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코 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12월에서 2월, 굴 맛이 오른다. | 박찬일,굴,생굴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 뭘 하나 올렸더니 ‘좋아요’가 무려 최순실 기사에 댓글 달리듯 주렁주렁 붙었다. 굴 얘기였다. 인천의 어느 대폿집에서 먹은 굴을 올렸던 것이다. 그 대폿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인천의 모주꾼과 문화예술인들이 몰려들었던 신포동에 있다. 대전집이라는 상호인데 처음 문을 열었던 오정희 여사는 물러나시고, 옛 모습을 담은 사진만 한 장 가게에 붙어 있다. 지금은 아드님인 최 선생이 운영하고 있다. 그의 나이도 쉰이 훌쩍 넘었으니 참으로 역사 깊은 주점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안주 한 접시를 내주었다. 잔굴이라거나 소굴이라고 부르는 굴이 아닌가. 까무잡잡하고 야물딱진 소굴이었다. 일행에게 내가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순 엉터리 사범(師範)인데, 그래도 내력이 있는 기술이다. 소굴 많이 먹고 자란 이문재 시인이 당신의 수필에서 설명한 방법이니까.자, 먼저 소굴을 숟가락으로 푼다. 절대 젓가락을 써서는 안 된다. 그 숟가락을 간장 종지에 대어 밑바닥에 적당량을 묻힌다. 금속 숟가락이므로 간장이 절대 많이 묻지 않는다. 굴은 아시다시피 이미 짭짤한 놈이므로 너무 간이 짜서는 안 되는데, 금속 숟가락에 묻은 간장 양이면 안성맞춤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간장 방울이 떨어지지 않게 얼른 입으로 넣는다. 초간장을 해도 좋고, 간장에 참기름이나 통깨를 살짝 뿌려도 좋다. 굴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사람이 그렇듯, 다 쓰임새가 있다.헌데 생굴을 먹자면 아무래도 작은 굴, 그러니까 소굴이 제격이더라는 것이다. 작고 아담한 굴이 한 숟가락이면 일고여덟 개든 열두어 개든 입에 들어온다. 제각기 입안에서 논다. 어떤 녀석은 성질이 급해서 편도선에 붙고 어떤 놈은 혀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식도로 넘어가는 것을 극구 거부한다. 무던한 놈들은 혀 위에서 몇 번 춤을 추었다가 흐뭇한 바다 맛을 남기고 어두운 심연으로 빠져들어가고 만다. 이때 소주를 부어주는 것도 좋고, 나 같으면 양은주전자에 든 막걸리를 고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허름한 대폿집은 역시 그 이름 대포(큰 바가지란 뜻)에 걸맞게 막걸리를 먹어야 하는 것일까. 인천이라면 소성주라고 하는 역사 깊은 막걸리가 있다. 하여튼 이렇게 굴 먹는 장면을, 스테인리스 숟가락을 막 간장을 찍는 순간을 포착하여 페이스북에 올렸던 것이다. 오호! 이렇게 굴을 먹는군요. 서울촌놈들은 굴이라면 노총각 불알만큼 큰 놈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게 다인 줄 아는 형편이라 그랬던 것이다. 자글자글한 소굴을 푹, 숟가락으로 떠서 새콤하고 그윽한 간장에 찍어 먹는 걸 알 리 없다. 그러니 신기하다고 ‘좋아요’를 마구 누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소굴이니 잔굴이니 하는 것은 서해안에서 주로 나오게 마련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펄이 드러나는 곳이라야 이런 굴이 나온다.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서 자라는 굴을 할머니들(지금 그녀들 말고 누가 한겨울에 바닷가에 나가서 굴을 따고 있겠는가, 삼가)이 썰물 때 딴다. 당신들 생계도 하고 자식들 용돈도 주고. 이런 굴은 자연산도 꽤 있다. 아니면 펄에 돌을 버려두고 거기에 종패를 뿌려 알아서 자라도록 두는 경우다. 어떤 경우든 굴은 먹이를 주지 않으므로 먹여 기른다는 뜻의 ‘양식’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애매하다.충청도 홍성에 가면 굴탕이라는 게 있다. 굴을 넣고 펄펄 끓이는 음식이 연상되는데, 실은 굴 물회라고 보면 된다. 김, 통깨, 무 같은 걸 넣고 시원하게 말아내는 것이다. 밤새 마신 술이 숙취를 몰고 올 즈음, 이 굴탕이 진가를 발휘한다. 한 사발 훌훌, 숟가락을 쓰는 둥 마는 둥 들이마시면 소주 회사로 노렸던 수명 단축의 의도를 상당 부분 감쇄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속이 풀려서 다시 ‘처음처럼’ 소주를 마셔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처음처럼’은 성적인 은유가 아니라 오로지 마셔도 마셔도 술이 안 취해서 다시 병마개를 비틀어대라는 뜻 같다.이 겨울에 서해안 아무개 동네에서 무슨 굴 축제 같은 걸 한다. 취재를 한번 갔다. 얼굴이 붉고 정력이 아주 세어 보이는 어른이 한 분 나오시더니 차에 태운다. 굴밭을 보러 가잔다. 차를 타고 굴을 보러 간다? 그러고 굴밭은 또 뭐야. 그는 지역에서 한가락 하는 분인데, 언론을 좀 다룰 줄 안다.