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오바마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퇴임을 한 달여 앞둔 지금, 오바마는 여전히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는 대통령이다. 그를 떠나보내며 지난 8년의 순간 중 오바마를 가장 잘 담아낸 컷을 다시 본다. | 오바마,백악관

흑인으로서 차별 받으며 자랐던 만큼 오바마는 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동성 결혼 합법화에 힘썼으며,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여성과 비백인들에게 많이 수여했다.S#1.오바마는 백악관 서편에 위치한 아이젠하워 빌딩에서 열린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에 관한 포럼에 참석했다. 포럼이 끝나고 회의장을 나오던 그는 우연히 마주친 청소 관리인 로렌스 립스콤(Lawrence Lipscomb)과 주먹인사를 나누었다.백악관 전속 사진작가 피트 수자는 지난 8년간 오바마 곁에서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충실히 담아냈다. 우연히 마주친 관리인과 격식 없이 주먹인사를 나누는 모습, 집무실에 놀러 온 참모의 아들이 머리를 만져보고 싶어하자 몸을 한껏 굽혀 머리를 만지게 해주는 모습, 백악관 직원들의 생일파티를 해주거나 함께 눈싸움을 하는 모습들을 담아낸 사진 한 장 한 장에서 그의 소탈한 매력은 여실히 드러났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즉 미국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지배 계급 출신이 많았다. 그렇기에 아무리 권위적이지 않은 성격이라 하더라도 ‘친근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전의 대통령들과 달리 오바마는 옆집 아저씨 같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국민에게 다가갔다. 작년에는 비오는 날 군용 헬기를 타고 백악관에 도착한 그가 우산이 없는 참모들을 위해 우산을 씌워주면서 한쪽 어깨가 흠뻑 젖은 광경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활용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TV 토크쇼에도 20회 이상 출연해 짓궂은 질문을 던지는 MC들과 스스럼없는 농담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보여왔다.S#2.대선을 일주일 앞둔 2012년 10월 31일, 오바마는 허리케인 샌디가 강타한 뉴저지 주의 브라이건타인 지역을 방문해 피해를 입은 주민 도나 밴잔트(Donna Vanzant)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오바마의 친근함과 유머러스한 모습이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가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잘해왔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항상 국가가 필요로 하는 순간마다 국가 통수권자로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행동했다. 이는 참모진과 함께 활짝 웃고 있거나 아이들과 장난을 치는 모습만큼 홀로 고뇌에 빠져 있거나 업무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자주 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재난재해의 현장마다 나타나 피해 지역의 주민들을 안아주며 진심으로 위로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동부를 강타했을 당시 오바마는 대통령인 동시에 재선에 도전하는 대통령 후보였다. 급작스럽게 발생한 재해에 대한 위기관리 능력에 따라 재선에 성공할 수도, 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지만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피해 지역을 방문하여 적극적으로 재해 상황에 대처하던 모습은 결국 그의 재선에 유리하게 작용했다.S#3.오바마는 월터 리드 육군 의료센터를 방문해 한쪽 다리를 잃은 존 테리 소령과 마주보며 런지 운동을 했다. 존 테리는 말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날을 잊지 못할 겁니다.”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되었다가 부상을 입고 고국으로 돌아온 군인들이 입원해 있는 국군병원을 자주 방문했다. 그런 오바마에 대해 “대통령은 군인들을 위험한 지역으로 보내고도 숙면을 취할 수 있을 만큼 심리적으로 준비된 사람이어야 한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방문을 강행하고는 했다. 대통령과 만난 부상병들은 각자 전쟁터에서 얻은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당신의 희생에 감사합니다. 국가는 당신에게 빚을 졌습니다.”라는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하고, 껴안아주고, 함께 재활 훈련을 받기도 하는 대통령이 눈앞에 있으니, 비록 평생 짊어져야 할 장애가 생겼지만 적어도 헛된 희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을 것이다. 국가로부터 잊혀지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말이다. 우리도 오바마로부터 위로 받은 경험이 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용산 기지에서 미군 장병들에게 구조와 복구 작업을 도와야 할 필요성에 대해 연설하며 한국말로 “같이 갑시다.”라는 말을 건네 참담한 상황에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주었다.S#4.대통령 취임 축하 기념 무도회 참석 당일 엘리베이터 안. 오바마가 미셸에게 다가가 이마를 맞대며 활짝 웃었다. 로맨틱하고 사적인 순간을 나누는 대통령 부부의 모습에 함께 이동하던 보좌관들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난처한 표정으로 익살스럽게 응수했다.역사상 이렇게 섹시한 대통령 부부는 없었다. 아내를 향한 오바마의 서슴없는 애정 표현은 언제나 기분 좋은 놀라움을 선사했다. 오바마와 같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미셸은 시카고에 있는 시들리 & 오스틴(Sidley & Austin) 로펌에서 근무하던 중 인턴으로 들어온 청년 오바마를 만나게 된다. 이윽고 사수와 부하직원과의 관계에서 로맨스가 피어난다. 오바마의 임기 내내 미셸은 퍼스트레이디로서 120%의 역할을 해냈다. 그녀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사실 남편 옆에 서 있는 순간보다 홀로 단상에 올라 특유의 당당함으로 울림 있는 연설을 할 때였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힐러리 지지 연설은 미셸이 단지 리더의 옆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또 한 명의 리더임을 증명했다. “저는 매일 아침 노예들이 지은 집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지적인 두 명의 어린 흑인 여성들, 제 두 딸들이 백악관 잔디에서 강아지들과 뛰어노는 것을 바라봅니다.”라는 말과 함께 울먹이는 그녀의 모습에 청중들은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녀의 연설은 미국의 새로운 퍼스트레이디가 될 멜라니아 트럼프까지 사로잡았던 것 같다. 올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지난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의 미셸의 연설을 표절할 정도였으니.S#5.지난달 백악관 이스트 룸에서 열린 자유의 메달 시상식. 오바마는 2003년부터 13년 동안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진행해온 코미디언 엘렌 드제너러스의 뒤에 서서 직접 그녀의 목에 자유의 메달을 걸어주었다. 엘렌은 끝내 감격에 겨운 눈물을 보였다.자신이 흑인으로서 차별 받으며 자랐던 만큼 오바마는 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동성 결혼 합법화에 힘썼으며, 미국 사회에 공헌한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여성과 비백인들에게 많이 수여했다. 오바마보다 세 배 이상 많은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미국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엘렌도 “그녀는 한 개인이 세상을 더 재미있고 더 개방적이고 더 사랑할 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존재를 온 국민 앞에서 인정해주는 대통령 앞에서 결국 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1997년 커밍아웃 후 줄곧 LGBT에 대한 편견과 싸워오며 결코 녹록지 않았을 그녀의 인생 전체를 위로 받는 느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