대망의 한 주를 시작한다.D-3, 일요일아침부터 정신없이 바쁘다. 아트페어가 열리는 마이애미 비치 컨벤션 센터에 도착해서 여러 회의를 해야 하고, 직원 배지, 아트페어 기간 동안 전 직원들이 서로 연락하는 데 사용할 휴대전화를 받는 등 바쁜 한 주를 위해 준비할 일이 많다.컨벤션 센터에 도착해보니 갤러리 부스들은 이미 다 세워졌고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작품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붉은 글씨로 ‘Jeff Koons’라고 쓰여 있는 거대한 크레이트, 섬세하게 포장된 페인팅 작품 등 완전한 비하인드 신을 지켜보고 있으니 며칠 후 개막할 아트페어의 열기가 발끝으로 전해지는 느낌이다. 눈을 맞주칠 때마다 동료들 모두 들뜬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릴레이 회의를 마치고 저녁에는 마이매이의 거장 컬렉터 노먼 브라만(Norman Braman)을 위한 디너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드디어 컨벤션 센터의 에어컨 바람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스위스 바젤에서 시작된 아트바젤이 이 머나먼 도시에 와서 자리를 잡고 15년의 역사를 쌓기까지는 노먼 브라만 같은 이들의 도움과 지지가 절대적이었다.세계적 규모의 유럽 아트페어를 마이애미에 유치하기 위해 노먼은 마이애미 시장을 직접 찾아가 설득하고, 도로를 막고 행사를 기획하는 등 온갖 실무적인 일에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아트바젤 마이애미의 아버지’라는 표현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디너 파티는 노먼의 오랜 친구들, 아트바젤 마이애미를 함께 이룩한 사람들이 참석한 작지만 의미 있는 자리였다. 당시의 마이애미 시장부터 마이애미 미술계의 한 축을 이루는 거장 미술 수집가들 -루벨 패밀리(The Rubells), 로사 & 카를로스 드 라 크루즈(Rosa & Carlos de La Cruz), 마티 마굴리스(Marty Margulies)- 그리고 아트바젤의 2대 디렉터들도 모두 함께한 뜻깊은 자리였다.이제는 나이가 지긋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모여서 10여 년 전의 추억을 되새기며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나눈 그날 밤은 오늘날 페어를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큰 원동력이 되었다.붉은 글씨로 ‘Jeff Koons’라고 쓰여 있는 거대한 크레이트, 섬세하게 포장된 페인팅 작품 등을 지켜보고 있으니 며칠 후 개막할 아트페어의 열기가 발끝으로 전해지는 느낌이다.D-2, 월요일이른 아침에 열린 전 직원 회의를 마치고 로사 & 카를로스 드 라 크루즈 개인 컬렉션을 방문했다. 로사가 4년 만에 개인 컬렉션으로 가득한 자사의 저택을 미술계 사람들에게 오픈한 것이다.빛이 한껏 들어오고 정원에서 곧장 푸른 바다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요즘 핫한 루돌프 스팅겔(Rudolf Stingel) 등의 특 A급 작품들이 눈길을 빼앗았다. 어떤 방은 독일 추상표현주의, 어떤 방은 모던아트와는 또 비교되는 최첨단 현대미술 등 하나의 주제 아래 컬렉션이 정리돼 있는 것이 웬만한 미술관 못지않았다.오후에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컬렉터의 집을 방문했다. 브라질에서 손꼽히는 컬렉션을 가진 그는 마이애미에도 집을 가지고 있어(많은 남미 사람들이 마이애미에 세컨드 하우스를 가지고 있다) 인사도 하고 컬렉션도 구경할 겸 시간 내서 찾아간 것.오래간만에 만난 그는 현관문에서 직접 반겨주며 집 안을 가득 채운 라시드 존슨(Rashid Johnson),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등의 작품을 설명해주었다.VIP 릴레이션 디렉터인 나는 컬렉터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미술에 대한 애정과 안목은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예술이 우리를 열정적이고 순수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할까?미술계에서 일을 하면서 가장 좋다고 느끼는 점은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만들어진 업계이기 때문에 그 누구를 만나든 미술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술계에서도 비즈니스는 무척 중요하지만 여전히 순수한 열정이 가장 큰 동력이라는 걸 매번 깨닫는다.D-1, 화요일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세계 각국에서 온 아트바젤 VIP 담당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주재했다.아트바젤은 VIP와의 긴밀함이 정말 강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데, 각 주요 국가에 현지 VIP 담당자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3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 체계적인 ‘조직’인 셈이다.미 대륙 VIP 릴레이션 디렉터로서 나는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아트바젤이 나의 ‘영토’에서 열리는 쇼이기 때문에 많은 회의를 주관해야 한다.쇼 하이라이트, VIP 오프닝 시간, 이벤트, Q&A 등 여러 가지 안건에 대해서 얘기하고 나니 점심도 거른 채 오후 3시가 되었다.사람들은 VIP 릴레이션이라고 하면 단순히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갖는 게 주 업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엄청난 지략과 계획을 요구하는 일이다.컨벤션 센터에 가보니 페어장은 거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언제 이 드넓은 공간에 이렇게 설치가 다 되었나 놀라며 바라보고 있는데 아티스트 척 클로스가 컨벤션 센터 밖에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잽싸게 뛰어나가 아트페어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아티스트 배지를 건네주었다. 페어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존 발데사리, 훌리오 르 파크, 마크 디온, 프란체스코 클레멘테 등)은 여전히 내게 우상과 같은 존재이다.오후에 또 다른 부서와의 회의를 마치고 빽빽한 저녁 일정으로 이동했다. 아트페어의 VIP 오프닝을 하루 앞둔 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수많은 파티가 도시 곳곳에서 열리기 시작한다. 파티를 진하게 즐기는 호기심 어린 나이는 이미 수년 전에 지났으나 일에 관련되어 있거나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주최하는 행사가 많기 때문에 모두 얼굴을 비춰야 한다.오늘 저녁 머스트고 리스트는 리손 갤러리 디너, 루벨 패밀리 컬렉션 VIP 오프닝, 디올 레이디 이벤트, YSL 칵테일 리셉션.은색 이세이 미야케 드레스에 살구색 하이힐이 오늘 나의 파티용 ‘작업복’. 드레스 코드에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서 빠른 시간 안에 네다섯 개의 파티장을 돌 수 있는 차림이라고 할 수 있다.뉴욕, 바젤, 파리, 베니스 등의 전시장에서 언제나 함께한 오랜 친구 같은 구두만 있다면 오늘 저녁의 강행군도 무리 없을 것이다. 다만 ‘테러블’한 마이애미의 교통 체증만 덜하길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