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를 소개시킨다. 이런 식이다. “이 양반이 서울 아무개신문 편집국장이셔. 잉. 그리고 저짝 분은 아무개방송 보도국장이셔, 잉.” 나는 신문에 칼럼을 쓰는 일개 잡문가요, 일행은 그냥 카메라를 든 프리랜서였는데 말이다. 졸지에 우리는 유수 언론의 국장단이 되어서 갑자기 목에 힘을 주고 말수를 줄여야 했다. 물론 입고 있는 행색이 촌로가 봐도 국장급이 안 되었다는 게 문제였다. 낡은 등산화에 소매가 나달나달한 ‘잠바때기’를 입었고 내 동료는 벗어진 머리를 감추려고 모자를 썼는데 그것이 구멍을 일부러 숭숭 뚫어서 파는 리어카 제품이었던 것이다. 하여튼 동네 사람들은 눈치가 어지간한 분들이어서 겉으로는 잉잉, 하시면서도 도다리 눈으로 우리 꼬라지를 다 챙겨 보고 있었다. 국장겉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누가 모를 중 알구. 이러는 게 다 보였다.아무튼 우리는 굴밭으로 진격했다. 언능 가요, 물 들어오믄 오도가도 못하니까. 그러니까 저 바다 한가운데 굴밭이 있었다. 문제는 빤히 보이는 굴밭까지 가자면 장화를 신고 푹푹 빠지는 펄을 건너야 했다. 그 어른은 매일같이 하는 일인 데다가 매일처럼 굴을 드셔서인지 정력이 워낙 좋아서 발이야 빠지든 말든 무슨 노인네가 힘도 안 들이고 성큼성큼 개펄을 지나가는 게 아닌가. 우리는 발에도 맞지 않는 장화를 신고, 낑낑대며 마치 에베레스트 정상을 눈보라 속에서 기어오르는 전사들처럼 분당 3미터의 속도로 겨우 조금씩 나아갈 뿐이었다. 어렸을 때 모험영화나 소설을 보고 자면 꼭 밤에 늪에 빠지는 꿈을 꾼다.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지는 수렁. 꼭 그 짝이었다.어른이 시범을 보인다. 여봐, 잉. 이렇게 발이 한쪽에 딛잖여? 그럼 얼른 다른 발을 디뎌. 잉. 옳지. 다시 반대짝 발도 얼른 빼고. 아아,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바로 그 수상보행법이 아닌가. 예수님의 수상보행법을 물리과학적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발을 딛자마자 물에 빠지기 전에 얼른 다른 발을 딛고, 그걸 반복하면 절대 물에 빠지지 않는다, 이것이었다. 그 어른이 보여주는 기술이 바로 수상보행법과 흡사했다. 놀라운 건, 예수님 이후 아무도 수상보행법을 성공시키지 못했는데 그 어른은 물 위는 아니지만 물에 버금가는 수분 70퍼센트의 개펄 위에서 유사 수상보행법을 터득하고 계셨던 것이다.겨우겨우 기다시피(네 발을 쓰면 좀 더 쉽다는 걸 알았다) 해서 굴밭에 다다랐다. 과연 굴, 밭이었다. 그 사연이 기막히다. 옛날 일제강점기, 일본놈들이 수탈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송지식(松枝式)이라고 하여, 해안가에 널린 해송을 베어다가 말뚝을 박고 거기에다 굴을 붙여서 길러 먹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어찌어찌 어장이 망가지고 그랬는데 어느 날 그쪽을 가보았더니 놀랍게도 굴이 저 스스로 새끼 치고 세를 불려서 커다란 군락을 이루고 있더라는 것이다. 바위도 돌도 없고 소나무 말뚝은 삭아서 없었는데, 부모 굴이 죽어서 그 껍질이 바닥에 쌓이고, 다시 그 자식이 그 위에 껍질을 남기고 그렇게 쌓이고 쌓여 단단한 섬처럼 넓은 군락을 만들어버렸던 것이다.(인간의 경우와 뭐가 다른가. 눈물 겨운 굴의 부모애!) 그야말로 완전 자연산 굴 밭이 생겨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때가 되면 그저 경운기를 몰거나 배를 대어 굴을 퍼 담으면 되었다. 이 전설 같은 이야기는 백 퍼센트 사실이다.이 굴, 진짜 맛있다. 보통 천북굴이라고 부르는데,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여러분의 구강까지 당도할지 장담은 못하겠다. 이 마을의 굴은 서두에 말한 아주 작은 소굴이나 잔굴은 아니다. 물에 잠기는 시간이 제법 길어서 중간 크기의 굴이다. 굴은 물에 잠기는 시간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 통영 쪽은 수하식이라고 하여 아예 줄에 붙여서 굴을 바닷속으로 내린다. 늘 물에 잠겨 있으니 먹이 활동이 많아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반면 줄에 매달더라도 공기에 노출되는 시간을 길게 잡으면 좀 더 굴이 작고 맛의 집중도가 높아진다. 서해안과 가까운 전라도 장흥 같은 곳에서 시도하고 있다.굴 철이 되면 서해안에서 굴 축제도 열린다. 상당 양은 통영 같은 물량 많은 곳에서 실어 나른 굴이다. 서해안 굴이 그 축제의 필요량을 대기 어렵고, 축제에서 주로 즐기는 ‘구이’는 아무래도 씨알이 굵은 그쪽 굴이라야 먹는 맛이 있게 마련이다. 으레 그런 줄 알고 드시면 될 일이다. 굴 철이 되면 아침방송부터 온갖 언론매체들이 떠드는 게 있다. 굴이 남자한테 좋다, 이런 거다. 천연 비아그라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아마 고소증(高所症)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북한산에 올라갈 때 굴을 좀 챙겨 가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