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 좋아라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김은 바다의 옷이라 하여 ‘해의’라고도 하고, 바다의 이끼라 하여 ‘해태’라고도 한다. 더 이상 옛날처럼 귀하지도, 제철 음식도 아니지만 김만 한 안주도, 반찬도 없다. | 박찬일,김,파래김,참김,돌김

예전에 나는 엄마 심부름을 많이 하는 소년이었다. 심부름 중에 제일 좋은 건 가겟방 가는 일이었다. 잔돈을 약간 삥땅 칠 수 있는 데다가 식품 사는 일은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더러 짜증나기도 했다.“얘야, 콩나물을 오십원어치 사는데 말이다, 이십원, 삼십원어치로 각각 나눠 서달라고해라.”그러면 한꺼번에 오십원어치를 사는 것보다 양이 많다는 이론의 신봉자가 우 리 엄마였다. 엄마가 회사 사장이었으면 틀림없이 한 달치를 두세 번에 나눠서 줬을 거다. 우리가 세 명이 고깃집에가서 한꺼번에 삼인분을 시키는 대신, 쪼잔하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기어이 “이인분 먼저, 일인분 추가”의 조합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주인이 묻지도 않는데, 엄마가 준비해준 멘트는 이랬 다.“저기요, 이십원어치는 앞의 집 거 심부름해주는 거예요.”눈치 빠삭한 주인이 모를 리 있겠는가. 나중에는 이런 눈치 보기 싫어서 오십 원어치 달라고 하고선 봉지를 하나 더 부탁했다.또 재밌는 심부름은 ‘간스메’였다. 꽁치나 정어리, 고등어 통조림을 사 오는데, 우리 집에는 깡통따개가 없었다. 그러니 주인더러 따달라고 부탁을 했다. 뻘 겋게 녹이 슬고 수많은 생선과 과일 통조림 국물을 묻히고 있는 깡통따개는 가게 입구 문짝에 고무줄로 매여 있었다. 아저씨, 이거 따주세요 하면 그는 고무줄에  매달린 따개를 잡아당겨서 수많은 돈을 주무른 손을 닦지도 않고 깡통을 개봉하곤 했다. 그러면 왜 이 심부름이 좋으냐, 집으로 가져가는 동안 깡통 국물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찰랑찰랑, 소금과 미원으로 조미된 맛있는 국물이 넘치게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걸 들고 오면서 기왕 가는 동안 어느 정도 쏟아질 손실분을 미리 먹어버리는 일이므로 아주 떳떳한 일이었다. 길에 양보 하느니 엄마의 외아들의 위장을 채우고 미각에 봉사하는 게 훨씬 나은 일이 아니었겠나 생각한다. 문제는 내가 매우 배가 고파서 국물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먹고는, 더러 정어리 한 토막 정도를 먹어버리는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의 저녁 반찬이 줄어드는 일을 어머니는 용서하지 않았다. 여지없이 빗자루 몽둥이가 날아왔다.간스메 심부름 말고 김도 괜찮았다. 사남매였으니 누군가 소풍 같은 게 걸리는 날에는 김을 사러갔다. 요새는 퍼런 파래 붙은 김이 더 비싸다고 하는데, 예전에는 김의 색깔로 가격이 결정됐다. 새까맣고 윤기 자르르 흐르며 야들한게 일등품, 좀 두껍고 어두운건 이등품, 파래 붙은 건 삼등품이었다. 김밥은 무조건 일등품으로 싸는게 맞았다. 두껍거나 파래가 섞인 건 둘둘 말면 부서지듯 김밥이 깨져버린다. 그래서 제법 좋은 김을 사와야 한다. 소풍철 말고 보통 겨울에 까만 김을 식탁에 올리는 집은 이른바 부잣집이었다. 한번은 친구네 갔는데, 기름기 도는 일반미에 명란젓, 쇠고기장조림, 까만 구운 김이 올라와서 놀란 적이 있었다. 이 반찬이 서울 바닥에서 가장 쳐주는 반찬 구색이었다. 하여튼 김 심부름을 가면 입이 심심하지 않게 올 수 있었다. 엄마의 호령은 이런 거였다.“김이 열 장이 맞는지 꼭 세어보거라.”나는 가게에서 김을 받아 알뜰하게 세었다. 더러 아홉 장인 경우도 있었다. 산지에서 고의로 그랬는지 어쨌는지, 김 도매상의 농간인지 그런 일이 실제 있었다. 그때는 김이 엄청나게 비싼 시절이었고, 김을 한 첩(열장)단위로 사는게 고작인 세상이었다. 동원양반김이니 하여 조미김이 식탁에 아무 때나 올라가는 시절이 온 것은 그야말로 풍요의 상징이다. 김을 참기름 발라 굽고 소금 살살 뿌려서 도시락 반찬(그것도그때막 나온 알루미늄 포일에 싸서)으로 가져 오는 녀석들은 다 부자였다. 몇 년 전에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 대화록을 폭로해서 난리를 일으킨 국회의원 녀석이 바로 내 중학교 급우인데, 그 녀석 정도나 싸오는 반찬이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는 재력가였다. 김 같은 거야 트럭으로 먹을 수 있었으리라. 정문헌, 요새  뭐하니.일단 김이 열 장 맞으면, 돌아오면서 귀퉁이를 조금씩 잘라 먹기 시작한다. 한 장만 집중적으로 뜯어 먹으면 안 되니까 열 장 고루 조금씩 건드린다. 