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키워드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2017년, 지금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는 해시태그. | 2017년 키워드,키워드,Issue,해시태그

1. NO ROOM FOR HATE알렉산더 맥퀸은 큼지막한 세이프티핀이 달린 토트백을, 마르지엘라는 세이프티핀을 형상화한 귀고리를, 자라는 세이프티핀 셔츠를 출시했다. 물론 가장 심플한 방법은 그저 입고 있던 옷에 옷핀을 다는 것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 이후 각종 혐오 범죄의 씨앗을 목도한 사람들은 조용하고도 명징한 의사 표현법을 생각해냈다. 누군가의 티셔츠에, 셔츠 깃에, 혹은 재킷 위에 달려 있는 작은 옷핀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당신이 무슬림이어도, 여자여도, 성소수자여도, 당신은 안전합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모든 종류의 차별에 맞서 싸울 것입니다.” 2017년을 혐오의 해로 만들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SafetyPin 2. 전화는 하지 말아요어려운 사람에게 공식적인 용건을 전할 때는 전화로, 친한 사람들과의 수다는 ‘카톡’으로 하는 것이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지켜져온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룰을 정립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인정하자. 이제 우리 중 누구도 전화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전화가 익숙한 상사들은 전화를 잘 받지 않는 신입 사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론조사 업체들은 낯선 번호는 아예 받지 않는 20~30대가 설문조사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호소한다. 반면 모르는 사람과 통화하는 대신 스마트폰 버튼 몇 개 누르면 치킨도 시킬 수 있고 대리도 부를 수 있는 O2O 앱은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부재 중 전화에 대한 콜백 대신 ‘메시지로 남겨 주세요’라는 문자를 받았던 게 몇 건이었나? 그러니 이제 받아들이자. ‘전화 대신 카톡’이 뉴 매너다. 형식적인 인사와 어색한 근황 토크가 두려운 것은 거는 사람뿐 아니라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Phonephobia3. 혼자 있는 시간바빠서, 귀찮아서, 단순히 혼자 있고 싶어서. 우리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셨던 이유는 다양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는 시간을 지켜야 하는 시대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각자도생’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고 있다. 시스템이 나는 보호해 주지 않고, 오히려 위험에 몰아넣을 것이라는 위기감은 개인주의적 생존 전략을 더욱 철저하게 짜도록 만들고 있다. #각자도생4. 날개 달린 바이럴 피스인스타그램에 데일리 룩을 업데이트하는 디지털 ‘패피’들의 영향력이 점점 더 막강해진다. 그들이 입는 옷의 판매량이 엄청난지라, 컬렉션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다. 더 웨어러블하고 더 화려하게, 인스타그램의 정사각형 프레임에 적합하게 말이다. 보여주는 게 곧 전부인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룰은 ‘어느 브랜드냐’는 댓글에 친절하게 답글을 달아주는 것이다. #OOTD5. 가난한 이미지너무 많이 봐서 이제는 눈에 익어 버린 인터넷상의 저해상 이미지들은 모바일 시대의 지적 빈곤을 상징하는 천덕꾸러기다. 그러나 아티스트 히토 슈타이얼은 ‘가난한 이미지를 변호하며’라는 글에서 수천 번의 캡처를 당해 형편없는 ‘저퀄’이 된 ‘가난한 이미지(Poor Image)’의 의미를 재조명했다. “현재 크리스 마르케의 에세이 영화는 웹상에서 적어도 20여 개의 토렌트 자료로 구해볼 수 있다. 원한다면 홀로 크리스 마르케 회고전을 열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전송 속도를 위해 퀄리티를 버린 이미지에 화이트 큐브나 극장에서 찾을 수 없는 진보의 가치가 담겨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올해도 자유롭고 진보적인 ‘짤방’들을 마음껏 즐기자. #Lo-fi6. 버려야 산다그러나 버리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일 년 중 1월 1일에 가장 강렬해지는 욕구는 ‘정리욕’이다. 간소한 삶에 대한 갈증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2016년은 특히나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이 유행한 해였다. 