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교차점에서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칸 인디언이라는 세 가지 인생축을 짊어진 아티스트의 여정은 벨기에의 깊은 숲, 부르키나파소와 베넹, 과테말라를 거쳐 마침내 과들루프까지 이어졌다. 아티스트 조슬랭 아크와바 마티뇽(Jocelyn Akwaba Matignon), 멀찍이 반짝이는 좌표에 놓인 그의 인생처럼 그의 작품 또한 침묵과 미로, 상징과 직관이 소용돌이치는 독창적인 조형의 합을 선사한다. | 조슬랭 아크와바 마티뇽

당신에 대한 글을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프랑스와는 다른 ‘프랑스적인 면모와 예술’을 보여주는 아티스트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 ‘다른 면모’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난 프랑스 본토에서 8천km나 떨어져 있는 서인도제도 과들루프 출신의 프랑스인이다. 프랑스령 국가 과들루프는 오랜 아메리칸 인디언 문화와 역사가 뿌리내린 곳이기 때문에 나의 기원과 성향, 환경 등 모든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역이나 출신은 예술가에게 중요하지 않다. 프랑스를 떠나 타히티로 간 폴 고갱이 모험을 통해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간 근원의 질문을 보여주었듯이 나 역시 다른 기원을 가진 문화로 형성된 한 프랑스인의 정체성과 고찰을 보여줄 뿐이다.과들루프는 우리에게 아주 생소하고 낯선 곳이다. 당신을 통해 과들루프라는 곳의 특별한 스토리를 듣고 싶다. 과들루프는 카리브 해의 인디언 족이 살던 곳이었는데 이후 스페인에게 정복되면서 ‘산타마리아 디 과달루페’라는 이름을 획득하며, 과들루프로 정착되었다. 이후 1700년대에 영국과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함으로써 프랑스령으로 남았고, 그 무렵부터 경제적으로 중요했던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수많은 아프리카 노예들이 섬으로 이주하게 된다.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과들루프는 프랑스령으로서의 유럽 문화와 토착민인 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 문화, 아프리카에서 유입된 문화가 한데 뒤섞여 있는 독특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과들루프를 벗어나 유럽 대륙의 프랑스를 처음 경험한 것은 언제였나? 네 살 때 프랑스 본토로 처음 건너갔다. 프랑스 북부에서 거주하다가 이후에 벨기에로 이주했다. 네 살 때였지만 희미한 기억은 있다. 늘 바다와 자연 속에서 살다가 처음 릴(Lille)에 갔을 때 밤까지 반짝거리는 영화관, 술집 같은 걸 보고는 무척 놀라고 신기해했다. 당시엔 배를 타고 과들루프에서 프랑스로 가야만 했는데 영국을 들렀다가 다시 리스본에 정박한 뒤, 르아브르에 도착하는 여정이 총 25일이 걸렸다. 참 멀고 먼 미지의 세계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이후 나의 유년기와 청년기 대부분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보냈다.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왜 예술가가 되었느냐에 답하기 위해서는 좀 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과들루프에는 ‘백인 마티뇽(Matignon)’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프랑스혁명을 피해 과들루프로 도피해 모여 살던 유럽인들의 후손을 칭한다. 마티뇽은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한 채 단절되고 폐쇄된 문화를 지켜나갔다. 내 어머니가 바로 백인 마티뇽이었고 내 이름의 마티뇽도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흑인이었다. ‘아크와바(Akwaba)’라는 이름이 바로 아프리카계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은 것이다. 어머니는 마티뇽이 아닌 다른 종족과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마티뇽 공동체에서 추방 당했고 내가 네 살 때 프랑스로 이주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어머니는 스페인 출신의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알제리전쟁을 겪은 삽화가로 카드와 편지 등에 그림을 그리며 생활을 했다. 그는 내게 예술의 맛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주었고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나의 근원, 정체성을 탐색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아티스트가 되기 전 난 드럼 연주를 했고, 이후 나무 조각가가 되었고 한동안은 유리세공사로 살았다. 그리고 마지막엔 예술로 전환해서 회화에 빠지게 된 셈인데, 이런 귀결은 내 내면에 있는 모든 것들을 표현하며 이 땅 가운데 두 발로 뿌리내려 존재함을 의미한다.유럽의 오랜 숲, 아프리카의 가면, 마야 문명에 대해 연구했다고 들었다. 이런 다른 문명에 대한 탐구는 결국 당신 자신에 대한 끝없는 탐색의 긴 여정인 셈인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난 벨기에의 깊은 숲으로 들어가서 땅의 기운을 경험했다. 숲속에서 생활하면서 그곳에서 채취한 잎이나 가지, 흙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화가가 빈 캔버스를 앞에 두고 무엇을, 왜 그리고 싶은지를 알아내기 위해 내면세계를 탐색하며 앞으로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과정 같은 것이었다. 내 그림에는 언제나 삼각형의 로고가 있는데 그건 내 기원의 세 가지 정체성을 함축하고 있다. 한 변은 앞서 말한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 한 축은 과들루프의 아메리칸 인디언의 정체성이 되겠다. 그리고 세 번째 축은 나를 이제껏 끌어당기고 있는 아프리카적 정체성이다. 내 회화 세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내가 이제껏 읽고 여행하고 만나고 경험한 모든 것들의 총체적이고 심오한 결과물이 되는 셈이다.당신 작품에서 보이는 색채의 원시성, 상징적인 조형과 반복되는 패턴, 그리고 어딘가 숨어 꿈틀대는 인물들까지, 일면 미로 같기도 한 당신의 작품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문양의 형태가 강으로 보일 수도 있고 숲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 문을 열어 깊숙이 들어가보면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에서 볼 때가 다르게 보인다. 난 먼저 많은 사람들을 맨 밑에 그려놓고 그 위를 화이트나 블랙 컬러로 덮은 후, 그 다음 마야나 아메리칸 인디언의 도상들을 그려 넣는다. 