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 뉴스라는 거짓말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매스미디어 체제를 무너뜨리는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 페이크 뉴스라는 하드코어 거짓말이 등장한 것이다. | 페이크 뉴스,가짜 뉴스,날조 뉴스,음모론

힐러리 클린턴과 오노 요코가 젊은 시절 동성애 관계였다는 거짓 스토리가 진짜 기사처럼 꾸며져 SNS를 떠돈다. 힐러리는 사실 죽었고, 그와 닮은 사람이 대신 선거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훈남’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진짜 아버지는 쿠바 공산혁명의 주역 피델 카스트로라는 페이크 뉴스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구순이 넘은 전직 대통령의 부인이 43년(!) 연하의 래퍼 닥터 드레와 ‘화촉을 밝힌다’는 날조 기사까지 등장했다. 며칠 전에는 UN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헤스가 반기문의 대선 출마에 반대하고 있다는 허위 기사가 퍼졌다. 야권 정치인들마저 이 기사에 속아 혼란을 빚기도 했다. 페이크 뉴스는 흔히 ‘가짜 뉴스’라고 번역되는데, 사실은 ‘날조 뉴스’ 쪽에 더 가깝다. 황당한 얘기지만 그럴듯한 인터넷 언론의 기사처럼 편집되어 대중을 현혹한다. 이건 음모론과도 다른 장르다. 음모론은 논리적 일관성이라도 있지만, 날조 뉴스는 밑도 끝도 없다. 만우절에 웃으라고 나오는 가짜 기사의 위트 같은 것도 물론 없다. 하드코어 거짓말일 뿐이다.지난 연말, 미국의 정치 전문지 가 내놓은 만평은 시사적이었다. 루머, 프로파간다, 역정보, 음모론, 그리고 페이크 뉴스라는 오폐수가 저수지로 쏟아지는 그림이었다. 저널리즘이라는 댐이 무너지고 있었다. 페이스북은 마크 저커버그까지 나서서 페이크 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승리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날조 뉴스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데에서 나아가 현실세계에서 행동까지 유발한다. “힐러리 클린턴은 소아성애자 조직에 연루되어 있고, 워싱턴DC의 피자집 ‘카밋 핑 퐁’의 지하실이 그 근거지다.” 지난해 가장 널리 퍼졌던 이 페이크 뉴스는 ‘피자게이트’라 불렸는데, 이를 사실이라고 믿은 한 백인 남성이 피자집에 총을 들고 찾아가 난동을 부린 일도 일어났다. 사람들은 날조 뉴스를 믿고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를 결정하기도 한다. 지난해 영국인들이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결정하고,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날조 뉴스의 위력이 투표장에서 발휘된 사건이었다. 는 ‘2016 IT 업계 뉴스’를 결산하면서 날조 뉴스 문제를 두 번째 나쁜 소식에 올렸다. 트럼프 당선은 SNS에서 퍼진 날조 뉴스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인터넷 자유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날조 뉴스 제국의 기획자’라고 불리는 폴 호너라는 이는 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만든 뉴스 사이트에는 언제나 트럼프 지지자들이 찾아왔다. 트럼프는 내 덕분에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 것”이라고 떠벌렸다. 작년 8월부터 대선 당일까지 페이스북에서 공유되거나 댓글이 달린 상위 20건 중 진짜 뉴스는 7백36만 건이었지만, 가짜 뉴스는 8백70만 건이었다는 버즈피드의 발표도 있었다. 가짜가 진짜를 넘어선 셈이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일 때, 결국 득을 보는 쪽은 진실을 숨기고자 하는 이들이다.놀라운 속도로 번지고 있는 페이크 뉴스 소식을 접하면서, 한편으로 나의 생각은 다른 곳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미 무수한 페이크 뉴스를 보지 않았던가? 거짓을 진실인 양 전하는 기사들, 오래전부터 거의 매일 나오지 않았던가?한 신문 기사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유명 팟캐스트 방송 출연자가 했던 발언을 인용해 쓴 기사였다. 하지만 그 말은 실은 그 팟캐스트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진짜로 나온 발언인 양 따옴표를 쳐 길게 인용했지만 완벽한 날조였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이 팟캐스트 방송을 수백만 명이 듣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페이크 뉴스를 생산하는 ‘듣보잡’ 사이트가 아니라 ‘정상적인’ 주류 언론이 저지른 일이었다.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 쓰는 것은 너무 심했지만, 그런 기사만 문제인 건 아니다. 사실을 비틀거나 부풀려 전하는 기사, 누가 봐도 거짓말을 하는데 검증도 하지 않고 그 발언을 전달만 하고 마는 기사도 크게 보면 페이크 뉴스다. 그들의 페이크 행위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결과 지금 우리는 참담한 겨울을 맞고 있다. 화제가 된 연예인에 대한 선정적인 기사,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인물이 입은 패딩이 얼마짜리냐 하는 식의 기사도 이슈의 본질을 숨기는 페이크 행위다. 페이크 뉴스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가 똑똑해지는 수밖에 없다. 페이스북이나 국가기관이 나선다고 사라질 괴물이 절대 아니다. 자극적인 가짜 기사로 클릭 수를 올리면 광고 수익도 짭짤하게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없어질 수가 없다. 인위적으로 손을 대면 더 무서운 돌연변이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자극적인 뉴스 앞에서, 우리는 늘 의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뉴스를 여러 사람이 보도록 돌리면서도 사실 확인은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분명히 더 멍청해졌다. 트럼프는 하고 싶은 말을 아무렇게나 했고, 사람들은 다 믿었다. 나중에 거짓말로 드러나도 사람들은 이미 거짓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참 무서운 일이다.” 가짜 뉴스 제작자 폴 호너가 밝힌 성공 비결은 똑똑해지기를 포기한 이들에 대한 조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