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 그랜드마더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힙’한 할머니와 자주 마주치고 싶다. 위트가 더해진 연륜만큼 기분 좋은 건 없다. | BAZAAR,바자

요즘 취미가 하나 생겼다. ‘힙’한 할머니 목격담을 채집하는 것이다. 어디선가 본 적 있다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마치 설화 같은 이야기를 모은다. 사람들이 그들을 마주치는 곳은 주로 지하철이나 길거리. ‘단발에 앞머리를 더한 산뜻함’ ‘보라색 컬러의 헤어스타일과 가죽 재킷의 쿨한 매칭’ ‘좀 더 과감한 백발에 투 톤 컬러 염색’ ‘호피무늬 바지에 핑크색 포인트’. 패션이 ‘핫’한 어른이 있는가 하면 ‘쿨’ 한 어록을 남긴 이들도 있다. 어느 트위터리안의 제보에 따르면 귀가 잘 안 들리는 93세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해도 자꾸 고개를 끄덕이기에, “다 알아들으세요?”라고 물었더니 할머니 가라사대 “다 알 필요 없어”.위트가 더해진 연륜만큼 기분 좋은 건 없다. 센스 넘치는 ‘카톡’ 종결형 어미를 체득한 아무개 할머니의 멘트도 캡처해서 저장했다. 돋보기 안경을 끼고 손주에게 직접 타이핑해서 보냈을 ‘수요일 제사임’이란 짧고 굵은 ‘영(Young)’한 메시지는 좀 많이 귀엽지 않은가. 현아의 ‘버블팝’을 벨 소리로 걸어둔 할머니는 또 어떻고! 목격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쿨’한 그녀들을 마주치는 순간, 기분이 좋아진다고. 나 역시 평소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광대를 한껏 끌어 올려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서 이 모든 것을 향해 하트 버튼을 눌렀다.https://www.instagram.com/p/BOndhGSB0-z/?taken-by=baddiewinkle인스타그램으로 건너가면 막강한 팔로어 숫자를 거느린 은발의 ‘패피’들이 있다. 1928년생 배디 윙클(@baddiewinkle)의 ‘#OOTD(Outfit Of The Day)’를 모아서 모자이크 한다면 그야말로 형형색색 파스텔 톤 무지개다. 사이하이 부츠, 키치한 선글라스, 보디수트, 오버사이즈 저지, 하이웨이스트 쇼츠. 비슷한 나이 대 여성들이 시도하지 않는 과감한 의상도 자기 것으로 완벽히 밀착시켜 소화해낸다. 스왜그 넘치는 ‘셀피’ 실력은 또 어떻고! 누구든 배디처럼 화려하게 입을 수는 있어도 ‘자신감’과 ‘흥’을 5:5 비율로 버무린 특유의 아우라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사진가 아리 세스 코헨은 뉴욕 거리에서 마주친 ‘실버 패피’들을 모아 이란 책을 냈다. 패셔너블한 자신의 할머니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던 것이 출발점이었다. 단순히 옷 잘 입는 노신사, 노부인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과 연륜에서 비롯된 생각과 조언까지 따옴표를 넣어 실었다. 시니어 패션의 ‘바이블’ 같달까? “얼굴 주름을 펴는 수술보다는 선글라스가 훨씬 나아. 세월로 황폐해진 흔적들을 감춰주고 스파이처럼 보이게 해주니까.” “젊을 땐 다른 사람을 위해 옷을 입어. 하지만 나이가 들면 자기 자신을 위해 옷을 입게 되거든.” 여기에 핫 핑크 포스트잇을 붙여두었다. 지혜로운 스타일을 갖춘 어른을 만나는 건 행운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최근에 두 번째 책을 출간했는데 ‘Older & Wiser’라는 부제가 참 와 닿는다.https://www.instagram.com/p/BPvJLfTg47B/?taken-by=carmendellorefice_official얼마 전 런웨이에서도 시크한 은발의 모델이 좌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벨라 하디드도 켄달 제너도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경지에서 고고하게 워킹하는 카르멘 델로피체(@carmendellorefice_official)는 86세의 나이로 ‘현역 최고령 모델’로 등재되어 있다. 젊은 시절 의 커버를 장식하기도 했던 그녀는 작년 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농담을 던졌다. “105살까지 할 거예요.(웃음) 그 정도는 해야 직업을 바꿀지 말지 결정할 수 있겠죠?”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한 발 앞서간다는 뜻의 ‘힙하다’는 신조어를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에게 쓴다는 것이 ‘난센스’일 수 있다. 거의 다 해봤고 대부분 다 아는 걸 굳이 뭘 또 새롭게. 호기심이 그득히 맺혀 활기차고 팔팔한 ‘힙’함은 원숙한 노년의 삶과는 거리가 좀 멀게 느껴지는 단어 아닌가. 얼마 전 서점에 갔는데 우연히 마주친 라는 책의 표지에 시선이 머물렀다. 한번도 본 적 없는 할머니의 얼굴이었다. 이 책은 생애구술사를 바탕으로 취재한 노년의 삶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린다.총 8명이 소개된 책 가운데 ‘자서전 쓰는 여자 최영선’ 챕터의 이야기가 마음에 맴돌았다. 저자가 관찰한 최영선은 “70대 할머니인데도 늘 개성 있는 옷차림과 스타일로 나이를 넘어선 경쾌함과 발랄함을 발산”하며 “무거움이나 지나친 진지함은 ‘적성에 맞지 않아’ 몸과 마음을 늘 가볍게 유지”하며 일하고 “천성적으로 자유분방함을 사랑하는” 여성이다. ‘끌어당기는, 주목하게 만드는 존재감’ ‘자기답게 사는 것’이 바로 책의 저자 김영옥이 8명의 삶을 통해 새롭게 정의한 ‘노년의 미(美)’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힙’한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