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영화를 항해하는 지구인들을 위한 안내서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영화 평론가이자 SF 작가인 듀나가 <컨택트>를 보고 떠올린, ‘첫 번째 접촉’의 순간들. | 영화,컨택트,어라이벌

SF 장르에서 가장 사람들을 사로잡는 소재는 누가 뭐래도 ‘첫 번째 접촉’이다. 우리와 전혀 다른세계에서 진화한 전혀 다른 존재와 지구 문명이 처음 만나는 순간. 유감스럽게도 이 장르에서 그 접촉은 대부분 폭력적이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날 수 있는 외계의 고등종족이 원하는 건 이상하게도 늘 지구를 정복하고 지구인들을 식량이나 노예로 삼는 것이니 말이다. 다행히도 오늘 다룰 영화들은 예외다.외계인을 다룬 50년대 SF 영화들은 대부분 냉전시대 공포증을 반영했다. 외계인과 비행접시는 철의 장막 너머에 있는 오싹하고 호전적인 국가들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로버트 와이즈의 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하늘에서 비행접시가 내려온다는 도입부는 다른 외계인 침공물과 비슷해보인다. 하지만 비행접시를 타고 온 외계인 클라투의 임무는 지구를 정복하려는 게 아니라 지구인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50년대 초반의 지구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고 클라투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구인으로 변장해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다.이 장르를 다룰 때는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명작이지만 지금 와서 보면 외계인과 비행접시를 내세운 평화주의 설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이나 종교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클라투는 누가 봐도 노골적인 예수 상징이니까.스티븐 스필버그의 가 만들어진 1970년대 말은 UFO 열풍이 한창이었던 때였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비행접시를 타고 온 회색 외계인의 존재를 믿었고 스필버그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최근 그는 다소 서글픈 어조로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엔 저도 그걸 진짜로 믿었거든요.”는 그런 믿음의 산물이다. 그러니까 UFO, 외계인, 버뮤다 삼각지대의 비밀과 같은 것들을 진짜로 믿었던 70년대 젊은이가 만든 예언서인 셈이다. 스필버그는 당시의 UFO 목격담을 철저하게 연구해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외계인이 지구인을 방문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그린다.여러분이 UFO를 믿건, 믿지 않건, 는 아름다운 영화이다. 당시 시각효과의 정점을 찍은 외계인의 우주선도 아름답지만 드디어 외계인이 지구인과 만나는 후반부의 고양감은 여전히 엄청나다. 정말 존 윌리엄스의 음악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분이다.지금까지 외계인들은 주로 다른 태양계에서 왔다.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의 에서 외계인들은 바다 깊은 곳에서 온다. 물론 그들이 정말 거기서 진화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른 별에서 진화했다가 지구에 정착했을 수도 있겠지. 영화는 근미래 스릴러처럼 시작한다. 핵잠수함 USS 몬타나가 침몰되고, 미 해군은 민간 석유 시추선 딥코어와 함께 수색작전을 펼친다. 하지만 해군은 숨기는 것이 있고 딥코어의 승무원들은 바닷속에서 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아름다운 생명체와 만나게 된다.미치광이 군인 때문에 두 종족의 평화로운 만남은 엉망이 되고 그 이후로 이야기가 좀 설교로 흐르긴 하지만 는 여전히 아름다운 영화이다. 유감스럽게도 카메론은 이 영화의 블루레이 제작에 별 관심이 없어서 최근 들어 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감상한 사람들은 별로 없다.가 UFO 열광자들의 예언서라면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로버트 제메키스의 는 또다른 관점. 그러니까 전파 망원경으로 외계문명을 찾는 SETI 연구가들의 판타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외계인들은 비행접시를 보내지 않는다. 대신 지구에서 날아온 텔레비전 신호를 받자마자 그것을 다시 지구로 다시 쏘아보낸다. 그 신호에는 수수께끼의 설계도가 숨어 있는데, 아마 다른 별로 갈 수 있는 우주선일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소망성취 판타지이고 후반부는 익숙한 불가지론과 신비주의로 빠지긴 하지만, 그래도 는 지금까지 나온 ‘첫 번째 접촉’ 영화들 중 가장 하드 SF에 가까운 작품이다. 이 원작소설을 위해 킵 손이 시간여행을 설명하는 몇몇 이론을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이후 시간여행 연구 유행으로 이어졌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제목에 주의해야 한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은 국내에도 소개된 테드 창의 단편 다. 그런데 이 작품이 영화로 옮겨지면서 제목이 로 바뀌었고 이게 국내에 소개되면서 가 되었다. 배급사에서는 제메케스의 란 영화가 있다는 걸 몰랐다고 우기고 있는데 몰랐어도 황당하고 알았다면 더 황당한 이야기다. 는 심지어 보다 더 나가는 치밀한 하드 SF다. 단지 가 물리학과 천문학에 집중하고 있다면 가 집중하는 건 언어학이다. 이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건 다른 영화에서는 대충 넘어가는 것, 즉 외계인의 언어다. 어떻게 외계인의 언어가 만들어지고 그 언어가 외계인의 정신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당연히 영화는 원작의 사변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지만 그래도 진상이 밝혀지는 순간의 경이로움은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