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패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국내 1호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는 미술관이야말로 진정한 패션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패션 초상화 속에서 발견한 스타일링의 정수. 그 옷차림을 단서 삼아 그림 속 이야기를 읽어봤다 | 명화,미술

나는 패션 큐레이터다. 패션을 주제로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패션의 ‘주제’는 매우 광범위하다. 패션은 일상의 의생활을 미적으로 표현하는 문화 활동이자 지역적 차이와 시대적 추이를 반영하는 변화의 풍향계이다.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패션은 그 자체로 삶과 예술, 생산과 소비, 개인의 취미와 집단의 유행 현상을 연결하는 삶의 현장이다.패션 바이어로 첫 이력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하이패션 하우스의 스튜디오와 작업 공방을 들렀다. 유럽의 장인의식과 기술력을 보며 한없이 부러움을 토해내곤 했다. 하지만 내게 패션에 대한 예민한 인식을 심어준 것은 다름 아닌 패션 초상화였다.나는 초상화를 효과적으로 읽기 위해 그림 속 주인공이 입은 옷에 주목했다. 초상화란 말 그대로 ‘인물의 용모와 자태를 묘사한 그림’이다. 초상화 속엔 내가 패션을 통해 배워야 할 모든 것들이 담겨 있었다.용모(Appearance)란 얼굴의 형태, 피부색, 모발의 색, 눈동자의 색, 제스처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발명한 정교한 인상 관리 체계가 곧 패션 아닌가.두 번째로 자태란 단어는 옷을 입은 맵시를 결합한 단어다. 특히 한자로 태(態)란 단어를 보면 마음 심자와 능력 능자가 결합되어 있다. 마음에 막힘이 없이, 나를 드러내고 보여줄 수 있는 용기, 자신감을 뜻하는 말이다. 옷을 통해 감추어진 매력을 끄집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발산될 때, 인간의 자태는 완성된다.엘리자베스 여왕의파워 드레싱초상화 속 모델에게서 나는 그들의 애티튜드를 발견했다. 각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 소품과 함께 옷맵시를 드러내는 초상화는 현대의 패션 화보 같았다.르네상스 시대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를 보자. 그녀는 유럽 최초의 여성 군주였다. 하지만 주변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여성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궁에 팽배했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인정할 수 없다며 사표를 쓰고 낙향할 정도였다.군주가 된 엘리자베스는 밖으로는 능력을 선보이면서, 안으로는 우호적인 신하를 규합해야 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녀는 초상화를 그려 영국 내에 유포한다.그림 속 엘리자베스 여왕은 70세 무렵이었다. 하지만 여왕의 모습 어디에도 세월의 노쇠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어깨 한쪽에 망토를 걸친 비대칭 디자인, 칼라 뒤에 커다랗게 장식한 나비 형태의 베일은 당시로서도 파격적인 형태였다.하지만 초상화에 내재된 상징적 의미는 더 놀라왔다. 엘리자베스는 평생 7백 장이 넘는 초상화를 그려서 제목을 붙였다. 이 초상화의 이름은 ‘레인보 초상화’다. 여왕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활처럼 휜 것이 무지개다. 그 위에 라틴어로 ‘NON SINE SOLE IRIS'라고 쓰여 있다. 해석하면 ’태양 없는 무지개는 없다‘란 뜻이다.성경에서 신이 인간을 물로 심판한 후, 평화의 상징으로 보여준 것이 무지개다. 이에 빗대어 자신이 영국 백성과 절대자 사이에서 평화를 가져다주는 무지개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왼쪽 소매에는 지혜와 신중함의 상징인 뱀을 수놓았으며, 용기를 상징하는 주홍색의 가운 위에는 많은 귀와 눈을 그렸다. 백성의 신음소리를 듣고, 그들의 삶을 살펴보겠다는 군주로서의 의지였다.가슴 부분에는 여왕의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팬지와 백합, 들장미 문양이 자수되어 있다. 포용적 리더십과 함께 아름다움을 동시에 요구하는 현대판 파워 드레싱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바이블은 아마 없을 것이다.우아함의 미학, 스카프프랑스 출신 화가 베르나르 몽벨이 그린 두 편의 초상화를 보자. 그가 그린 패션 일러스트와 유화엔 1910~1940년대 초에 이르는 현대 패션의 역사가 녹아 있다. 1920년대 그는 의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했다.그림 속 주인공은 밀리선트 로저스, 거대 석유재벌 스탠더드 오일의 창립자 헨리 로저스의 딸이자 상속녀였다.그녀가 입은 이브닝드레스는 입체재단 기술을 이용해 정교하게 만든 주름을 넣은 탓에 격조 높은 우아함이 배어난다.이 드레스를 더욱 고혹적으로 만드는 건, 오렌지색 시폰 소재의 스톨이다. 깊게 파인 가슴선과 어깨를 껴안으며 에로티시즘을 농밀하게 녹여낸다.두 번째 그림 속 주인공 엘지 드 볼프는 미국의 배우이자, 1931년 란 제목의 최초의 인테리어 관련 책을 출간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다.그녀의 목을 감싸고 있는 청색 스카프가 눈에 들어온다. 검정색 물방울무늬가 큼지막하게 프린트된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스카프. 그녀는 윈저 공작부인이나 재벌 가문 밴더빌트의 안주인과 어울리며 당시 최상류층 가정의 실내 디자인을 가볍고 명징한 느낌의 로코코풍으로 연출해주는 일을 했다. 단순함과 간결함을 원칙으로 실내 내부의 모든 가구와 내벽, 커튼에 이르는 통일성을 중요시했다.그녀의 패션 또한 마찬가지다. 