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9시 반경, 이불 속에 누워 미드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화면 속에서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솔직히 별 관심 없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도대체 나는 내일 뭘 입고 나가야 하는가?
지난 일 년 가까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맨해튼 다운타운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유행은 3일이었다. 3일.... 기온이 뚝 떨어진 10월 마지막 주, 갑자기 네이비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정말이지 온통 네이비뿐이었다. 나도 동참해야 하나, 짧지만 심각하게 고민을 했는데 다행히 이틀 후 사람들은 일제히 뉴욕 공식 컬러인 블랙으로 돌아왔다.(그 네이비들은 뭐였을까, 내가 헛것을 봤나?) 어쩌면 뉴욕에서는 초단기 유행이 유행 중인 것이다. 이른 추위가 닥친 어느 11월 오후, 내 앞을 지나가는 파카의 삼분의 일은 캐나다 구스였다. 다음 날 훈남들은 하나같이 윤기 나는 롱 코트로 갈아탔고, 반대로 훈녀들은 죄다 못생긴 니트 모자에 벽장에 일 년간 처박혀 있었던 듯한 구겨진 코트를 장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남녀노소 모두 바니스와 버그도프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사람들뿐이었고 그 다음 날에는 어쩐 일인지 모두가 유니클로를 입은 채 사색에 잠겨 있는 듯했다.
이 스타일에서 저 스타일로 현란하게 갈아타는 멋진 뉴요커들의 정반대편에는 물론 이런 초단기 유행을 전혀 이해하지도, 따라잡지도 못하는 내가 있다. 저들이 구겨진 유니클로를 입을 때 나는 뻣뻣한 모직코트를 입은 채 어리둥절해한다든지, 멋진 언니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보디콘 드레스를 장착한 날 나는 헐렁한 스트라이프 셔츠 차림으로 절망한다. 도대체 어떻게? 혹시 저들만 아는 ‘뉴요커를 위한 오늘의 옷차림(OOTD)’ 게시판이 인터넷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일상복 문화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복잡한 룰로 이루어져 있다. 맨해튼 다운타운은 그것을 심화, 발전시키는 거대한 실험실이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아침, 점심, 저녁이 다르고, 같은 평일이라도 월화수목이 다르며, 주말이라면 금토일이 완전히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가는 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이 다르고, 비가 그쳐가는 늦은 오후가 다르다. 그 미묘한 차이를 능숙하게 다루는 멋쟁이들을 볼 때 드는 가장 큰 의문은 이것이다. ‘도대체 저런 평범한 옷들은 어디서 사는 거지?’ 소호? 그것은 자살골이다. 비싼 데다 패션 빅팀 같은 옷들만 팔고 있는걸. 프린스 스트리트의 말도 안 되는 쇼윈도에서 고개를 돌려서 거리를 바라보면, 완전히 평범한 동시에 믿을 수 없이 고급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새침한 표정으로 길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들의 표정이 말하는 듯하다. ‘내가 옷을 어디서 샀는지 절대로 말 못해.’
최첨단 유행이 집결되어 있는 뉴욕은 트럼프로 인해 활짝 열린 신보수주의 시대를 맞이하여 최고의 평범성을 뽐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10년 전, 내가 처음 봤던 뉴욕과 완전히 동떨어진 모습이다. 아메리칸 어패럴에서 형광 보라색 드레스를 사고 비컨즈 클로짓에서 핫 핑크 클러치를 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밝은 청록색 나이키 스니커즈는 신발장을 떠날 줄을 모르고, 라임그린색 원피스는 결국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물론 뉴욕은 여전히 관대하다. 특히 1백 미터 앞에서도 관광객처럼 보이는 관광객들, 못생긴 스포츠웨어를 입은 운동광들, 적응 1개월차 에너지로 가득 찬 슈퍼 새내기, 프로 직장인, 명문대와 아트스쿨 학생, 부유하지만 약간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는 유부녀 등에게 특히 그렇다. 하지만 평범한 뉴요커로 보이기 바란다면? 뉴욕은 즉각 감춰뒀던 잔인한 얼굴을 드러낸다.
평범한 뉴요커로 보인다는 것은 시간과 온도, 계절, 그리고 습도와 풍향의 조합에 의해 환율시장보다 더 변덕스럽게 움직이는 뉴욕의 옷차림 법칙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라도 잘못되면 뉴요커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촌뜨기, 얼치기 사기꾼으로 비웃음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 ‘평범한 뉴요커처럼 보이기’에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도시가 나에게 관대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관광객도, 운동광도, 풋풋한 새내기나 프로 직장인도, 명문대나 아트스쿨 학생도, 부유한 유부녀도 아니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핑계로 나는 이 잘난 도시를 수상쩍게 떠돌고 있는데, 21세기의 뉴욕은 누구보다도 수상쩍은 존재를 싫어한다. 하여 나는 수상한 이방인의 위치를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했고, 매일 밤 이베이를 뒤졌다.
요즘도 내 도전은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고 있다. 모르겠다. 어제 입고 나간 원피스에 어떤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로퍼 탓일까? 혹은 낯선 도시에서 그저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왜, 지난 목요일 오후 6번가를 걷던 사람들의 삼분의 일이 체크무늬로 된 뭔가를 걸치고 나온 건지. 매일 새벽 5시 정각에 인터넷 어딘가의 게시판에서 진정한 뉴요커들을 위한 지령이 내려오는 게 분명하다. 오늘은 체크무늬입니다. 아, 하운드투스체크 아니고요, 글렌체크입니다. 하여, 오늘밤에도 나에게는 절대 전해지지 않을 뉴욕의 메시지를 기다리며 내일의 옷차림을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아침이 오면 메시지를 받지 못한 수상한 이방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옷장을 열겠지. 마침내 두근두근하며 거리로 나가면 또 다시 좌절할 것이다. ‘왜?’ ‘어떻게?’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