그저 정리정돈의 기술 만으로 ‘세계의 영향력 있는 100인’이 된 일본의 스타 작가 곤도 마리에가 제시한 ‘단샤리’는, 철학적인 수양의 일종이자 어차피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수도 없는 시대의 절박한 정신 승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새로운 걸 사려면 있는 걸 버려야 한다. 이 생각부터 틀려먹은 걸까? 2017년에는 ‘휘게(Hygge)’라는 말이 새로운 키워드로 떠올랐다. 미니멀 라이프에 따뜻한 정서가 더해진 ‘휘게’는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냥 느끼는 거라고 한다. 어감만 들어도 뭔지 알 것 같지 않나? 참고로 덴마크에서는 “제 휘게 점수는 10점 만점에 10점이에요.” 같은 말도 한다. #Hygge7. YOU ONLY LIVE ONCE많은 트렌드 분석 기관에서 2017년의 키워드로 ‘YOLO’를 꼽고 있다. 칭찬 같기도 하고 조롱 같기도 한 단어 ‘YOLO’는 ‘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로, 틈만 나면 여행을 가고 비싸지만 좋은 물건들을 사 들이며 한 끼 식사에 엄마가 알면 기겁할 액수의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나, 혹은 내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등바등해도 손에 쥐어질 가능성이 희박한 중산층의 삶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을 포기하려는 사람이 적어도 내 주위엔 없다. 이렇게 사는 이유는, 이렇게 사는 방법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욜로족’으로 불리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YOLO’가 대문짝만 하게 새겨진 신용 카드까지 출시 됐다. 누가 그걸 들고 다니고 싶어하겠는가! 잭 블랙 또한 “그 말은 영 거슬린다. ‘욜로’는 우둔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카르페디엠’이다”라고 일침하기도 했다. #YOLO8. 각자의 작업복지금 패션계는 ‘작업복’에서 영감을 받은 다양한 옷을 쏟아내고 있다. 물론 우리가 블루 컬러 노동자 재킷을 걸치거나 기능적인 앞치마를 두를 확률은 적다. 워크웨어 트렌드가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매일같이 입는 ‘일상의 작업복’을 재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흰 셔츠일 수도 있고 블랙 재킷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작업복은 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고, 하루에 수십 통의 전화를 해야 하고, 타 부서 사람들과 대담한 커뮤니케이션을 이어나가야 하는 ‘각자의 일’에 최적화된 옷. 여전히 매일 아침 옷장 앞에 서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나의 캐릭터를 선명하게 반영하는 일상의 작업복을 준비해보자. #워크웨어9. 전기차의 시대2017년의 자동차는 의심의 여지 없이 전기차다. 엘론 머스크의 괴물 전기차 테슬라의 한국 상륙이 임박한 것이다. 그동안 오로지 환경만을 생각한 듯한 디자인의 전기차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매끈한 디자인과 우수한 성능으로 미래에서 온 느낌을 주는 테슬라를 서울 거리에서 마주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국내 첫 테슬라 차량 전용 충전소가 바로 어제 베일을 벗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테슬라가 ‘테슬라 네트워크’라고 불리는 승차 공유 서비스를 2017년에 론칭할 것이며, 이를 위해 자사의 모든 차량에 완전 자율주행 하드웨어를 장착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다. 애플과 구글도 개발에 뛰어든 자율주행시스템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아직 잘 상상이 안 간다. 아이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만큼의 간극일까? #전기차10. TALK TO HERMS가 채팅 앱으로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 챗봇 ‘조(Zo)’를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MS는 이미 챗봇 ‘테이(Tay)’를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트위터를 통해 공개된 직후 악의적인 사용자들에 의해 나쁜 말들을 학습한 테이는 인종 차별, 성 차별, 히틀러 옹호 등의 부적절한 응답으로 하루 만에 서비스가 중단된 바 있다. 조는 이런 심각한 오류를 보완한 서비스로, 가벼운 대화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글로벌 IT기업들이 너도 나도 챗봇을 개발하고 있는 이유는 농담 따먹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MS의 CEO 사티아 나델라는 “앱의 시대가 가고 봇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더 이상 새로운 앱을 다운 받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손에 익은 메신저에서의 채팅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국내의 카카오톡도 챗봇 서비스를 일부 시도하고 있다.) 