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패딩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최근 패션이 지향하는 젊음, 스트리트, 1990년대,해체주의 같은 키워드에 부합하는 동시에 건축적인미학과 위트 있는 변형까지 곁들여 진화된이번 시즌 패딩에 대하여. | 패딩

소매의 탈착이 가능하고 단추를 여미는 위치에 따라 실루엣이 자유자재로 변형되는 패딩은 1백49만원으로 Acne Studios by My Boon 제품.요즘 젊은 여자들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감탄사는 단연 ‘쿨’해 보인다는 말이 아닐까. 쿨해 보인다는 것은 옷차림뿐만 아니라 성격, 태도 등에도 작용해 아름답고 멋지다는 모든 미사여구를 제압시켜버리는 형용사인 것이다.내 옷장에는 패딩이 단 한 벌도 없는데, 나의 기준에서 패딩은 지나치게 캐주얼하거나 애써 멋낸 듯한 느낌을 주는, 그야말로 쿨하지 않은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특허 받은 특별한 소재로 최대한 얇고 가볍게 누비는 등 기능성에 충실한 정통 아웃도어 브랜드의 패딩부터 놈코어 트렌드와 맞물려 사랑 받았던 고가의 프리미엄 패딩, 그리고 스트리트와 스포티즘 트렌드에 영향을 받은 하이 패션 브랜드까지 몇 해 전부터 앞다투어 패딩을 선보였지만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을 흔들지는 못했다. 적어도 지난 9월, 파리 컬렉션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미국 펑크 밴드 더 크램프스(The Cramps)의 팬이었던 아크네의 요니 요한슨은 이들의 글램한 룩이나 태도,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녹여낸 1980년대 무드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런웨이 위에 등장한 보디수트나 사이하이 부츠만큼 눈길을 사로잡은 건 버튼을 채우는 위치와 방식에 따라 탈착이 가능하고 실루엣을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는 패딩 점퍼였다. 어깨를 젖혀 입거나 이불을 뒤집어쓴 듯 거대해 보이기도 하고, 팔만 감싸는가 하면, 숄처럼 두르기도 했다. 아크네가 보여준 해체주의는 어딘가 잘못 만들어진 것 같았던 1990년대 마르지엘라의 의상을 떠올리게 했다.오버사이즈 트렌드에 불씨를 지핀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 데뷔 컬렉션에서 크게 주목 받은 룩 역시 커다랗게 부풀린 건축적인 실루엣의 패딩 점퍼였다. 이는 크리스토벌 발렌시아가의 아카이브에서 착안한 조형적인 형태감에 베트멍만의 1990년대식 젊음을 우아한 버전으로 풀어놓은 느낌이다. 거대한 패딩 머플러를 매치한 블랙 컬러 패딩과 어깨 뒤로 넘겨 입은 ‘오프 숄더 패딩’이 특히 그랬다. 무엇보다도 이 건축적이고 우아한 패딩은 주얼 장식의 스틸레토와 커다랗고 빛나는 귀고리와의 매치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드레스업과 드레스다운의 경계를 깨부순 뎀나의 진보적인 관점은 대중에게도 긍정적으로 어필됐다. 해외는 물론이고 한국의 발렌시아가 매장에서 이 평범하지 않은 고가의 패딩이 ‘완판’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Acne Studios, Balenciaga, Yang Li, Sacai, Jacquemus Stella McCartney, Marques' Almeida, DKNY, MSGM, Rick Owens뎀나는 쿠튀르 기간에 열린 베트멍 컬렉션에서도 패딩 점퍼들을 선보였는데, 그의 장기인 1990년대의 스트리트 무드와 해체주의적인 관점을 듬뿍 담은 파격적인 의상들이 관중을 매료시켰다. 특히 안전벨트처럼 보이는 스트랩이 달려 있어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한 패딩 점퍼와 비대칭의 미학이 발현된 패딩 베스트는 캐나다 구스와 콜라보레이션해 완성된 것으로 꽤 인상적이었다.스텔라 매카트니는 채식주의자답게 가죽뿐만 아니라 동물의 깃털조차 충전재로 쓰지 않고 패딩을 만들었다. 특히 패딩의 레이어링 방식에 주목했는데, 같은 컬러와 소재의 패딩을 하나의 룩에 믹스했고, 마치 수트를 입은 듯 드레스업한 느낌이 났다. 또한 이너웨어와 아웃웨어의 순서를 뒤바꾸거나 뒤로 넘겨 입는 등 스타일링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한편 지난 몇 시즌간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왔던 릭 오웬스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세상의 종말’을 테마로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기존에 비해서는 살짝 얌전해진 느낌이다. 하지만 모헤어로 만든 고치를 뒤집어쓴 모델들과 구조적인 패딩을 입은 모델들의 워킹이 이어지는 순간 예상은 빗나갔다. 의상들의 형태와 컬러의 조합은 마치 현대미술 작품 같았고, 특히 패딩은 조각상같이 보였다.매년 겨울이면 어김없이 하이패션으로 변형된 패딩에 대해 이야기해왔지만 이번 시즌은 확실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캐주얼하고 기능적인 패딩을 드레시한 버전으로 변형시키는 데 몰두했다면(허리를 잘록하게 만들거나 장식적인 디테일을 더하는 등), 이번 시즌은 패딩의 볼륨감 자체를 디자인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더욱 극대화한 것. 그렇다 보니 아웃도어보다 쿠튀르에 가까웠고, 애써 꾸민 느낌 없이 패딩 그 자체로 멋이 났다.결론적으로 이번 시즌 패딩의 매력과 고르는 기준에 대해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럭셔리나 완벽한 테일러링 같은 표현과는 거리가 있는 ‘불완전한 쿨함’(일부러 살짝 잘못된 방향을 취한 것 같은), 그리고 하이힐과 주얼리를 매치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커다랗고 우아한 볼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