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독 흰 고독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하얗거나 검은, 아티스트 이배의 작품을 보면서 등산가 라인홀트 메스너가 쓴 <검은 고독 흰 고독>이 떠올랐다. | 아트,이배,라인홀트 메스너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라인홀트 메스너는 사람들의 찬사를 뒤로하고 두어 달 만에 홀로 낭가파르바트를 등반한 여정을 에 남겼다. 셀파도, 장비도, 파트너도 없이 오직 8천 미터 빙벽과 고독한 한 인간이 마주선 순간에 대해 그는 담담히 적었다. 부산 달맞이고개 정상에 위치한 조현화랑에서 아침 해가 사선을 그리며 이배의 숯 그림을 가르는 모습을 보았다. 빛이 닿은 부분에서 숯의 단면들은 회색, 은색, 검은색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펼치며 은근히 반짝이고 있었다. 26년 전, 30대 중반의 나이에 온전히 작업이 하고 싶어 떠나온 파리에서 이배는 바비큐용 숯 봉지를 발견하고는 작업실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것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겨울날 이래로 숯과의 고독하고 정결한 인연이 이어진다.숯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990년 2월,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가 파리에 정착해서 팡탱의 오래된 담배공장 건물 한쪽에 작업실을 얻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작가로서 활동도 좀 했는데 생활인으로서의 역할 때문에 학교 선생님도 하고 화실에서도 가르치고 하다 보니 도무지 내 작업을 할 수가 없었어요. 당시에는 이름난 동양화 작가들 말고는 작품이 팔리는 시대가 아니었거든요. 공항세관 직원이 직업을 묻기에 “화가입니다.” 했더니 ‘무직’이라고 쓰는 시대였죠.(웃음) 하루 종일 내 작업을 해보고 싶어 나간 건데 미술용품부터 양껏 살 수가 없었어요. 너무 비쌌거든요. 그 즈음 슈퍼마켓에 바비큐용 숯 봉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무심결에 사서 작업실로 가져왔습니다. 대학 때 목탄으로 드로잉 하던 기억이 나서 그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일주일간 물감 걱정 안 하고 숯으로 실컷 작업했습니다. 경제적인 압박으로부터 숯이 나를 구원해주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숯을 가지고 하는 작업도 진화했습니다. 아크릴 미디엄으로 숯을 캔버스에 붙이기도 하고 캔버스에 오래도록 문지르면서 생기는 숯가루가 일종의 부조처럼 되어서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했어요.숯이라는 재료는 이배의 작품 세계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유럽 및 서구의 미술계에서 작품을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예측해봅니다. 동양에서 온 작가로서 서양의 현대미술계에서 어떻게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숯이라는 재료를 발견하게 됐고 그것으로 계속 작업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어요. 석고나 금속 같은 다른 재료로도 작업을 했지만 유독 숯에서 정서적 유대감을 느낀 이유 같은 것들을 말입니다. 파리로 올 때 저는 근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왔는데 막상 파리에 있어보니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 제 근원에 대한 강한 유대감이 필요했고 그걸 숯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숯의 검은색은 서예, 먹 같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심지어는 어릴 적 동네에서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집 앞에 숯을 달아둔 모양 같은 오랜 기억도 떠올랐지요. 숯은 그토록 친근하고 상징적인 재료였고 내가 떠나온 동양의 근원에 대한 이미지를 입힐 수 있는 재료이기도 했습니다. 동양의 먹의 세계로부터 내 작업을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숯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나만의 방법론을 만들기 시작한 거죠.숯을 부조에 가깝게 캔버스에 붙이는 방법론이 그 과정에서 탄생하게 됐을 텐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Landscape’ 시리즈와 ‘Issu de Feu’ 시리즈는 둘 다 2000년도 작품으로 캔버스에 숯을 붙였지만 그 방법이 조금 다릅니다. 교과서적인 설명은 아닐지 모르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현대미술과 근대미술을 가장 선명하게 가르는 게 바로 방법론이란 겁니다. 근대미술에서는 컴포지션, 하모니를 통해서 자기의 개성과 미술이라는 세계를 표현했다면 현대미술에서는 작가의 방법론으로, 그러니까 작가가 미술이라는 걸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 미술을 하게 되었죠. 