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자'의 아카이브만큼 소중한 것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바자>의 지난 1백50년 거대서사를 편집하며 사소한 생각을 해봤다. | 하퍼스바자,바자,추억

인구의 1%나 될까? 패션 잡지를 보는 사람 말이다. 결혼식도 마감 일정에 맞춰 해야 하는 잡지 기자의 신세 한탄이야 한도 끝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 잡지를 만드는 이 시대착오적이고 노동집약적이며 (디지털) 시대와 불화하는 일이 완전 소중한 순간들은 종종 찾아온다.(그 ‘약빨’로 여기까지 왔다.) 이달 의 창간 1백50주년을 기념하는 일련의 기사들을 편집하면서 나는 의 아카이비스트가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누군가 월급을 챙겨준다면.)1867년 창간 이래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는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함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의 참상을 기록했고 공습지와 농가에서 전쟁물자를 나르는 여성들을 패션 화보에 등장시켜 사기 증진에 힘을 보탰다. 캐서린 헵번의 자신만만한 미소나 코코 샤넬의 루스한 드레스 라인에 스며 있던 개인주의와 여성성의 해방을 광활한 사막이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거대한 건축물 같은 야외에서 촬영한 패션 화보를 통해 선언하기도 했고, ‘Swinging Sixties’로 회자되는 1960년대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변화의 움직임을 진 시림튼이 나사 우주복을 입은 화보로 담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의 역사 아래로 세계의 역사가 흐르고 있었으며 에디터와 아트 디렉터 그리고 함께 한 사진가들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그 치열하고 찬란한 역사의 디테일을 어떤 단어로 설명하는게 가장 적절할까 고심하며 새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제법 진지한 성찰이 뒤따랐다.그런데 말이다. 의 지난 1백50년의 거대서사에 감동하면서 한편으로는 나를 지탱하는 건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처음 기명 기사가 실린 잡지를 손에 들고 내 이름을 찾던 순간. 치명적인 주의력 결핍인 내가 데드라인 덕분에 모니터와 합일되는 몰입의 순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티스트와 언어의 한계를 너머 소통이 된다고 느끼는 순간. 스튜디오에 명멸하는 카메라 플래시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 무섭고 어렵기만 하던 선배들이 약한 모습으로 기대오던 순간. 기나긴 밤, 카톡 창 길게 띄워 놓고 다른 잡지의 친구들과 이러고 사는 건 우리뿐이라고 자조하는 순간. 일 년에 한 번씩 만나서 똑같은 레퍼토리 수년째 반복하는 옛 동료들과의 1박2일 술자리의 순간들. 반 페이지짜리 기사도 버거워하던 후배가 6피짜리 ‘장통’을 척척 쳐내는 순간. 별거 아닌 얘기에 낄낄대느라 소득 없이 야근한 새벽 3시, 한 팀으로 묶인 절친한 동료들과 진토닉 한잔에 취기 올라 헛소리가 이어지는 밤 같은 것들 때문에. 결국 남는 건 역사에는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과의 사소하고도 보잘 것 없는 추억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