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시대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하퍼스 바자>의 1백50주년 기념 시리즈의 일환으로 이번에는 당대의 기사를 바탕으로 뜨거웠던 1920년대의 문예적 르네상스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 하퍼스 바자,150주년,재즈,1920년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경제가 폭발적으로 살아나던 1920년대, 는 문화계에 해일과도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포착했다. 새롭게 찾아온 자유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여자들은 즉흥적인 리듬에 맞춰 머리를 까딱이며 춤을 추었다.(엄격한 금지법이 있었으나 누구나 이를 피해 가면서 말이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를 ‘재즈의 시대’라 명명했다.의 에디터는 당대 문학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지면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는데 그중엔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인 젤다도 있었다. 두 사람은 1928년 1월호에 ‘파크 애비뉴의 변화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글을 기고했는데, 여기서 묘사된 부와 계급, 이민 문제와 부동산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공명을 일으키는 부분이 있다. 에디터 헨리 셀은 를 쓴 아니타 루스(Anita Loos)를 발굴했는데, 이 소설은 1924년 에 연작 형태로 데뷔했다. 1929년 주식 대공황 시절의 유명 에디터였던 아서 사무엘은 거의 전설로 여겨지는 ‘앨곤퀸 라운드 테이블(Algonquin Round Table)’의 멤버이기도 했는데, 이는 작가나 에디터, 배우 등 30여 명으로 구성된 멤버가 정기적으로 점심식사를 하는 모임이었다. 여기서 사무엘은 당시 리더 격의 한 사람이었던 도로시 파커(Dorothy Parker)에게 매거진에 짧은 소설을 연재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당시 는 재능 있는 여류 작가들의 글도 활발히 실었는데 그중엔 버지니아 울프와 그녀와 사랑과 우정을 나누었던 비타 색빌-웨스트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또한 페이지의 디자인 역시 모던하게 보이길 원했다. 매거진 디자인을 이끌었던 주역은 크게 두 명이었다. 한 명은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에서 활동한 에르테(Erte)라는 디자이너로, 그의 컬러풀하고 유연한 일러스트는 엉뚱하면서도 우아한 매력이 있었다. 그는 21년간 약 2백 권의 디자인을 담당했다. 다른 이는 배런 아돌프 드 메이어(Baron Adolph de Meyer)라는 인물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1921년 에서 높은 연봉을 약속하고 빼내 온 사람이었다. 동료였던 포토그래퍼 조지 호이닝겐-휴엔(George Hoyningen-Huene)은 드 메이어의 이미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모든 여성들을 꿈에서 본 모습 내지는 백 라이트가 설치된 수족관 안을 떠다니는 유령처럼 그려내곤 했다.” 이후 는 스스로의 미학적 정체성을 바꿔버림으로써 1920년대와 완전한 작별을 고했다. ‘Bazar’라는 글자에 ‘a’를 더 추가해서 ‘Bazaar’라고 이름을 바꾸면서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Lappin and Lapinova (라핀과 라피노바)’로잘린드는 아직도 ‘어니스트 토번 부인’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지지 않는 중이었다. 활 모양으로 생긴 호텔의 테라스에 앉아 호수와 산을 바라보면서 남편이 아침 먹으러 내려오길 기다리던 그녀는 아마도 토번이 아니라 어니스트 뒤에 뭐가 붙어 있다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니스트라는 이름 자체가 익숙해지기 어려운 이름이었다. 자신이 골랐다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그런 이름. 차라리 그녀는 티모시나 앤토니, 피터 같은 이름을 골랐으리라. 남편은 어니스트라는 이름이 어울리게 생기지도 않았다. 그 이름은 어딘가 앨버트 기념관이나 마호가니로 만든 주방용 탁자, 철판에 새겨진 여왕의 남편과 그 가족들, 그리고 포체스터 터레이스에 있는 시어머니의 주방을 떠올리게 했다.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어니스트처럼 생기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그렇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생긴 사람이었을까? 그녀는 그의 옆모습을 슬쩍 바라보았다. 토스트를 먹고 있던 그 남자는 마치 토끼처럼 보였다. 