엄마가 바야흐로 김밥을 쌀 때가 된다. 김을 김발에 펼쳐놓으면 구석탱이가 성한 게 없다. 나는 혹시라도 걸릴까 하여 입을 꼭 다물고 버틴다. 이빨에 김이 붙어 있어서 걸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어..마..기..미..너...아..조...네...(엄마 김이 너무 안 좋네)김은 이제 더 이상 귀품이 아니다. 싸도 너무 싸다. 얼마 전에 도쿄츠키지 시장에 가서 김 작은 거 두어 첩을 샀는데 오만원을 달란다. 스시용 최상급이라고. 하여튼 한국은 세계에서 김이 제일 싼 나라다. 역시 도쿄의 어느 술집에 갔더니 공짜 ‘오토시’(기본으로 주는 안주. 돈을 안 받는 경우도 있다)로 작은 식탁용 조미김을 내주는 게 아닌가. ‘광천김’이라고 한글로 써 있는 수입품이었다. 한국김은 싸고 인기도 좋다. 언젠가 김 작업하는 걸 보러 전라남도 장흥에 갔다. 엄청나게 파도가 쳤다. 김하는 사람들은 김 기른다고 안 하고 ‘해의 한다’고 한다. ‘해의(海衣)’란 김이란 뜻이다. 멋지다. 바다의 옷이라. 치렁치렁하고 얇으며 섬유 같은 가는 조직이 있으니까 꽤 어울리는 표현이다. ‘해태’라고도 한다. 바다의 이끼란 뜻이다. 돌 김이라고, 바위에 붙은 김을 뜯은 자연산이 있는데 이것이 해태라는 표현에 아 주 잘 들어맞는다.김 작업은 큰 농사이고, 농담을 좀 보태면 일종의 ‘플랜트 산업’이다. 김 어장을 관리하고 거둬 말리고 상품화하는 일 자체가 돈이 많이 들고 설비가 크게 붙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개 빚내서 이를 벌이고, 늘 골머리를 앓는다. 김 값이 형편 없는 까닭이다. 언젠가 김어장 사장님과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김은 가는 줄에 매달아 바다의 적절한 위치에 늘어뜨린다. 바다에는 이런저런 것들의 어린 포자들이 둥둥떠다닌다. 그러다가 김 양식 줄에 붙는다. 그래서 예전에 이런 ‘불필요한 잡풀들’을 제거하기 위해 염산을 희석하여 썼다. 요즘은 무산 김이라고 하여, 소비자들의 걱정을 염려하는 제품이 많이 나온다. 염산을 썼다고 해서 못 먹을 김도 아니다. 적절한 농도로 합법적으로 희석하면 실제 별 문제가 없다 한다. 소금도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죽는 것 아닌가. 바다에 이런저런 ‘잡풀’들도 다 자리가있다. 김, 파래, 매생이, 감태, 미역같은 것들인데 해저의 일정한 서식 높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망가지고 김 양식줄에 다른 게 붙으면 졸지에 성가신 잡초가 된다. 그 중에 파래가 제일 문제인데, 요즘은 파래김 인기가 높으니 참 알 수 없는 세상이다. 김은 바닷물 수온이 떨어져야 좋다. 요즘처럼 날씨가 따뜻해버리면 농사 망친다. 수온 10°C 미만이라야 한다. 대기 날씨는 영하라도 김 자라는 바다는 얼지 않는다. 김은 수온에 아주 민감하고 오염도 싫어한다. 김 자라는 바다는 기본적으로 깨끗한 곳이다. 바다 수온이 너무 낮으면 김이 성장을 멈춘다. 그래도 높아서 죽는 것보다는 낫다.김 작업은 완전 기계화에 인간의 ‘노가다’가 합쳐진 힘든 일이다. 바지선에서 김이 자란 줄을 당겨서 올리고 거기서 김을 장비로 퍼낸다. 이걸 차로 옮겨서 공장으로 보내는데 ‘물김’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소량 시장에 나가서 김국 같은 재료가 된다. 물김은 짭짤하다. 굴을 넣고 끓이면 해장에 기막힌 음식이다. 김은 조류(藻類)에 속한다. 그래서 광합성을 한다. 햇빛도 좋아야 하고 산소도 적당히 녹아 있는 바다를 좋아한다. 물김을 공장으로 가져가서 얇게 펴 말리는데, 여기까지가 농사다. 거기에 조미를 하면 그게 2차산업이다. 김은 완도, 장흥, 광천 같은 곳에서 많이 한다. 김 값이 좋을 때는 그야말로 “개도 만원짜리 물고다녔다”는흔한 수사가 있었다. 빚내서 공장 세우고 김을 출하하면 잘 팔렸다. 그러다가 과잉 생산이 되고, 그 틈에 성장한 게 바로 ‘동원양반김’ 같은 식탁용 조미김 시장이다. 일일이 참기름 발라 연탄불에 한 장씩 슬쩍 구워 소금 쳐서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던 시대의 종말을 가져온 것이다. 김 몇 장이면 추운 겨울, 간장 찍어서 밥반찬으로 그만이던 시대도 간 것이다. 옛날엔 시절 음식이란게 있었고, 겨울엔 흔히 김을 먹었다. 이제 사철 보관된 김이 흔하고, 다른 반찬도 넘쳐나니 김 인기도 시들한 셈이다.김 하면 완도에서 만난 김공장 아저씨가 생각난다. 그 아저씨, 풍모가 장난 아니었다. 키는 크고, 배바지에 머리는 무려 단발이었다. 사연은 유구하였으나 이 글에선 사장님의 말씀만 전한다. “김 값 헐항게(싸니까) 마이들 자시고요. 유명 회사 거보다 작은 회사 김 사주시고요. 돌김은 안주로 좋고 까만 참 김은 반찬으로 좋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