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북을 읽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박찬욱 감독 X 정서경 작가의 시나리오 북이 출간됐다. 지문과 대사 그리고 여백으로 영화를 읽는 보다 능동적인 즐거움을 전한다. | 박찬욱,시나리오,정서경,박쥐,친절한 금자씨

히치콕의 자서전(「히치콕」, 패트릭 맥길리건, 그 책)을 보면 히치콕은 훌륭한 원작과 이를 각색할 작가를 물색하고, 시나리오가 마음에 안 들면 작가들을 괴롭히고(“이 영화는 실패작이 될 거야. 나는 점심이나 먹으러 가겠네.”) 직접 대사를 쓰고 고치는 일로 인생의 절반을 보내고 나머지 절반은 촬영을 했다.농담이 아니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영화감독들 중에는 (자의든 현실적 여건 때문이든) 시나리오 작가의 도움 없이 자신이 쓴 각본으로 영화를 찍어서 망하는 사람이 꽤 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시나리오 작가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스스로 팔자를 망치는 영화감독들은 줄어들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팔자를 망친다는 말이 심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영화감독의 재기 가능성을 생각하면 큰 과장은 아니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 같은 예외도 있으니 다들 희망을 잃지 마시길.)그런 측면에서 박찬욱 감독이 2003년 어느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으로서 정서경의 시나리오를 만난 이후 지금까지 함께 해온 것은 안정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그 결과물인 , , , 는 흥행 여부를 제쳐 두면 모두 일정 수준의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를 제외하면 흥행 성적도 나쁘지 않다.) 위의 네 작품이 이렇게 ‘시나리오북’으로 출판이 된 것도 성공적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근거이다.(희곡과 달리 시나리오가 출판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과거,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은 시나리오 초고는 하루 만에 쓰기도 하는데(아마 이었을 것이다.) 대사 한줄 고치는 데 몇 주를 쓰기도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두 사람이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하는 것을 보면 정서경 작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하나의 하드에 두 대의 모니터와 키보드를 두고 함께 쓴 이 시나리오북은 ‘예술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각 영화의 색깔을 드러낸 표지도 매우 아름답다.)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할 때 ‘시나리오 베껴 쓰기’라는 것을 하는 경우가 있다.(대부분의 영화 시나리오는 인터넷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무작정 기존의 시나리오를 필사하기도 하고, 영화를 보면서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쓰기도 한다. 무작정 필사의 단점은 실제 영화와 시나리오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대사도 장면 순서도 다른 경우가 대다수다. 허나 시나리오북을 영화와 대조해 본 바 거의 다름없었다. 이 시나리오북은 지금도 필사 중일 예비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 두 사람이 시나리오에서 맡은 부분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되어있으면 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 정도다. 하기야 그것이 가능했다면 두 사람이 이토록 오래 공동작업을 하지도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