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와 두 여자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필연적이든 우연적이든 악기와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여자들이 있다. 연주가란 타이틀에서 곡을 만드는 한 명의 뮤지션으로 고민과 변화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두 여자,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강이채를 만났다. | 인터뷰,고상지,강이채

파도처럼, 마법처럼세상에 화보 촬영장만큼 어수선한 공간이 또 있을까. 꿔다 놓은 의자, 뒤엉킨 전선, 벗어놓은 신발, 마시다 남긴 커피, 널브러진 장비. 혼돈의 장이나 다름없는 그 공간에 갑자기 드라마틱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임시로 세워둔 가벽 앞에서 두 눈을 감은 채 홀로 몰입 중인 한 여자. 파도처럼 일렁이는 반도네온의 주름이 접혔다 펴지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옴짝달싹할 수 없다. 손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반도네온 연주가 고상지가 고고하게 앉아 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오타쿠’라 칭하며 ‘츤데레’ 스타일로 음악보다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더 많이 쏟아냈던 그녀였다. 반도네온의 역사, 탱고란 장르 등 수박 겉핥듯 준비해둔 구겨진 질문지 빈 공간 사이로 생경한 제목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 ‘천원돌파 그렌라간’ ‘슈타인즈 게이트’…. 일본 만화를 잘 모르는 ‘닝겐’으로 한평생 살아온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만큼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의 음악은 너무너무 묘하죠. 재즈를 기반으로 흐르다 중간에 집시 스타일로 변하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무언가가 있어요. 음악은 예술에 가까워요.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닭살이 쫙 돋고 정신을 잃을 정도랄까? 의 음악을 만든 사기스 시로라는 음악 감독님이 있어요. 제가 이분 때문에 음악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아해요.” 고상지의 첫 정규 앨범 타이틀인 도 자신의 음악 여정 큰 영감을 준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이니셜 조합으로 만들었을 정도다.사실 누군가에겐 ‘반도네온’과 ‘고상지’라는 이름 역시 생경할 수 있을 테지만 방송과 콘서트를 통해 우리는 그녀를 스치듯이 여러 번 마주쳤을 가능성이 높다. 정재형과 정형돈이 ‘순정마초’를 부른 예능 방송에서나 가인, 산울림, 김필 등의 여러 뮤지션 앨범에서 혹은 김동률, 이선희의 콘서트 현장에서. 그녀는 오늘처럼 두 눈을 감고 고혹적으로 반도네온을 연주했다. 특히 작년 12월 홍콩에서 열린 ‘MAMA’ 무대에서는 스스로 말하길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배우 김유정이 고상지의 1집 수록곡인 ‘Envy’를 BGM으로 박노해 시인의 ‘별은 너에게로’를 낭송했고 연이어 이적과 함께 고상지가 높이 솟은 무대에 올라 ‘걱정말아요 그대’를 반도네온으로 연주했던 것.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빽빽이 조명을 심어놓은 초현실적인 무대 위에서 말이다.국내에 열댓 명으로 추산될 만큼 숫자가 많지 않은 반도네오니스트로 활동해온 고상지에게 2017년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반도네온으로 음악을 시작한 지 딱 10년째 되는 해라는 것. 고상지는 오는 1월 6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출격’이란 타이틀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이번 콘서트에서 저를 음악인으로 만들어준 의 음악을 직접 편곡해서 연주할 수 있다는 건 제게 의미가 정말 커요.” 그간 탱고를 중심으로 한 무대를 만들어왔다면 이번엔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의 OST를 편곡한 레퍼토리가 절반을 차지할 예정이다. 고상지가 이토록 애니메이션과 그 음악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사랑 이야기에 대해선 공감도 잘 안가고 감정이 별로 없어요. 