물론 이 건장하고 코가 똑바로 서 있고 푸른 눈을 가졌으며 강건해 보이는 입을 가진 젊은이에게서 그 작고 정신 사나운 동물을 연상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욱 재미있다고나 할까. 그의 코는 음식을 먹을 때면 아주 살짝 휘어지는데, 그 모습이 마치 그녀가 기르는 애완용 토끼를 닮은 것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그의 코를 바라보았고, 그런 그녀의 시선을 그가 눈치챘을 때 그녀는 왜 웃음을 터뜨렸는지 설명을 해야만 했다.“당신이 토끼처럼 생겨서 그래요, 어니스트.” 그녀는 말했다. “야생 토끼 말이에요.” 그리고 그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사냥꾼 토끼, 아니 대왕 토끼, 다른 토끼들을 위해 법을 만드는 그런 토끼 말이에요.”그런 종류의 토끼라면 그로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그의 휘어진 코로 인해 그녀가 즐거워했기 때문에 -그전까지 그는 자신의 코가 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 이후로 그는 일부러 더 코를 휘게 만들곤 했다.스콧 피츠제럴드‘The Changin Beauty of Park Avenue (파크 애비뉴의 변화하는 아름다움)’그랜드 센트럴 역에서부터 시작되는 파크 애비뉴는 고요히, 그리고 부드럽게 맨해튼 상류를 향해 흐르듯 이어진 거리다. 아스팔트의 강 양쪽으로 창문들과 크고 우아한 흰색 파사드가 서 있다. 그러면서도 중심가에는 수채화와도 같은 녹색빛을 띤 길쭉한 모양의 공원들이 섬처럼 존재한다 -마치 에 나오는 여왕의 크리켓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모양새다.이곳은 만족을 아는 사람들을 위한 거리다. 스스로의 호기심으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도 산책을 하거나 돌아다닐 수 있는 그런 거리.파크 애비뉴는 무엇보다 뉴요커를 위한 거리다. 뉴욕의 모든 것을 떠올리게 하는 뉘앙스로 가득 차 있지만, 이는 모두 정형화된 패턴의 형태로 담겨 있다. 그곳엔 언제나 절제되고 쿨한 냄새가 감돈다. 뜨거운 모터와 먼지 냄새, 금속 단추의 냄새, 안개 사이로 흩어지는 불빛, 일요일의 종소리와 성에 낀 창문 등등. 이곳은 걷기 위한 거리이고, 이는 곧 이곳이 국제적인 거리임을 뜻한다. 이곳은 사실 아무 것도 살 필요도 없고 사고 싶지도 않지만 단지 여유가 많고 지갑에 돈이 꽉 차 있다는 이유 때문에 물건들을 자유롭게 사곤 하는 고객들에게 들러붙는 상인들의 거리다. 이곳에서 쇼핑은 기쁜 것이며 비싼 것이며 또한 거룩한 것이다. 이곳에는 프랑스어로 이름 붙여진 질병에 대한 약을 파는 외국인들, 정성스럽게 키워온 구근을 판매하는 네덜란드 꽃 상인들, 그리고 헌팅 프린트가 들어간 모자를 파는 가게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곳엔 한 블록 떨어진 매디슨 애비뉴의 색채를 만들어주는 시장 같은 분위기는 없다. 이곳의 가게들은 파리건 로마건 어딘가 다른 곳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곳은 훌륭한 프랑스 식당에서 만찬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며, 급할 때 이용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거리이기도 하다. 친구와 함께 티타임을 즐기는 거리이기도 하고. 그 외에도 이 거리를 떠올리게 하는 말들은 많지만, 링 라드너의 유명한 격언처럼 ‘뭔들 어떻겠나(What of it)?’늦은 밤에도 이 흠잡을 데 없는 길은 위엄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 먼지를 쓸어내는 빗자루에게조차 그 위엄을 나눠 줄 정도로 말이다. 이따금 하늘을 날 듯이 달리는 경찰차나 소방차가 미처 귀에서 그 소리가 멀어지기도 전에 어두운 안개등 조명 사이로 사라져 버리곤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밤의 폭주족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이의 운명을 앞당겨 재촉하기라도 하듯 온 도시의 숙면의 평화를 깨뜨리고 다닌다.한때 우리는 이 작은 아파트에 사는 영화배우, 상속녀, 유명한 아마추어 운동선수, 출판업자, 작가, 친구 등 여기 사는 모든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그건 매우 편리한 일이기도 했고, 집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나 범죄가 무성했던 여름, 파산 등의 이유로 길거리로 나앉는 사람들을 보면서 유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이곳은 그렇게 늘 불꽃이 타오르는 곳이다. 지금은 매우 넓어져서 이 불타는 맨해튼에서도 가장 거대한 거리가 되어 전 세계 사람들이 아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이따금 옷을 잘 차려입은 코스모폴리탄 분위기의 숙녀로부터 이런 얘길 듣기도 한다. “아, 그 매디슨 거리 옆에 있는 곳 말이죠?” 심지어 그녀가 뉴욕에 살던 사람임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