그건 맨 밑의 사람들과 앞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서로 섞이는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것이다. 내 작품 속에는 항상 ‘키우칸(Kioukan)’이라는 몽환적인 존재가 나타나는데, 프랑스어로 키(qui)는 누가, 우(où)는 어디서, 칸(quand)은 언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양끝이 뾰족한 타원형인 ‘키우칸’은 남성과 여성을 나타내는 두 개의 원이 만나는 교집합을 의미한다. 모든 인간은 음과 양의 교집합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뜻하며, 다른 세계를 여는 ‘문’으로서 눈과 입, 여성의 성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깃털 달린 뱀의 형상은 인간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껍질을 벗어야 한다는걸 뜻한다. 고대 이집트에선 사람이 죽었을 때, 심장의 무게를 깃털로 쟀다고 한다. 죽은 사람의 심장은 깃털처럼 가벼워야 했다는 전설 때문이다.예술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당신 매료시키는 것 혹은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예술이란 어려운 여정이다. 아무것도 나를 매료시키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나를 매료시킨다고 할 수도 있다. 예술가로서 나는 그냥 한 명의 아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아이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매료되지 않나. 한국에 도착했을 때가 바로 아이와 같은 상태였다.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었지만 들을 수 있었고 볼 수는 있었다. 벽에 쓱 그려진 낙서나 사람들이 입은 옷, 모든 것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빛으로 가득하고 그 어느 곳보다 움직임이 많은 이 도시의 느낌은 놀라움 그 자체다. 몸 전체로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다는 이런 느낌은 흔치 않은 일이다. 또한 많은 상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이를테면 어떤 상징을 발견했나? 한국의 여러 사찰에서 아메리칸 인디언 문화의 상징 체계와 흡사한 것들을 발견했다. 인디언 문화에 ‘치유의 바퀴’라는 개념이 있는데, 치유의 바퀴의 네 가지 색인 빨간색, 흰색, 노란색, 검은색을 사찰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어서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사찰 건축물에서 여러 형태의 구불구불한 선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양이 뱀을 상기시켰다. 조선시대 왕좌 뒤에 그려져 있는 병풍에서는 달과 태양을 발견했는데 그러한 달과 태양의 상징 체계 역시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보편적 상징들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며, 인간이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이러한 고도의 상징 체계를 동원한다.당신의 작품에는 표현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주술적이고 신화적인, 그리고 상징적인 요소가 많다. 이러한 부분은 현대미술과는 다른 면모로 다가온다. 당신 말대로 난 현대미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건 현대미술의 동요 속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현대미술은 현대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인 경우가 많다. 길에 50명의 사상자를 낸 사고가 일어났다면 그 작가는 그 사고에 대한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다. 혹은 현재의 한국에서 일어난 대통령과 관련된 현안을 즉각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런 방식이 아닌, 내 작품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어느 길로 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보여주는 작품을 하고 있다. 그것들을 관찰해서 사고방식이나 생각을 전환해보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내 작품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주로 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대미술은 지나치게 피상적인 측면이 있다. 그리고 관객에게 새로운 충격을 주기 위해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걸 찾느라 고심하고 있지만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복합적인 혈통의 교차점에서 당신에게 예술은 어쩌면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찾는 여정으로서의 예술, 그 안에서 당신이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 나무에 새 두 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는 재빨리 과일을 먹고 있고 다른 새는 그것을 아주 집중해서 관찰하고 있다. 무엇의 어떤 동작을 집중해서 관찰하는 것, 예술가의 길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린 아주 많은 것을 보면서 생활하고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근원적인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난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오래도록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여기서 당신을 만나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프랑스어와 한국어라는 차이로 인해 우리는 심리적으로 멀어지게 된다. 그럴 때 예술은 이렇게 멀어지는 인간을 한데 모을 수 있다고 믿는다. 문학보다는 음악과 그림이 이러한 역할에 더 충실하다. 그리고 우리를 근원적으로 하나로 만들어주는 것은 침묵인데, 침묵은 시작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난 고도의 침묵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한다.*조슬랭 아크와바 마티뇽의 전시 은 L153 갤러리에서 2월 2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