그 부분만 결여됐나 싶을 정도로. 몸이 허약한 편이라서 그런지 예전부터 액션배우 견자단의 영화를 제일 좋아했어요. 그런 걸 보면 제 안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 같아요. 음악을 만들 때도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특정 장면과 캐릭터를 먼저 떠올리곤 해요.(웃음)” 고상지는 의 ‘왕직속 호위군 세 분’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음악적 근원이자 모토로 가져가겠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자신이 특별히 아끼는 캐릭터의 피겨를 앞에 새워두고 반도네온 연주에 몰두하는 어느 우아한 음악가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어쩐지 낭만적이지 않은가?7kg에 육박하는 반도네온의 무게를 떠올려보면 이것은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음악적 도구이기에 앞서 상체를 온전히 사용하는 육체적 노동이다. 음악가 고상지는 남들이 쉽사리 가지 않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3년간 도쿄와 서울을 오가며 세계적인 반도네오니스트 고마츠 료타를 사사한 뒤 아르헨티나라는 낯선 땅에서 다시 2년간 유학했다. 본격적으로 작곡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매일이 탱고 오케스트라 합주와 연습의 연속이었던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는 새 어렴풋이 화성과 편곡의 공부가 이루어진 것 같다고 회상했다. “사실 탱고 뮤지션이란 자각이 올해를 정점으로 옅어졌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음악이 점점 탱고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반도네온 연주가 고상지로 계속 불려왔는데 앞으로는 그냥 작곡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드라마나 영화 음악 작업도 너무 해보고 싶고요. 그러려면 작곡을 제대로 배워야 할 것 같아요.”이론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는 시기가 왔다는 것.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영화음악감독과 1월부터 일종의 일대일 과외를 시작한다. 미리 숙제까지 주어졌다는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해 오라네요.(해탈한 웃음) 1월 단독 공연만 무사히 끝내놓고 시작하려고요. 아, 앨범도 만들어야 하는데.(혼잣말로)”https://www.instagram.com/p/BOoz5A_gtbX/?taken-by=harpersbazaarkorea가장 급진적인 색, 민트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것은 실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뗄 수 없었다. 에서 케이트 윈슬릿이 ‘블루 루인(Blue Ruin)’이라 명명했던 그색보다 조금 옅은 푸르른 머리를 하고서 양팔 가득 데이지가 피어있는 오트 쿠튀르를 입고 강이채가 계단을 내려왔다. 좋은 일이 있는 사람처럼 연신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이올린을 손에 쥐고 활을 켜기 시작하면 맹렬하다가도 처연했다. 그 아우라가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 같았달까? 다를 ‘이’에 채색 ‘채’라는 그 이름처럼 강이채는 다른 색을 지닌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민트색을 좋아했어요. 예전엔 민트색 옷도 있었는데 이제는 못 입어요. 머리랑 같은 색이라서.(웃음) 첫인상이 강렬하니까 이상한 행동을 마음껏 할 수 있어요. 부응해야 하는 기대치가 없거든요.”여섯 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쥐고 버클리 음대 전액 장학생이란 잘 닦아놓은 길을 걷던 시절, 그녀는 까만 생머리에 어깨에 바이올린을 메고 다녔다. “그때는 진짜 보수적이었어요. 오히려 지금 같은 모습을 항상 꿈꿔왔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제가 아닌 모습을 하나씩 깨나가고 있는 게 재밌어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더 흐트러지고 싶거든요.