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Diary] 청교도의 저녁식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이 세상에서 먹는 즐거움이 사라진다면? 음식의 천국이자 미식의 황무지인 뉴욕은 먹는 즐거움이 사라진 세계의 축소판이다. | 음식,뉴욕,김사과

뉴욕은 진정한 가성비의 도시다. 특히 음식에 있어서 그렇다. 길가 푸드트럭의 삼달러짜리 베이글 샌드위치부터 르 버나뎅(Le Bernadin)의 삼백달러짜리 런치 코스까지 지갑사정에 걸맞은 한 끼를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다.분위기를 따르겠다고? 풍성한 백발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채 꼿꼿이 앉아 브런치를 즐기는 업타운 부자 할머니들의 냉랭한 시선을 한없이 즐길 수 있는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오스트리아 식당에서부터 일요일 점심 외식 나온 중국인 가족들로 터져나갈 듯한 차이나타운의 딤섬 전문점, 그리고 다운타운 훈남훈녀들로 가득한 애비뉴A의 쿨한 말레이시아 식당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당신을 기다린다.주말에 친구들을 초대하려는데 무슨 요리를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고? 해산물로 가득한 첼시마켓 (Chelsea Market),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온갖 종류의 홈메이드 파스타를 구입할 수 있는 이탈리(Eataly), 한식 파티를 원한다면 신상 한국 라면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한아름수퍼(H-Mart)가 있다.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가 않다면? 뉴욕은 배달 요리의 천국이다. 포스트메이츠(Postmates) 클릭 몇 번이면 장 조지(Jean George)가 소호에 차린 힙한 식당 머서 키친(Mercer Kitchen)의 크림처럼 녹아 내리는 초콜렛케이크를 이불 속을 뒹굴 거리며 먹어 치울 수 있다. (케이크 값의 3배쯤 하는 배달료를 기꺼이 지불할 생각이 있다면!)통장이 텅 비어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 심리스(Seamless)라면 단 돈 칠 달러짜리 마파두부 런치 세트를 문 앞까지 가져다 줄 것이다.그렇다. 나는 음식의 천국에 살고 있다. 스시, 스테이크, 짜장면, 쌀국수, 랍스터, 오이스터, 파스타, 피자, 햄버거, 돈까스, 커리…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카페에서 걸어서 10분 이내의 거리에서 내가 맛 볼 수 있는 음식의 종류는 끝이 없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즉시 5가지 이상의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는 짜증나는 재능을 가진 인간으로서 지금부터 뉴욕이 가진 참을 수 없는 식생활 전통에 대한 불평을 시작해 보겠다.처음 뉴욕에 왔을 때, 나는 두 달 동안 아무 요리도 안 했다.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5년 후 뉴욕에 왔을 때는 세 달 동안 아무 요리도 안 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뉴욕의 슬픈 아파트 구조에 있는 듯 하다.뉴욕의 아파트는 집 안에서 요리라는 대참사가 벌어지리라고 전혀 가정하지 않은 채로 지어지는 게 분명하다. 예를 들어서, 지난 추수감사절에 나는 아파트 옆집에서 내가 이사 온지 6개월만에 처음으로 요리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 집에서 칠면조를 굽기 시작하자마자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우리 집 화장실 환풍기를 타고 넘어왔기 때문이다.나는 그 집에 6개월간 살면서 단 한 번도 화장실에서 음식 냄새를 맡은 적이 없다. 나는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그 동안 이따금 끓여먹던 라면과 김치볶음밥의 냄새는 그렇다면 어느 집의 화장실 환풍기로 향했을까? 월요일 저녁,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하여 샤워를 하는데 문득 풍겨오는 김치 탄 냄새를 맡으며 그 혹은 그녀는 어떤 생각에 빠졌을까? 인생 정말 X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곰곰이 생각해보자. 뉴욕에서 요리의 불가능성에 관해서는 꽤 많은 추억이 있다. 몇 년 전 브루클린에 머물 때, 딱 한 번 베이컨을 구워 먹었는데 외출에서 돌아온 룸메이트 아가씨가 보였던 원한에 사무친 듯한 그 표정… 미드타운의 어떤 아파트에서는 스테이크를 구웠더니 화재경보기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전자렌지를 2분 이상 돌리면 온 집안의 전기가 차단되었던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쿨한 아파트는 또 어떤가. 그리하여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도대체 뉴욕에 사는 이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뭘 어떻게 먹고 사는 것일까?내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 사람들은 집에 있을 때 대체로 샐러드나 포장음식, 혹은 전날 식당에서 먹다 남아 싸온 음식들을 전자렌지에 돌려 먹는다. 일주일에 세 번은 혀가 델 듯 뜨거운 국물음식을 먹어야 혈액 순환에 문제가 없는 나로서는 파탄적이라 할만한 식습관이다. 이렇게 편리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인지, 언뜻 보면 압도적인 선택의 가능성으로 넘실대는 듯한 도시에서 소박한 매일매일의 먹는 기쁨은 기이할 정도로 차단되어 있다. 약이라도 한 듯 돌아버리게 만드는 독한 힙스터 커피라면 얼마든지 있지만 적당한 맛의 커피와 휴식을 제공하는 동네 커피숍은 찾아보기 힘들다. 근사한 사람들로 가득한 브런치 스팟은 널려 있지만 제대로 만든 프렌치 토스트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동네 빵집들의 퀄리티는 ‘내가 이러려고 뉴욕에 왔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왜 유명하다는 프랑스 빵집들의 크루아상은 죄다 그 모양인가? 왜 뉴욕의 명물이라는 베이글 샌드위치 맛집은 이다지도 희귀한가? 왜 날이 갈 수록 홀푸드 마켓에서는100% 자몽주스같은 것도 찾기가 힘든지. 한식당으로 가득한 케이타운에 김밥천국 하나 없는 이유는? 하지만 무엇보다, 그 많은 백화점의 지하에는 왜 푸드코트 대신에 향수가게가 있는 걸까? 그리고 끝날줄 모르는 유기농 열풍! 풀만 뜯어먹고 산 소고기의 뻣뻣함이란! 유기농 딸기의 싱거움은 또 어떤가! 아아, 음식의 즐거움을 모르는 미국인들! 청교도들의 후예!가끔 한국에서 가져온 외할머니표 된장으로 된장찌개를 끓여먹을 때가 있다. 너무 맛있어서 기분이 좋아지고 다시 된장찌개 냄새로 가득한 누군가의 욕실을 생각하며 기분이 나빠진다.가끔은 집 앞 수머파켓에서 사온 유기농 채소에 구운 소금과 올리브유를 뿌려 먹는다. 디저트는 에비앙 한 컵과 비타민 두 알.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한마디로 평온하다.아무 냄새도, 자취도 남기지 않고 내 뱃속으로 깔끔하게 사라진 채소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건강에 좋겠지. 피부결이 개선되고 살이 찌지 않겠지. 그래, 그럴거야. 내일 아침엔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나겠지. 그렇다면… 좋다. 나는 나아질 것이다. 아마도? 모르겠다. 이것이 뉴요커적 삶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