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계의 반영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전쟁터와 고향인 이란의 거리를 오가며 작업해온 보도사진가 뉴샤 타바콜리안(Newsha Tavakolian)의 대표적인 작업은 자기 세대의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도사진계의 상위 그룹 내에서 이름을 떨치는 작가를 테헤란에서 만나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 사진,전시회,뉴샤 타바콜리안,보도사진

슬픈 낯빛의 한 여성이 자기 앞에 놓인 생일 케이크 촛불 너머의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군복과 자긍심으로 포장된 페시메르 가의 무장 여전사들이 멍하니 시선을 내리깔고 있다. 실의에 빠진 중산층 청년이 자신의 집이 아닌 어느 어두운 아파트 안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다. 알 수 없는 미래로부터 눈을 돌린 채였다. 뉴샤 타바콜리안의 사진 속 피사체 인물들은 카메라 앞에 마주 섰을 때조차 지나온 삶의 경험에서 기인하는 불신 혹은 상처가 서린 눈빛을 내보였다. “제 사진이 어둡다는 말을 듣곤 해요.” 뉴샤는 말문을 열었다. “현실 세계의 반영일 뿐이죠.” 육체적, 정신적 갈등의 최전선에서 촬영되는 작가의 피사체들은 좀처럼 기뻐하지 않을뿐더러 드러내놓고 비통해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그들은 카메라 너머의 진실을 향한 갈망을 몸소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약속되었다 하지만 늘 붙잡을 수도 없는 희망의 징표를 따라서 말이다.뉴샤의 사진 작업의 범위는 계속해서 포트폴리오를 늘려가고 있는 예술 사진 및 영상설치뿐만 아니라 중동과 아프리카의 다양한 다큐멘터리 사진까지 폭넓게 걸쳐져 있다. 약 20년 전인 16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카메라를 접했던 뉴샤는 테헤란에서 사진기자로 데뷔했던 당시의 자신을 “외딴 곳에 불시착한 외계인”에 비유했다. 뉴샤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저 이란의 청년 실업률에 일조하지 않으려는 소일거리 수준이 아니었다. 그녀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 차단되었던 세계로 진입하는 티켓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뉴샤가 사회적 이슈에 관한 열정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서 자리 잡았다. “나는 특별히 호기심이 강하다거나 외향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카메라 렌즈 뒤에 서면,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고개를 드는 게 느껴져요.” 뉴샤는 이어서 말했다. “피사체에게 즉각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려 해요. 이는 내가 그들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그들과 하나가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죠.”기회란 뉴샤의 세대에게 주된 요소는 아니었다. 당시 그녀에게 할당되는 업무가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여지도 생겨났다. “미친 듯이 일하면 할수록, 나가고 싶다는 열망은 더 커졌죠.” 뉴샤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20년 후, 등 여러 곳을 거쳐오면서 다수의 상을 받은 뉴샤는 보도사진계의 상위 그룹 내에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뉴샤의 예술적인 사진들은 대영박물관, L.A. 카운티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하지만 사진이 물리적 환경이라는 닫힌 문을 열어젖히는 메커니즘으로서 기능했던 20여 년 전 이후부터, 뉴샤에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일단 더 이상은 16살이 아니죠. 만약 오늘 당신이 제게 특정 주제나 종교에 관해서는 접근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걸 해내겠다며 목숨을 거는 일은 없을 거예요.” 오히려 최근 뉴샤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노력이라면 “인물사진에서 레이어를 제거하는 법, 피사체 배경의 모든 노이즈를 제거하는 법” 등이다. 이렇게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작업을 거치면서 인물들이 카메라와 자기 자신, 바깥세상 앞에서 솔직해질 수 있는 핵심적인 순간을 포착해낸다.뉴샤가 예술사진으로 되돌아간 것은 보도사진가로서 자연스러운 진화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당시 2010년 즈음은 이란 녹색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시기였다. 여러 달 동안 불안정했던 정치 분위기 속에서 거리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은 스파이 취급을 받았다. 뉴샤에게 더 이상의 작업은 불가능했다. “‘누군가 당신의 코를 쥐고 있대도 죽는 일은 없다. 입을 열어 계속 숨 쉬면 된다’라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그랬죠. 예술사진을 발전시키기로 했어요. 제겐 매우 소중한 프로젝트부터 시작했습니다.” ‘리슨(Listen)’은 가수를 꿈꾸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인물사진 시리즈이다. 이슬람공화국에서는 여성이 공연하는 게 금지되어 있다. 이 시리즈 속 여성들은 히잡을 쓰고 반짝거리는 커튼을 배경으로 가상의 관객 앞에서 노래한다. 뉴샤는 말했다. “국제적인 잡지에 실릴 이란 사진을 촬영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이란 사람들에게 이란을 보여주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사진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존재와 사고방식, 우리가 맞닥뜨리는 이슈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볼 수 있어요.”보다 최근에 소개된 ‘룩(Look)’은 드물게 실존주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리즈이다. 이 아티스트가 개인적인 고립의 시기를 극복해내기 위해 스스로 내맡긴 도전의 산물이다. 뉴샤는 자신의 집을 경계로 삼아 침실을 임시 스튜디오로 개조했다. 그리고 여러 달 동안 자신과 같은 건물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하러 와달라고 초대했다. 여기서 뉴샤의 카메라 렌즈는 탐구자와 피사체 간의 연결 고리가 되어주었다. 카메라의 양쪽 끝에 놓인 인물들을 드러냈고, 두 이웃이 물리적 장소를 초월하는 공간을 공유한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사진가는 작업 과정에서 한쪽으로 물러서도록 요구 받을 수 있다. 개입하지 말아야 할 순간에 관해 묻자 뉴샤는 ISIS에 붙잡혀 약물에 취해 성폭행 당한 소녀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소녀는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뉴샤는 말했다. “그때 저는 소녀의 분노를 포착하고 싶은 욕구와 소녀의 뜻을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 사이에서 고민했어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뉴샤는 ‘내가 찍지 않았던 사진을 위한 수천 마디의 말(A Thousand Words for a Picture That I Never Took is Newsha’s take on the experience)’이라는 영상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그 작품에는 검게 나온 사진이 포함되었다. 그 검은 사진이란 사실상 촬영되지 않은 사진이다. 그리고 소녀의 이야기를 녹음한 소리를 곁들였다. 뉴샤는 자신만의 예술가적 진실성을 보호하는 데도 똑같이 치열했다. 2013년에는 카미낙 게스통(Carmignac Gestion) 재단에서 수여한 5만여 유로의 상금을 박탈 당하는 일이 있었다. 작업 프레젠테이션을 둘러싸고 의견 충돌이 벌어진 후였다. 필름 위에 포착된 인물들을 향한 뉴샤의 열망과 존중은 그녀의 심도 있는 사진 작업 속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숭고함을 지향하는 태도는 사진가로서 가치관을 굳건히 하는 데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러한 면에서 뉴샤는 역시 탁월해 보인다.※ 뉴샤 타바콜리안의 전시는 오는 4월, 테헤란의 아반바르 갤러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www.ab-anba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