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이 돌아왔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소설가 김훈이 6년 만에 새 장편소설 <공터에서>를 발간했다. | 김훈,공터에서

김훈은 문체로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는 작가이다. 참죽나무 껍질처럼 건조하면서도 견고한 그의 독자적 문체는 그가 첫 소설을 쓰기 이전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의 소설에서 이제 중요한 것은 소재일 뿐이다.그가 이번에 선택한 소재는 자전적인 이야기다. 김훈은 기자간담회에서 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세대가 살아온 폭력과 야만의 시대, 그리고 그 속의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했다.공터는 ‘비어 있는 땅’이다. 이 단어의 어감은 절망보다 희망에 가깝다. 왜냐하면 절망은 ‘공터’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대륙의 화약고에서, 도시의 번화가에서, 부부의 침실에서, 아이들의 교실에서, 무언가가 존재하는 자리에서 돋아나기 때문이다. 작가는 기존의 무언가가 무너진 자리로써 ‘공터’를 말하고자 했던 듯하다. 무엇이 무너졌을까? 소설은 한 남자의 죽음으로 시작해 또 다른 남자의 죽음으로 끝난다. 이것에서 추측할 수 있는 바는 무너져내린 것이 ‘폭력과 야만 시대를 살아온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세대’라는 점이다. 이는 ‘절망’을 의미하지 않는다. 냉정하고 모멸에 찬 이야기지만 새로운 시대는 전 시대의 죽음과 함께 시작한다. ‘공터’는 새로운 시대와 세대를 위해 비어져 있는 자리이다.그러나 이것이 곧바로 ‘희망’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공터’에는 이전 세대의 슬픔과 고통이 남아 있다. 우리는 그 위에 무언가를 다시 세워야 하는데, 소설의 마지막 문단은 주인공인 마차세가 ‘임시직’에 몸담는 모습으로 채워져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공터’는 미완의 공간이지만, 그 자리에 서면 ‘공터’는 투쟁의 공간이 된다. 우리의 세대가 지금 그 투쟁의 공간 위에 서 있다.ps. 김훈이 이번에 선택한 소재와 그의 문체가 어울리냐 하는 점에서는 의견이 나뉠 듯하다. 독자의 판단에 맡길 부분이다. 그러나 어떤 소재라도 김훈의 문체는 달라지지 않지 않을까? 김훈처럼 삶과 문체가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