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맨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캐나다 아티스트 로드니 그레이엄(Rodney Graham)의 동안 비결은 호기심일 거다. 그는 경계도 제한도 없는 호기심에서 발전된 주제를 가지고 마르셀 뒤샹부터 1970년대 영화학 수업까지 정교한 레퍼런스로 가득한 자서전적이고 유머러스한 작품을 선보인다. | 전시,로드니 그레이엄,라이트박스

개념미술의 거장 존 발데사리는 몇 년 전 한 인터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가로 로드니 그레이엄을 뽑았다. 캐나다 출신으로 밴쿠버에서 활동하는 그레이엄은 ‘공식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권위적인 미술계에서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문학, 철학, 심리학, 역사, 미술에 걸친 탐구를 회화, 조각, 사진, 영화, 텍스트 전 장르에 실험하면서 그레이엄은 지적으로 격렬한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또한 (본인 스스로는 아마추어라고 우기는) 작곡가이자 음악가이기도 하다.하우저 & 워스 취리히에서 3월 11일까지 열리는 로드니 그레이엄의 개인전 주요 이미지는 그의 시그너처 작업인 라이트박스 연작의 신작이다. 황토색 코듀로이 바지, 적갈색 스웨이드 재킷에 선글라스를 끼고 칠판 앞에서 멋스럽게 담배를 피우며 강의를 하고 있는 그레이엄은 이번엔 교수로 분했다. 그는 지금껏 해적, 카우보이, 신학자, 시골뜨기, 재즈 드러머 등 셀 수 없이 많은 캐릭터로 변신해 정교하게 설치된 배경 속으로 들어가 작품을 완성해왔다. 이번에 선보인 또 다른 작품에서는 1960년대 나이트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재즈 드러머를 표방하며 드럼 스틱 대신 나이프와 포크를 쥐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레이엄은 라이트박스 연작과 함께 노스탤지어와 역사적 대중 문화를 재료로 하는 콜라주 작품들도 선보인다. 1980년대 ‘헤어 메탈’ 밴드 시대를 지배한 라는 잡지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다. “음악이 나에게 특별한 주제는 아니지만 오래된 판타지의 저장소이기도 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이처럼 다방면에 관심과 재능을 지닌 21세기 르네상스 맨은 실제로 어떤 사람일까?작품에 사용된 별의별 소품과 20대의 기타로 가득한 밴쿠버 집을 떠나 전시 오프닝을 위해 취리히에 머물고 있는 작가에게 13개의 질문을 담아 메일을 띄웠다.앤티크 가게가 몰려 있는 밴쿠버의 앤티크 로(Antique Row) 근처에 산다고 알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Antiquarian Sleeping in His Shop’이 그곳의 특정 가게를 본떴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하필 왜 자고 있는 골동품 수집가를 연기했나?(웃음)‘Antiquarian(골동품상)’ 작업들은 밴쿠버의 몇몇 골동품 가게 주인들을 모델로 했다. 몇몇은 내 나이 또래의 남자들이어서 작업을 하면서 그들과 나를 동일시하게 됐다. 그들은 대부분 별로 가치 없는, 사람들이 대대적인 집 정리를 할 때 내다버리려고 하는 물건들과 한두 점의 중요한 유물들을 다루는 일종의 큐레이터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 남자가 자고 있냐고? 사실 그 점은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닌데 함께 작업하는 동료 중 하나가 제안했다. 그 제안을 통해 잠자는 모습이 나의 디폴트 자세라는 걸 깨달았다.(웃음) 내가 자고 있는 모습을 처음 모델화한 것은 ‘Halcyon Sleep’(1994)이었고, 자는 모습은 아니지만 무의식 상태는 ‘Vexation Island’(1997)에서 구현했었다.라이트박스 연작에 당신은 정확한 기술적 전문성과 역사성 그리고 유머를 담아낸다. 이를테면 ‘The Gifted Amateur, Nov. 10th, 1962’ 속 배경은 1960년대 웨스트 밴쿠버 중산층 거실의 내부와 분위기를 세심하게 직조한 것이고,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 속 배경도 그러하다. 그런 디테일을 전문적으로 구사하는 것에서 빅토리안 시대의 문체로 그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 사라 워터스(Sarah Waters) 같은 작가가 떠오르기도 했다. 특정한 시대와 직업적 배경, 인물 등을 적확하게 되살리는 일이 당신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사라 워터스라는 작가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게 부끄럽다. 구글링을 해보니 예전에 그녀의 소설을 TV 영화화한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났다. 내가 더 이상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는 걸 우선 고백하겠다. (웃음) 역사적인 배경의 라이트박스 작품을 만들 때는 특히 더 어렵고 도전적으로 느낀다. 