챗봇은 놀라운 속도로 똑똑해지고 있다. #Chatbot11. 사전제작도, 도, 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2016년, 야심차게 준비한 사전제작 드라마들이 고전하면서 그 화살이 ‘사전제작’ 탓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제서야 겨우 도입되기 시작한 사전제작 시스템이 또 다시 좌절된다면, 앞으로의 우리가 좋은 콘텐츠를 누릴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진다고 할 수 있다. 2017년에도 사전제작은 쭉 이어져야 한다. #사전제작드라마12. 감정의 주인얼마 전 E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는 감정노동의 모멸감을 다루며 ‘감정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잡코리아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감정 노동자로 여기고 있는 직장인이 66%에 달한다. 2017년에는 웃지 않을 자유가 필요하다. #Donotsmile13. 일상의 페미니즘피렐리 달력의 2017년은 ‘민낯’으로 시작 된다. 사진가 피터 린드버그가 촬영한 줄리언 무어, 레아 세이두, 장 쯔이 같은 배우들부터 러시아 모스코바 국립정치대학 강사 아나스타샤 이그나토바까지, 화장기 없는 그녀들의 얼굴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메이크업을 할 자유와 하지 않을 자유, 브라를 할 자유와 하지 않을 자유, 완벽할 자유와 완벽하지 않을 자유가 모두 보장되는 2017년이 되길. #HerbodyHerchoice14. HIP OFFICE당신이 2017년에 가장 원하는 것은? 슬프게도, ‘일’이라는 대답이 상당수일지도 모르겠다.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경제 서비스의 오피스 버전인 ‘위워크(Wework)’가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런던에서 가장 ‘힙’한 장소로 떠오른 것은 그럴듯한 일이 사치품이 된 시대를 반증한다. 스타트업 피플이나 프리랜서, 단지 일하고 싶은 누구라도 고액의 월세를 지불하면, 카페와 작업실, 사무실의 중간쯤 되는 위워크의 공간을 셰어할 수 있다. 조도와 음악, 디자인은 물론이고 입주 회원끼리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도록 동선까지 계산된 ‘꿈의 오피스’다. 일할 공간을 찾아 유영하는 인구가 넘쳐나는 건 서울도 마찬가지인지라, 얼마 전 서울에도 위워크가 들어섰다. 진정한 의미의 #Wework가 보장되는, 일이 사치품이 아닌 시대를 기다리며. #Wework15. 불매운동2016년은 비윤리적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활발한 한 해였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최대 가해 업체인 옥시 제품부터 부패할 대로 부패한 정권의 조력자 역할을 한 기업들, 그리고 국정교과서까지. ‘사지 말아야 할’ 이유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기업이 너무나도 많기에, 불매 기업과 근거 자료를 카테고리 별로 정리한 문서가 돌아다닐 정도다. 2017년에도 이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것들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무엇인지 알게 됐기에. #Boycott16. 연애하지 않는 이유성소수자들을 통칭하는 용어 ‘LGBT’의 의미가 확장되며, 이젠 ‘LGBTAIQ’라는 말이 쓰인다. 이 중 ‘A’는 ‘에이섹슈얼’, 즉 ‘무성애자’를 가리킨다. 최근 활발한 에이섹슈얼리티 이슈는 이들이 더 이상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동성을 사랑할 자유가 있는 것이 당연하듯이 사랑하지 않을 자유, 혹은 섹스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도 당연하다. 이들의 말처럼, ‘섹스보다 케이크가 더 달콤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2017년에는, 나부터 후배들에게 일삼았던 질타를 그만두기로 한다. “넌 도대체 왜 연애를 안 해?” #에이섹슈얼17. 그것이 알고 싶다.옥스퍼드는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 Truth)’을 꼽았다. 사실이나 진실을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무시한 채 분노나 위기감 같은 ‘느낌’에 따라 행동하는 흐름. 진실은 힘을 잃었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물론, 비정상적인 사회다. 게다가 사실이 뭔지 너무나 알기 어려운 사회이기도 하다. 그것이 알고 싶은 것은 우리다. #팩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