검정색 벨벳 코트와 백색 실크 블라우스, 하얀색 장갑을 낀 손으로 살포시 만진 카메오에 이르기까지, 간결하면서도 균형 잡힌 매력이 돋보인다. 당시로선 획기적으로 머리를 파란색으로 물들이고 다녔으며 표범무늬를 인테리어에 사용하기도 했다.1865년생인 그녀, 나이를 계산해보니 초상화를 그릴 때는 65살이다. 목선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겠지만 스카프가 노년을 한층 더 우아하게 만들어준다.오프숄더 드레스의 시크함르네상스 초상화를 공부하며 나는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라는 단어를 배웠다. 이 말은 현대적으로 번역하면 ‘무심한 듯 시크하게’란 뜻과 그대로 상응하는 말이다.여기 소개하는 그림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화가 도로시 존스턴이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 앤 핀리를 그린 초상화다.앤 핀리는 당시 좋은 몸매에다 대담하고 강렬한 눈동자를 가진 탓에, 친구들을 위해 모델로 자주 섰다고 한다. 그녀의 패션은 가히 1920년대의 정수라 할 만하다. 코르셋을 벗어 던진 몸과 단발머리, 어깨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청색의 오프숄더 드레스에 무늬를 넣은 에이프런을 덧대어 이중 배색 효과를 냈다.하지만 내가 이 그림에 끌렸던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시선 때문이었다. 이제껏 만난 패션 초상화들이 누군가 자신을 봐주기를 갈망하며 스스로 ‘대상물’이 되기를 자처했다면, 앤 핀리는 이 관계를 뒤집어엎는다.‘스프레차투라’란 원어의 느낌대로 ‘누군가를 경멸하는’ 듯한 ‘우월적인 시선으로 쳐다보는’ 눈빛.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함부로 밖으로 토해내지 않으면서도 자신감으로 꽉 찬 내적인 매력이 전해져 온다.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듯한 동시에 멋진 스타일링을 보여주는 앤 핀리. 무심한 듯 시크하게(Effortless Chic)란 바로 이런 것이다.다채로운 매력의 모자르누아르의 그림 속 풍경이 유독 정겹다. 뱃놀이를 하며 오후의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원경으로 보인다.그림 속 배경은 조정 경기가 자주 열렸던 파리 근교의 샤투(Chatou)란 곳이다. 르누아르는 도시 외곽의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 이곳을 자주 들렀다.화가는 당시 패션 잡지를 위해 유행 의상들을 자주 그렸다. 화가 자신이 18세기 로코코 시대의 따스하고 화려한 붓 터치를 가진 거장들의 그림을 루브르에서 습작하며 그림을 배워왔던 탓인지, 그의 그림은 환한 빛이 전면을 메운다.테라스에 등을 기댄 예쁜 두 자매의 모습(실제 모델은 자매가 아니었다)이 곱다. 언니가 입은 짙은 청색 플란넬 드레스는 당시 뱃놀이에 나선 여인들이 즐겨 입던 패션이다.버크럼(Buckram)이라는 풀 먹인 빳빳한 광목으로 챙을 만들고 그 위에 벨벳으로 한 겹 두른 후 꽃으로 장식한 여인의 모자가 눈에 들어온다. 진청색과 대조를 이루는 빨간색 모자는 여인의 옷과 피부 빛깔과 하나로 통합되어 토털 패션의 전형을 보여준다.또 다른 소녀의 머리를 장식한 플라워 포트(Flower Pot, 화분을 얹은 모습을 연상시키는) 모자도 인상적이다.패션 심리학에서 모자는 매력과 품위를 더하고 귀염성을 부여하며, 주의를 집중시키고, 활동성도 키워준다고 한다.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때 모자만큼 다이내믹한 인상의 변화를 주는 패션 아이템도 없다.초상화 속 모자의 디자인만큼이나 그것을 소화하는 두 모델의 태도도 다르다. 그림 속 모자의 느낌을 찬찬히 살펴보라. 붉은 모자는 관람객의 시선을 끌고, 형형색색 꽃으로 장식된 모자는 소녀의 귀여움을 한껏 담고 있다. 야외 테라스의 따스한 풍경에 방점을 찍는 것은 다름 아닌 그녀들의 모자다.이렇게 옷이란 인간을 상수로 한다. 패션 초상화 속 모델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입은 옷은 모델과 혼연일체가 되면서 제3의 효과를, 의미를 만들어낸다.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생을 응시하고 자신을 연출할지 고민하며 옷을 입을 때 ‘패션’은 태어난다.그림 속 여인들은 동일한 패션 아이템과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어도 저마다 섬세한 차이를 빚어낸다. 나는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미세하지만 파면 팔수록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에 끌렸다.현대 패션은 점점 패션 산업이 주도했던 트렌드에 의지하기보다 고유한 스타일을 가진 인간을 염두에 두고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산업의 지형이 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태도가 바뀐 것이다.내가 미술관에서 패션을 배웠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매 시즌마다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를 반영하고 비추는 책이나 방송, 혹은 인스타그램에 실시간으로 뜨는 셀러브리티의 옷차림보다 오랜 역사를 통해 미술관 한자리에서 여전히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저 그림 속 여인들의 풍모에 끌렸던 탓이다.그들의 자태를 느린 호흡으로 따라 하거나 그림 속 인물들의 사연과 현실,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배경이 옷의 스타일링과 맞물려 하나가 되는 그 느낌! 나는 아마도 여기에 반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당신도 그림 속 여인들의 패션에 빠져보라. 그곳엔 스타일링의 정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