고화질의 디지털 이미지로 역사적 상황을 전달하는 느낌이라는 게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감히 이 작업이 영화에서 역사적인 배경을 표현하는 것보다 더 도전적이라고 말하겠다. 그럼에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난제를 풀어내는 나의 해결법은 매우 열심히 일하되 정작 작업에 들어가서는 지나치게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다. 너무 파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난처한 역사적 오류를 피하기 위한 나의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귀신같이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버린다.(웃음)작품 속에서 매우 다양한 캐릭터로 분했는데 어떤 역할에 가장 감정이입되었나?골동품상 캐릭터가 가장 좋다. 그는 책을 읽다 잠들었는데 그 책을 유심히 들여다본다면 - 사람들이 책 뒷면에 있는 안내문을 충분히 읽을 수 있을 만큼 이미지가 또렷하다고 기쁘게 말할 수 있다(웃음) - 테라피스트이자 영화제작자, 음악 아카이비스트인 해리 스미스(Harry Smith)의 인터뷰를 묶어놓은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다.라이트박스 연작은 대개 이면화나 삼면화 방식으로 구성, 전시된다. 이 형태로 제작하는 이유가 있는가?이면화 또는 삼면화 방식은 슬라이드 필름 크기의 제약 때문에 그렇다. 각 이미지는 최대 폭이 6피트(1.8m)다. 더 큰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여러 판(패널)으로 나눠 제작해야 한다. 제약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미지가 이런 방식으로 맞춰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구상하는 일은 도전적이고 재미있다.이번 전시의 제목 는 아주 간단명료해 보인다. 어떤 이유로 제목으로 삼았는지 말해달라.1977년, 한 미디어 역사가가 교실에서 강의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라이트박스 작품 ‘Media Studies ’77’에서 전시 제목을 따왔다. 아마도 그는 비디오테이프 또는 비디오 영화의 상영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1960년대에 들었던 영화 역사 수업의 기억에 기반하여 시대를 1977년으로 옮긴 것이다. 나는 영화학이 자크 라캉의 심리분석과 루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시즘에 의해 지배되고 있던 영상 이론 시대를 약간 조롱하고 싶었다. 칠판의 추상적인 패턴은 라캉의 이론 개요들이 지워지고 남은 자국이다. 내 캐릭터(나이 든 영화학과 교수)의 의상은 좀 더 전 시대의 장-뤽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 같다. 나는 이 작업을 ‘Media Studies ’77(Meet Me in St. Louis)’에서 좀 더 부가적으로 다뤘다. 이 작품에서는 이전에 언급했던 영화에서 나오는 주디 갈런드의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그 교수가 무엇을 강의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것일 수도 있을 거다.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콜라주 작품들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 당신의 이름을 태그한 어떤 인스타그램에서 하우저 & 워스 전시 풍경을 보았는데 예상보다 크기가 큰 작품들이었다. 하얀색 스프레이 페인트와 석고 가루에 가리워진 ‘헤어 메탈(Hair Metal)’ 밴드와 알랭 들롱의 사진들을 보면서 어떤 해석을 하길 바라나?사실 크기가 큰 콜라주 작품은 콜라주라기보단 페인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스튜디오 매니저인 스캇이 헤어 메탈 시대에 발간된 라는 잡지 한 무더기를 구해왔는데 그걸 받자마자 캔버스의 제소(Gesso)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하여 작업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하다가 실패한 페인팅 작업 위에 말이다. 모든 나의 페인팅은 ‘페인팅 위에 페인트된’, 종종 실패 위에 실패한 작업들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순간에 멈추고 결과를 받아들인다. 이 헤어 메탈 밴드 멤버 녀석들은 엉망인 음악 실력과 남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터무니없기 때문에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감을 준다.(웃음) 다른 작은 콜라주 작업은(알랭 들롱 사진 작업을 포함하여) 좀 더 이전에 했던 작업들인데 이번 전시에는 포함되지 않은 다른 사진 작업의 캐릭터를 본떠 일부러 콜라주로 만든 것이다. 1960년대의 번아웃된 은둔자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몇몇 콜라주 작업은 샌프란시스코 매거진의 부분을 사용하였다.