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떡볶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떡볶이에 관한 작은 잡지를 만들고 싶다. 거기에 싣고 싶은 수많은 떡볶이 가게 가운데 딱 다섯 곳만 골랐다. | 맛집,떡볶이,분식

 런던 떡볶이1호선 자락에 있는 ‘안양’이란 도시. 거기서도 지극히 좁은 동네 ‘박달동’. 내가 나고 자란 이 작은 마을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건 순전히 ‘런던 떡볶이’ 때문이다. 문어, 관자, 복어처럼 탱탱한 해산물을 방망이로 두들겨 ‘딱풀’로 붙여놓은 것 같은 쫄깃한 밀가루 떡, 텁텁한 고추장이 아닌 말간 육수와 고춧가루가 만들어낸 마력 넘치는 국물, 사뿐히 올라간 깻잎의 산뜻한 마무리까지. 주문과 동시에 끓이는 ‘런던 떡볶이’는 오목한 그릇에 담겨 수저로 떠 먹어야 하는 흥건한 국물 떡볶이다. 칼칼한 데 맵지 않으며 당도와 산도가 기가 막히게 어우러져 국물이 입에 착착 감긴다. 어떨 때는 순대와 튀김의 체취로 소스의 본질을 망쳐놓고 싶지 않을 정도다. 지켜주고 싶은 ‘국물’이랄까? 양념장만 따로 판매할 정도로 특별한 소스다. 속이 꽉 찬 ‘첼시 김밥’, 쫄면으로 말아주는 ‘우동’, 땅콩을 덧입히는 ‘떡꼬치’를 같이 주문해도 1만원을 넘지 않는다. 매장 주황색 벽에는 주인장의 '런던 여행 사진'이 70개의 액자에 담겨 빼곡히 걸려 있다. 나는 그것이 맛을 완성해준다고 생각한다.신토불이 떡볶이이곳의 떡볶이를 영접하기 위해 택시를 잡아야 했다. 출발은 서래마을 이었다. 나는 이곳을 마음속으로 약 3년 정도 품었던 것 같다. 떡볶이 좀 먹는 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곤 했던 명성 높은 가게다. 그런데 멀어도 너무 멀다. 5호선 끝자락에 있는 ‘아차산’역 까지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와인에 적당히 취했던 어느 날. 드디어 때가왔다 생각했다. 술김에 택시를 잡아 진짜로 물 건너 그곳에 도착했다. 떡볶이 값의 5배 정도 가격을 택시비로 지불했다. 빨간 양념이 고르게 버무려진 떡볶이 하나를 입에 넣고서 정말이지 그 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맵고 달고 새콤한 삼박자가 고르게 혀를 자극하는 밸런스 좋은 소스, 그 소스를 한껏 품은 쫄깃한 밀가루 떡! 완벽한 떡볶이의 조건을 갖췄다. 반자동으로 주문하게 되는 핫도그도 평범하기 그지 없지만 거기서 만큼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였다. 29개 역을 통과하여 집에 도착하는 긴 시간 동안 '크레이지'한 그날의 맛과 추억을 곱씹었다.한잔차차문래동을 좋아한다. ‘힙’한 척하지 않아서 좋은, 작은 가게들이 골목골목 숨어 있다. 10년 전에도 그 자리에 있었고 10년이 지나도 여전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한잔차차’는 창고 같은 건물에 위치해 있다. 화장실을 가려면 신호등 건너 보이는 공원의 공중화장실로 가야 할 만큼 애매한 위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래동에 갈 때마다 이곳에서 와인을 마신다. 높은 천장, 어둑한 조명, 비싸지 않은 와인 가격, 와인의 특성에 맞춘 양이 적은 갖가지 안주까지. ‘혼술’하기에 이보다 완벽한 조건이 더 필요할까? 언제 가도 분주하지 않고 여유가 흐르는 공간과 분위기도 한몫 거든다. 글라스 와인(화이트) 한 잔과 함께 꼭 주문하는 건 떡볶이다. 늘 평온해 보이는 주인장이 간만에 도전할 거리를 받아 든 것처럼 심혈을 기울여 즉석에서 떡볶이를 냄비에 후루룩 끓여 내온다. 얼마 전에 갔더니 늘 얹어주던 깻잎 위에 여러 가지 치즈를 갈아서 올린 후 토치로 한 번 그을리는 방식으로 떡볶이 레시피를 업그레이드했다. 먹다 보면 떡보다 푸짐하게 넣어준 오뎅 덕분에 한 잔을 꼭 더 시키게 된다. 그렇게 먹고서 2호선 문래역까지 천천히 걷다 보면 ‘완벽한 하루’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다모아맘에 쏙 뜨는 떡볶잇집을 누가 제보해줬다. 그 어떤 날보다 행복했다.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혼자도 가고, 동료와도 가고, 회사 근처로 놀러 온 친구도 꼭 여기로 데려갈 작정이다. 내가 떡볶이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새로이 발견한 떡볶이를 ‘아는 사람’끼리 공유하는 것보다 극진한 환대는 없다. 각설하고 다모아는 갈 때마다 맛이 다르다. 어떤 날은 국물이 촉촉하고 그 다음 주에 가면 국물이 알맞게 졸아서 밀가루 떡 곳곳에 간이 쏙쏙 배어 있다. 둘 다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매운 기색’ 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단맛이 입 안에서 가장 오래 남는 편이다. 익숙하고 친근한 맛인데 그 안에 깊은 핵이 있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호불호’가 안 갈리는 맛이다. 양은냄비에 한 국자씩 퍼주는 오뎅 국물을 먹어보면 감이 온다. ‘쉬운 맛’인데 쉽게 만든 건 아니라는 것을. 노래방과 호프집이 즐비한 논현동 뒷골목에 숨어 있어 더 귀한 곳이다. 또보겠지 떡볶이집음식점 앞에 줄 서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떡볶이라면 참고 견딘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이니까. 눈이 뽀얗게 내린 길 위에서 30분 정도 대기 후에 입장할 수 있었다. 손발이 꽁꽁 얼었는데 내부는 후끈했다. 테이블마다 놓인 가스버너 위에서 떡볶이가 끓고 있었다. 냄비 가득 푸짐하게 담긴 채소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떡볶이의 샐러드 버전 같았달까? 젓가락으로 양배추를 연신 건져내도 계속해서 나왔다. 이곳의 떡볶이는 맵지도 짜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맛이 주를 이룬다. 때때로 매운 음식을 스트레스 해소용 클리셰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또보겠지’ 떡볶이는 정겨운 그 이름처럼 착하고 순한 맛을 지녔다. 그래서 사이드 메뉴인 갈릭 소스를 흠뻑 끼얹은 프렌치 프라이가 ‘신의 한 수’로 느껴졌다. 자극점을 갈망하는 혀의 본능을 그것이 확실히 잡아줬다. ‘즉석떡볶이’만의 애프터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볶음밥도 이곳의 매력 포인트다. 밥 위에 소복이 얹힌 치즈를 한 움큼 뜨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보고 싶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