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말하는 소설가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소설가들이 자기 직업에 대해 말하는 책들이 부쩍 눈에 띈다. 소설 쓰는 일의 환희와 좌절 그리고 결과물이 벌어다주는 돈에 대해 궁금하다면 읽어볼 만한 책들이 이렇게 많다. | 책,소설가,소설,김기창

'소설가에 대한 정의’는 소설가의 수만큼 존재한다. 1급 소설가들의 인터뷰집 인 (다른)를 보면 각자 다른 정의를 내리자고 계획한 후 인 터뷰를한것처럼보일정도다.‘소설’이라는문학장르의자유분방한형식도 한 원인이겠지만 더 핵심적인 이유는 자신들도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잘 모 른채로소설가가되었기때문일것이다.이와관련된말을하고,글을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본다고나 할까? 그래서 ‘소설가에 대한 정의’는 그것을 누가말하고있느냐가정의의정확성여부보다중요하고관점포인트도거기 에 있다.무라카미 하루키는 (현대문학)에서 소설가의 자질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에게 소설가란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하는 인종’으로 ‘불필요해 보이는 이야기, 멀리 에둘러 돌아가는 이야기에 진실, 진리가 잠재되어 있다’고 여겨야 하는 사람들이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소설가의 자질과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소설가는 ‘소설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내적인 충동’과 ‘장기간에 걸쳐 고독한 작업을 버텨내는 강인한 인내력’을 갖춰야 한다. 마라톤을 즐기는 소설가다운 정의다.김연수가 쓴 (문학동네)은 소설 작법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글의 주제와 무관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책의 이런 형식은 작가가 생각하는 ‘소설가에 대한 정의’를 드러내는 데 정확히 부합한다. 왜냐 하면 무언가를 매일 쓰다가 어느 순간, 소설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냥 써서는 안 된다. 작가는 “지옥불에 불타는 건 자아뿐”이라는 어느 신학자의 말 을 인용해 지옥불에 기꺼이 뛰어들어 자신의 자아를 ‘요령 있게’ 불태우는 글을 쓰는 사람이 소설가라고 말한다. 어떤 주제를 다루어도 다정다감함이 느껴지 는 글을 쓰는 작가다운 정의다.밀란 쿤데라는 (민음사)에서 ‘소설가에 대한 정의’를 논하며 소설가의 태도에 주목한다. 그는 소설가와 서정시인을 비교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대 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방법은 그것을 다른 것과 비교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정시인은 ‘자신의 고유한 영혼과 그 영혼을 들려주고 싶은 욕망으로 빛을 발 하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소설가는 이를 미성숙함으로 여기고 성숙함으로의 이행을 위해 ‘자신의 서정 세계를 폐허 위에’ 올려놓는 사람이다. 소설가는 자 신을 포함한 세계에 대한 이른바 ‘객관화 과정’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비극 속에서도 희극적인 면을 절묘하게 포착하는 작가다운 정의다.장르소설을 주로 쓴 모리 히로시는 위의 세 사람과는 달리 실용적 측면에서 ‘소설가에 대한 정의’에 접근한다. (북스피어, 관련기사: 소설가가 버는 돈)라는 책 제목처럼 작가는 소설가라는 직업의 수익 구조를 세무공무원들이 칭찬할 만큼 시원하게 밝힌다.작가 역시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이며 수지가 맞지 않는다면 소설가라는 직업 역시 문패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일본에서 활동하는 소설가들의 수익 구조라 한국 현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시간당 6천자를 쓸 수 있는 사람으로 하루 종일 1천자 쓰는 것도 벅차다는 한국의 일부 유명 작가들과는 생산성에서 비교가 안 된다.위에 나열된 작가들의 정의를 종합하면 소설가의 정의는 이렇다. 자신의 서정 세계를 페허 위에 올린 다음, 소설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적 충동에 시달린 채로, 매일 매일 자아를 불태우는 글을 쓴 후,수지 맞는 장사를 해야하는 사람. 작가 마다 차이가 있지만 이 정의들이 시사하는 바는 다소 명확한 것 같다. 몸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가급적 소설가는 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