숯을 가지고 저만의 방법론을 고안해내기 시작했고 보다 초기작인 ‘Landscape’ 시리즈는 캔버스에 여백을 두고 특정 형태로 숯가루를 짓이기고 아크릴을 녹여 화면에 두껍게 붙인 것이고, ‘Issu de Feu’ 시리즈는 절단한 숯 조각들을 화면 가득 붙인 후 먹을 벼루에 갈 듯 물을 듬뿍 묻힌 사포로 섬세하게 문지른 것입니다. 전자에서 후자로 발전했다고도 볼 수 있죠.대표작인 ‘Issu de Feu’ 시리즈는 꼭 실제로 봐야 할 것 같아요. 화면을 가득 메운 여러 숯의 단면이 각각 다른 빛을 발하는데 다양한 각도에 따라서 빛이 은근하고 수줍게 밝기를 달리하는 모습이 신비로워요. 숯 덩어리 묶음을 단면으로 잘라놓은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사포로 문지를 때 결이나 컬러를 조절하나요? 전혀 조절하지 않습니다. 숯은 자연에서 왔고, 자연이라는 건 카오스의 세계라고 할 수 있어요. 인간의 생각 너머에 있는 거죠. 우린 카오스를 이해할 수 없고 우리 말을 듣지도 않죠. 저는 농부의 아들인데 오래 농사를 지은 농사꾼들은 자기를 흙에 순응시킵니다. 내가 흙에 순응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작업을 하면서 제가 숯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숯 하나하나 컬러도 결도 빛을 반사하는 방식도 모두 다른데 내 개념과 잘 접목해 퍼즐처럼 맞춰왔죠. 그렇게 한 결과가 하찮거나 평범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만의 예술적 방법론을 통해 혁신적인 감상을 가능하게 했다면 그게 바로 예술가의 기능이 아니겠나 생각했어요. 작업을 할 때 모든 순간 순간은 다 우연입니다. 얼마만큼의 물을 섞어서 컬러를 만들지 어떤 선을 그릴지 무수한 우연들이 모여 하나의 의도된 작업이 도출됩니다.이번 전시에서 가장 최근작에 해당하는 ‘Untitled’ 시리즈는 숯이 부조처럼 캔버스에 붙어 있는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서예가 떠오르는 추상회화 작품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2000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 상 전시를 일 년 동안 준비하면서 숯이라는 재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습니다. 제 속에서 폐쇄되어 있는 것들에 자유를 주고 싶어서 숯가루와 숯 덩어리를 공중으로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게 됐습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Untitled‘ 시리즈로 발전됐어요. 아크릴 성분의 용제가 섞인 숯가루로 모티프를 그린 후 일정한 두께의 우윳빛 아크릴 수성 재료를 바르는 과정을 세 번 반복하는 작업입니다.이 작품 역시 실제로 보면 2차원적 평면이 아닌, 3D 영화처럼 부유하는 느낌이 드는데 동일한 과정을 세 번 반복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효과인 거죠? 이런 효과를 의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서양화에서는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칠하면 표면에 축적이 되는 데 반해 동양화에서는 한지에 먹으로 그림을 그리면 스며듭니다. 이 작업을 통해 그러한 동양화적인 기법과 느낌을 현대적으로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화선지에 먹이 배어드는 걸 표현하기 위해 처음에는 숯가루를 묻혀 붓으로 모티프를 그리고 아크릴 수성 재료로 그 위를 덮습니다. 아크릴이 투명해서 처음의 모티프가 비치는데 두 번째에는 그대로 세필로 그리고 다시 칠을 한 후 이 과정을 또 한 번 반복합니다. 한지가 먹을 머금고 있는 물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단순히 표면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검정의 물성이 아크릴 수성 재료 속에서 부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위해 세 번쯤 칠해서 깊이를 주는 겁니다.숯을 이용한 설치 작업도 선보이셨는데요, 작년에는 프랑스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에서, 올해에는 샤토 쇼몽쉬르루아르에서 전시를 가졌습니다. 설치 작업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숯을 이용한 설치 작업은 재료 자체에 대한 생각을 더 멀리 밀고 나가고 싶다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캔버스 위에 구속되어 있던 물질 그 자체를 자연으로 되돌리고 싶었습니다. 관람자는 공간에 놓인 동여맨 시커먼 숯 덩어리들 사이를 걸으면서 숯이라는 물질 그 자체를 만나게 됩니다. 관람자와 물질의 만남은 캔버스보다 공간 속에서 훨씬 더 강렬하게 조율할 수 있습니다. 숯 덩어리들은 자연의 물질 그 상태로 그저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을 옮겨 와 설치를 하는 행위에 작가로서의 저의 개입이 있는 거지요. 