(웃음)” 미국 유학 시절엔 각종 콩쿠르, 시험, 경쟁에 끊임없이 내던져지면서 음악이 편하게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했으면 누구라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오히려 록이나 펑크는 제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음악이라서 더 편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페이버릿 음악을 묻는 질문엔 “디인터넷, The 1975, 낫싱벗 티브즈 진짜 좋아해요. 올해 중순까지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토 3번 1악장에 꽂혀서 그것만 일주일 정도 들었던 것 같아요.”라는 랜덤한 답변이 돌아왔다.작년 가을 강이채는 첫 솔로 음반을 발매했다. 앞서 베이시스트 권오경과 결성했던 듀엣 ‘이채언루트’의 음악과는 또 다른 색을 보여주었다. 라는 이중적 의미의 타이틀처럼 급진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낙원을 찾고자 했다. 13곡이 수록된 솔로 앨범은 클래식에서 재즈로, 일렉트로닉에서 어쿠스틱 사운드까지 넓게 뻗어나갔다. 이채언루트의 음악이 사랑에 빠진 지 얼마 안 된 사람처럼 풋풋하고 싱그러운 느낌이 들었다면 강이채가 전곡을 작사, 작곡, 프로듀싱한 솔로 음반은 연인이 뿌려둔 꽃을 즈려밟고 홀로 먼 길을 떠나버리는 고독한 기운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스스로를 뿌리째 바꾸려고 하는 부분이 있어요. 음악도 마찬가지고요. 언제나 문제점과 장점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가장 어두운 면과 가장 행복한 면을 같이 가져가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계속 변화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12월 25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리는 두 번째 단독 콘서트에서는 근본과 급진 사이를 고민해온 강이채의 음악을 온전히 들어볼 수 있다. “그저께 곡 작업을 하나 끝냈어요. 정말 좋아하는 자비에 돌란 감독의 의 영화 영상과 콜라보레이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그 영화에 바치는 음원이 곧 나올 거예요. 온라인 게임 의 음악도 맡게 되어 아마 연초에 음원을 들어볼 수 있을 거고요.” 바이올리니스트와 싱어송라이터 사이에서 강이채의 영역은 점점 더 확장되는 중이다. “바이올린에서 조금 벗어나면 음악적으로 더 힘든 걸 경험하게 되니까 좋긴 한데 결국 제가 항상 돌아가는 곳은 바이올린이죠.(웃음) 신나게 놀러 다니다가도 밤이 되면 결국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솔로 앨범의 첫 번째 트랙 역시 ‘The Violin’이란 곡이었다. “모든 악기 연주자들이 그럴 텐데 자기랑 운명처럼 잘 맞는 악기를 만나는 건 복이면서 힘든 일이기도 해요. 프랑스에서 1백년 전에 집시들이 연주하던 바이올린을 우연히 만났어요. 어느 수집가의 창고에 오래도록 묵혀 있어서 당시엔 낡고 줄도 없었죠. 그런데 막상 연주해봤더니 제 목소리를 그대로 내는 느낌이랄까요? 충격적이었고 그 순간이 영화 같았어요.”집시의 기운이 있는 건지 강이채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방랑벽이 좀 있다. “이사를 진짜 많이 다녔어요.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텍사스, 몬트리올도 잠깐 살았어요. 집을 자주 옮기면서 통장 잔고가 하나도 없을 때도 있었는데 별로 개의치 않았어요. 철이 좀 없었나 봐요. 겁도 없고. 이사한 지 일 년밖에 안 됐는데 또 떠나고 싶어요. 북한산 근처 같은 곳으로? (웃음)” 물론 이사 이유의 팔할은 음악 때문이다. 펑크가 태어난 지역에 살아보고 싶었다거나 음악으로 돈을 벌기 위해 다시 떠나거나. 강이채는 한국에 있어도 자꾸 밖으로 돌게 된단다. “이탈리아 친퀘첸토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피벌에 초대받아 그 마을에서 한 달 정도 머물렀어요. 이채언루트로 케이콘 페스티벌에 가게 되어 L.A도 갔다 왔네요. (갑자기 생각난 듯) 아! 독일도 갔다 왔어요. 박주원 씨의 공연에 게스트로 가게 되어 프랑크푸르트, 베를린을 돌며 집시 투어 공연을 같이 했어요.” 이쯤 되면 그녀의 운명은 역술가에게 묻는 편이 낫겠다. “한국에 귀국한 날 너무 힘들어서 사주를 봤어요. ‘언제 한 군데 좀 머물러 있을까요?’라고 물어봤는데 고개를 저으시더니 계속 어딘가로 떠날 거래요(웃음).”https://www.instagram.com/p/BOZORpTAaox/?taken-by=harpersbazaar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