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보다 케이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보다 한 조각의 케이크가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사람들, 무성애자에 대한 진지한 탐구. | 무성애자,무성욕자

지난달 에 실린 ‘2017년의 키워드’ 칼럼 엔 올해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무성애자’가 소개됐다. 이 칼럼을 쓴 피처팀 선배는 “2017년에는, 나부터 후배에게 일삼았던 질타를 그만두기로 한다.‘넌 도대체 왜 연애를 안 해?’”라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고백하건대, 선배가 종종 질타한 그 후배가 바로 나다. “결혼도 안 하겠다. 연애도 안 하겠다. 관심 있는 남자도 없다!”고 말하는 나를 지난 일 년간 지켜본 선배들은 언제부턴가 “너 혹시 무성애자 아니니?”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비혼주의자인 것도 맞고, 연애는 커녕 소개팅을 하러 나가는 것도 귀찮지만 그렇다고 과연 내가 ‘무성애자’일까?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무성애자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건가?무성애자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다. ‘성적 끌림’은 흔히 사용되는 ‘성적 욕구’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무성애(Asexual)를 기록(Log)한다’는 뜻을 담은 무성애자 관련 블로그 에이로그에 따르면, 성적 욕구는 ‘성적 행위를 하고자 하는 욕구’이고 성적 욕구가 어떤 대상을 향하게 될 때 이것을 성적 끌림이라고 한다. 이렇듯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무성애자도 성적 욕구를 느낄 수 있다. 대개 성적 욕구를 느끼는 무성애자들은 혼자서 성적 행위를 하는 것으로 욕구를 충족시킨다. 다만 다른 누군가와 함께 성적 행위를 하고자 하는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다.예를 들어보자. 허지웅은 예능 프로그램 에서 성욕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한 후 줄곧 출연하는 방송마다 무성욕자로 소개됐다. 그리고 어느새 그를 표현하던 ‘무성욕자’ 대신 ‘무성애자’라는 단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무성욕자라고 해서 무조건 무성애자인 것은 아니다. 물론 무성욕자 이면서 무성애자인 사람도 있지만 무성욕자이면서 유성애자이거나, 무성애자이면서 높은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물론 허지웅이 어떤 환경적 영향을 받아 정말 무성애자가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욕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바로 무성애자로 규정지어서는 안 된다.무성애자를 향한 또다른 편견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성애자도 사랑을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무성애자는 ‘무로맨틱 무성애자’고, 그 외에 이성로맨틱 무성애자, 동성로맨틱 무성애자, 양성로맨틱 무성애자 등을 통틀어 ‘로맨틱 무성애자’라고 칭한다. 이처럼 로맨틱과 성애는 독립적으로 분리되는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성애자도 연애를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절대 다수가 유성애자인 현실에서 무성애자가 성적 관계를 배제한 연애를 이어가는 것이 힘들 뿐이다. 스킨십도 예외는 아니다. 대개 무성애자는 스킨십을 싫어할 것이라는 오해를 하지만 스킨십에 대한 호불호는 철저히 개인의 특성에 기반한다. 스킨십을 좋아하는 무성애자도 있고, 싫어하는 무성애자도 있으며, 어떤 무성애자는 포옹 정도까지만 즐기고 허용하는 반면 어떤 무성애자는 특정한 이유가 있을 때 섹스를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무성애자는 섹스라는 행위 자체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지 못한다. 어떤 무성애자는 섹스를 이렇게 비유한다. “콧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이토록 복잡다단한 개념이기 때문에 무성애자인 사람도 자신이 어떤 유형의 무성애자인지 알기 어렵다. 무성애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무성애의 유형을 모두 다 파악하지 못하며, 발생 원인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정확한 검사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스스로 무성애자임을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국내 무성애자 커뮤니티인 ‘A Community, 승냥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케이에게 물어보니, “무성애자라고 정체화한 사람을 직접 만나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무성애라는 개념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면 최대한 많은 무성애자의 이야기를 읽고 들어보세요. 지금까지는 무성애자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경로가 많이 없었지만,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계속해서 이야기가 축적되고 있기 때문에 이전보다 정보를 찾는 것이 용이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그는 덧붙여 말했다. “소수자인 무성애자로서 살아가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씁쓸한 경험은 일상적으로 자신의 정체감에 반하는 말을 듣게 되며, 정체감을 조금이라도 드러내게 되면 각양각색의 이유로 부정 당한다는 것입니다.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면, ‘아직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못 만나봐서 그래.’ 라는 반응이 돌아오는 것들 말이에요. 유성애 중심의 사회는 연애에 어떤 ‘정상성’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정상성이라는 것이 과연 당연한 것이고 정당한 것인지, 정상성에서 벗어난다면 과연 이것을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여전히 사람들은 연예인의 자극적인 노출 사진에 열광하고 타인의 연애와 섹스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지만, 동시에 ‘섹스보다 케이크가 더 달콤한’ 사람들이 올해의 트렌드로 선정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이성애만을 정상으로, 그 외의 성애는 비정상으로 분류하던 시대는 갔다. 2001년 커밍아웃 후 온갖 질타를 받으며 모든 방송에서 퇴출됐던 홍석천은 어느새 ‘대한민국 톱게이’로 활약하고 있다.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당신이 지녀야 할 가장 적합한 애티튜드는 남자를 좋아하든, 여자를 좋아하든, 둘 다 좋아하지 않든, 섹스를 열망하든 무관심 하든 간에 ‘그냥 그렇다면 그런 줄’ 아는 것이다. 클래식과 힙합,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공유와 이동욱 중 당신의 취향에 가까운 것이 하나씩 있듯 섹스와 케이크도 마찬가지다. 성애는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그중 어느 하나를 택해도 욕먹어야 할 이유 하나 없는, 그저 ‘다름’의 문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성애자’의 지향성은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