얼마 전 매거진에서 음악에 관한 당신의 커리어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당신은 아주 오래도록 음악 활동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드디어 음악 한다는 것을 알리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그동안의 음악이 테마로서, 미디엄으로서 오랜 기간 작업에 침투해왔는데 이제 그것과는 별개로 독립된 음악 활동을 할 예정인가?나는 로드니 그레이엄 밴드를 통해서 음악을 하는데 이것은 여전히 미술 작업과는 별개의 일이다. 음악에 있어서 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그냥 뮤지션일 뿐이다. 아마도 그리 좋지 않은 뮤지션일 테지만.(웃음) 나에게 있어 음악 작업은 다른 방식의 미학적 묻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당신의 작품은 많은 레퍼런스를 품고 있어서 현대미술에 익숙한 서양 관객에게 가장 적합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양문화와 현대미술에 친밀하지 않은 관람객에게 당신의 작품이 어떻게 읽힐지 생각해본 적 있나? 다양한 분야에 대한 탐구심으로 가득한 당신은 왠지 이 부분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내 작업이 유럽 중심적이라는 것에 100% 동의한다. 당신의 지적이 전혀 과장되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 말하건대 이전에는 더 심했었다!(웃음) 내 초기 작업들은 텍스트에 기반하여 많은 맥락과 설명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나 스스로 이런 방식에 지쳐 사람들과 좀 더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작업을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좀 더 퍼포먼스적이고 영화를 비유한 작업을 시작한 명백한 이유이다.당신에 관한 여러 뉴스를 구글 번역기의 도움으로 검색하다가 파트너이자 아티스트인 섀넌 옥사넨(Shannon Oksannen)과 함께 레스토랑을 오픈했다는 뉴스를 보았다.오, 맞다! 나는 한 동네에 사는 섀넌, 스캇과 함께 작은 로컬 베이커리를 인수했다. 원래 그 베이커리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제빵사는 90세였는데 이제 그만 은퇴하고 싶어했다. 우리는 아무도 베이킹을 할 줄 몰라서 사람을 고용하고 베이커리 주인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전혀 식도락가 타입이 아니다.(웃음) 그저 데코(Décor)에 있어서 우리 동네를 발전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토스카나의 와이너리에서 와인 라벨 작업을 했다는 뉴스도 보았는데 그래서인지 당신이 식도락가 타입일 거라 생각했다.(웃음)미술관 자선 경매를 위해 토스카나의 오르넬라이아(Ornellaia)라는 와이너리의 특별 에디션 작업을 했다. 비록 나는 와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무척 즐거운 작업이었다. 라벨에는 내가 불면증이 있을 때마다 써두었던 가벼운 운문시를 넣었는데 이 시는 4행의 연구로 된 시형(Pantoum)을 많이 사용했다. 경매는 꿈만 같았다. 나는 사람들(미술 관객도 아닌,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에게 관심도 없는 와인 컬렉터들이었다) 앞에서 시를 낭독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뜨거운 환대에 기분이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당신 작품에서 재맥락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이제는 ‘크리에이팅’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편집’으로서의 예술이 요구되는 시대이며, 기존의 풍부한 현대미술의 아카이브를 재해석, 재구성, 재전유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한국의 한 아티스트가 전시 오프닝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당신의 말이 전적으로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예술이 순전히 창조적이며 맥락에 전부 의존하지 않기를 바란다. 라이트박스 연작 역시 어느 정도의 맥락을 요구하기는 하지만 내가 이전에 한 작업보다는 훨씬 덜한 편이고 나는 점점 더 그런 방향으로 작품을 만들어나가려고 한다.이번 전시가 끝날 즈음 영국 게이츠헤드의 발틱 아트 센터에서 회고전이 열린다고 들었다.발틱에서의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질 거다. 영상 작업 한 층과 라이트박스 작업 한 층. 주제에 따라 구성되어 있는데 한 공간은 신문을 사용한 이미지들을 모아두었고 또 다른 공간은 ‘The Four Seasons’ 시리즈를 모아두었다. 영상들을 한데 모아서 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예상하는데 제발 괜찮았으면 좋겠다.(웃음)마지막으로 당신이 섭렵해온 수많은 예술과 문학 그리고 음악사의 통로에서 당신은 이 모든 관심사를 관통하는 어떤 진실을 찾아내었나?나의 작업은 과거의 예술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