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en in Novel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그저 수천만 개의 문장들로 이루어진 세계가 이토록 생생할 수 있을까? 소설을 읽다 보면 마치 평행우주 속에서 또 하나의 세계가, 그 속의 인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다. 맑은 가을밤의 냉기를 좋아하는 네드라, 눈과 얼음과 숫자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스밀라, 모피 코트같이 부드럽고 나긋나긋하며 비밀이 가득한 목소리의 캐롤, 둥근 가슴으로 이 세계의 폭력성을 위안하는 영혜. 우리가 사랑하고 연민하는 소설 속 인물들을 모델 박세라가 차원의 경계를 넘어 여기에 데려다 놓는다. | BAZAAR,바자

의 영혜이제는 오분 이상 잠들지 못해. 설핏 의식이 나가자마자 꿈이야. 아니, 꿈이라고도 할 수 없어. 짧은 장면들이 단속적으로 덮쳐와. 번들거리는 짐승의 눈, 피의 형상, 파헤쳐진 두개골, 그리고 다시 맹수의 눈. 내 뱃속에서 올라온 것 같은 눈. 떨면서 눈을 뜨면 내 손을 확인해. 내 손톱이 아직 부드러운지, 내 이빨이 아직 온순한지.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 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한 난 괜찮아. /43p.의 스밀라“수학의 기초가 무언지 알아요?” 나는 물었다. “수학의 기초는 숫자예요. 누군가 내게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숫자라고 말할 거예요. 눈과 얼음과 숫자.왜인지 알아요?”수리공은 호두까기 도구로 집게발을 깨서는 구부러진 집게로 살을 빼냈다.“숫자 체계는 인간의 삶과 같기 때문이에요. 먼저 자연수부터 시작해요. 홀수 중에서 양의 정수들요. 작은 아이들의 숫자죠. 하지만 인간 의식은 확장해요. 어린이는 갈망의 감각을 발견하죠. 그럼 갈망에 대한 수학적 표현이 뭔지 아세요?”수리공은 수프에다가 크림을 얹고 오렌지 주스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음수예요. 뭔가 잃어버리고 있다는 감정의 공식화. 인간 의식은 더욱더 확장하고 아이들은 그 사이의 공간을 발견하죠. 돌 사이, 돌 위의 이끼 사이, 사람들 사이, 그리고 숫자 사이. 정수에서 분수를 더하면 유리수가 돼요. 인간 의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죠. 이성을 넘어서고 싶어하죠. 인간 의식은 제곱근을 풀어내는 것 같은 기묘한 연산을 더하게 돼요. 그럼 무리수가 되는 거예요.” /157p.의 캐롤테레즈는 입구에 서서 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피아노 연주가 흐르고 있었다. 조명이 밝지 않아서 처음에는 캐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그림자가 진 저쪽에 캐롤이 벽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캐롤은 테레즈를 보지 못했다. 반대편에 앉은 남자가 보였다. 누구인지 테레즈는 알지 못했다. 캐롤이 천천히 손을 들어 머리 한쪽을 쓸어내리더니 반대편도 한 번 더 쓸어내렸다. 테레즈는 미소를 지었다. 저게 바로 캐롤 특유의 동작이다. 저 모습이 바로 테레즈가 사랑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 모습이다. /455p.의 네드라그녀는 완전히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녀의 삶은 잘 보낸 한 시간 같았다. 그 비결은 그녀가 후회나 자기 연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화된 자신을 느꼈다. 날들은 바닥나지 않는 채석장에서 캐내는 돌 같았다. 그 안에는 책과 사소한 볼일들, 해변, 그리고 가끔씩 오는 우편물이 있었다. 그녀는 볕에 앉아, 천천히 조심스럽게 우편물들을 읽었다. 마치 해외에서 날아오는 신문을 읽듯.“네드라는 정말 불쌍한 여자야.” 캐서린이 말했다. “불쌍해? 왜 불쌍해?”“불행한 여자니까.”“캐서린, 네드라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그렇게 생각해?”“그렇지. 남자에게 의지하고 있지 않잖아. 그 누구에게도.” “의지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네드라는 언제나 남자가 있었지.” /353p. ※가격이 표기되지 않은 제품은 모두 가격 미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