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잔혹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2017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올해도 ‘지옥철’에서 한 철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 책,지하철,출근길,출퇴근

왕복 거리 57.42km, 통과하는 역 개수 42개, 소요 시간 180분. 2006년부터 지옥철에 탑승해온 나의 하루 평균치 기록이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통학과 통근을 반복해온 지 어언 10년. 치 떨리는 출퇴근 수난사는 형벌이자 원죄인가? 그 옛날 빅토리아 시대 통근자들이 기나긴 출근길의 노고를 달래려 휴대용 브랜디 병을 가지고 다녔듯 나의 아침길엔 커피라는 항생제가 반드시 필요하다.한때는 퇴사와 이사로 숙명을 향해 저항한 적도 있었으나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태어난 그곳으로의 회귀. 그리고 나는 조금씩 이상해졌다.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이와의 눈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으려는 공격적인 자세를 보인다거나, 발도 집어 넣기 전에 “출입문 닫겠습니다.”라는 음성이 들려오면 종종거리며 짜증스럽게 중얼거리곤 했다. “그래 닫아라 닫아.”짜증에 대한 인내력 감소, 불안 및 적대감 상승, 우울감, 지각의 증가, 이직률 증가, 인지 능력의 역효과. 두 명의 경제학자가 ‘통근자의 역설(Commuter’s Paradox)’을 주장하기 위해 언급한 모습과 싱크로율 100%를 이루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 지하철에 앉아 를 읽으며 그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가 통근에 30분을 추가 소비할 때마다 월급이 20퍼센트 추가 인상되어야 한다.” ‘통근자의 역설’에 따르면 나는 누구보다 고액연봉자가 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택시 타기를 두려워하는 장거리 막차 인생. 강남이든 강북이든 한 달에 네 번만 택시를 타도 제주도 왕복 항공권 값이 나온다.나는 미국에서도 상위 2.5%에 해당하는 ‘극단적 통근자(Extreme Commuter)’였던 것이다. 미국 통계청은 편도 90분 이상 걸리는 경우를 이같이 정의한다. 2006년 최고의 극단적 통근자는 집에서 일터까지 왕복 6백km, 7시간을 차로 달리는 사람에게 돌아갔다. 5시간 반 취침, 2시간 동안 반려동물을 돌보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우승자의 패턴은 3시간 통근자인 나와 완벽히 일치한다. 집에서 생산적인 일을 한다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야말로 로스(Loss) 타임에 가깝다. 헛되고 헛된 희망을 품게 한다.‘독서광’이란 거짓된 자기암시 혹은 ‘영어왕’이란 야무진 꿈을. 정작 현실의 나는 지하철에서 주로 관찰자나 방관자가 됐다. 심지어 지하철에서만큼은 최대한 무표정하고 센 사람처럼 보이려는 연기자가 되었달까? '갑툭치(갑자기 툭 치고 가는 사람을 일컫는 내가 만든 신조어)'들과 닭장처럼 비좁은 공간이 결정적이다. 러시아워의 과밀 현상을 일컫는 전문 용어인 ‘승객 욱여넣기(Crush Loading)’가 시작되면 극단적 분노가 정점으로 치닿는다. 의 저자 이언 게이틀리는 이런 의문을 품는다. “돼지에게조차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공간 속에 잔뜩 쑤셔 박히는 상황을, 그것도 사실상 자발적으로 그런 일을 당하는 상황을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인내할 수 있는 걸까?” 그가 써내려간 결말은 “현 세대가 노인이 되기 전에 대중교통의 기본적 편의가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면 차라리 통근에 완전히 종지부를 찍는 편이 낫지 않을까?”라는 비관적 달관으로 흐른다. 1924년, 20년 안에 하늘을 하는 자동차가 나올 거라고 인류 최초로 예측한 잡지 의 기사엔 그저 헛웃음이 나지 않나? 6백 마력짜리 엔진을 장착하고 무게는 9킬로그램이며 1천 시간 분량의 연료가 담긴 만년필 크기의 연료통을 달고 다니는 차량을 생각한 윈스턴 처칠의 급진적 상상력엔 박수를 보내는 바다.30세기의 인간은 통근의 기회조차 갖지 못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구상한 영국의 물리학자 존 히버 프렘린의 이론을 읽으면 지금의 나는 제법 행복한 사람이다. 전쟁, 전염병, 운석과의 충돌과 같은 재난 없이 절대적인 세계평화가 지속된다는 가정하에서 우리 지구는 2964년까지 최대 6만 조의 사람들을 지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가설이다. 그럴 경우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선의 삶은 고작 “차량이나 컨베이어벨트에 몸을 싣고 무작위적인 수평 방향으로, 그리고 가끔은 수직 방향으로 수백 미터를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것 정도이다.” 오늘도 겸허히 1호선 병점행 막차에 꼿꼿이 앉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