물질을 전혀 변형시키지 않되 그것이 원래 있을 곳이 아닌 전혀 다른 콘텍스트에 존재하는 특정 사건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럼으로 자연의 물질과 인간이 만든 문명의 대화를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특히 유럽 최대의 동양예술품 박물관인 기메 동양박물관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가졌는데, 전시 전경을 보면서 직접 그 기운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파리에서 사는 27년 동안 가까운 거리에 있는 루브르와 기메 박물관 중에 특히나 기메에 가는 걸 무척 좋아했습니다. 뛰어난 예술가들이 수십 세기에 걸쳐 만든 인류의 보물들이 있다는 점은 같지만 루브르에서는 인간의 위대한 능력을 보면서 감탄하게 된다면 기메에서는 인간의 뛰어남을 넘어선 어떤 초월성에 가닿아 있는 순간을 목도하게 됩니다.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할까요? 아시아 예술품만 모아놓은 기메 박물관에서는 절대성, 숭고함을 향해서 나아가려는 의지가 너무나 신실해서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아시아 예술의 에스프리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맨 꼭대기 층에서 제 전시를 시작으로 현대미술 전시를 띄엄띄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첫 테이프를 끊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전시를 준비해도 아래층들을 가득 메운 그 초월적인 기운에는 따라갈 수가 없거든요. 최선의 선택은 가야산에 있는 가마에서 구운 커다란 숯 덩어리를 화선지를 두껍게 배접한 바닥에 세워놓는 설치 작업이었습니다. 숯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물성의 마지막 모습을 구현한 것이었죠. 일상성을 완전히 벗어버린 순수성이나 정결성 같은 것들을 암시해보려고 애썼어요.숭고함, 초월성 같은 속성은 확실히 동양 예술의 특성이라고 보시나요? 아직까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이나 의복 같은 일상의 모든 것들이 서구화되었지만 그럼에도 입맛이 잘 안 바뀌는 것처럼 오랜 인류의 역사에서 유전자로 전승되어온 정신성만은 쉽게 변화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양 예술은 예술 자체의 세계성을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가졌어요. 권력을 가진 왕이나 귀족들이 뛰어난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기도 하고 그들을 대접해주며 예술을 발전시켜왔죠. 반면 동양에서는 예술을 인격을 높이는 수련 과정 중 하나로 여겼습니다. 예술의 가치를 명백히 정신성에 두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학자나 정치 하는 사람들은 다 예술을 했어요. 난초나 대나무를 그리고 거문고를 타고 시를 쓰고.... 자신을 좀 더 숭고하고 높은 데 두려고 하는 활동의 일환으로서 예술을 했던 거죠.자연으로부터 숯을 가져와서 전혀 다른 콘텍스트에 놓는 설치 작업이라든지 기하학적 모티프와 서체적 추상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에서 모노하나 단색화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예술 사조 가운데 작가님의 작업은 어디쯤 위치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답을 하기 대단히 어렵네요. 내가 나를 평가할 만한 능력은 없는 것 같고 대학 다닐 때 가르침을 받은 은사님들이 지금의 단색화 1세대를 이루고 계시니 영향을 받았을 것은 분명합니다. 이우환 선생님 역시 파리에서 그분의 어시스턴트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가까이에서 작업을 지켜보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겠죠. 그때 제 일은 캔버스를 아주 팽팽하게 매는 게 주 업무이긴 했습니다만.(웃음)캔버스가 팽팽해야 했던 이유가 있나요?(웃음) 아주 중요했어요. 왜냐하면 선생님이 붓으로 화면을 건드렸을 때 거기서 오는 반응이 작업에 긴장감을 유발시키거든요. 선생님의 작업에서 캔버스라는 화면과 작가가 마주 섰을 때, 그러니까 거기서 대화라는 걸 하려 할 때 긴장이라는 의식이 존재해야 하거든요.정말로 궁금해서 여쭙는데 수십 년 동안 숯으로 작업을 해오셨잖아요, 숯의 효능을 체감하시나요?(웃음) 과학적인 근거는 없는데 그런 게 있긴 합니다. 숯가루를 물에 이겨서 사용하기 때문에 작업실 여기저기에 그렇게 해놓은 것들 중에 10년도 더 된 게 있거든요. 근데 아직도 그 물에서는 신선한 미네랄 냄새가 나요. 진짭니다.(웃음) 간장을 담그려고 메주를 띄울 때 숯을 넣어야 박테리아 없이 잘 숙성된다고들 하고, 악귀를 쫓아내는 의미로 숯을 달기도 하잖아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각은 숯과 소금을 다량으로 묻은 땅 위에 지었다고 해요. 8백 년 넘게 목판이 뒤틀리지 않도록 숯이 온도와 습도를 지켜주었다는 거죠.오늘 이 전시장에서 흰색과 검정색의 수많은 스펙트럼을 본 느낌입니다. 두 가지 색깔이 지겹지는 않으신지요? 숯은 단색으로 보이지만 수많은 색깔을 품고 있습니다. ‘Issu du Feu’는 ‘불의 근원’이라는 뜻인데 불에서 왔다고 생각할 때 붉은색도 떠올릴 수 있고, 그렇게 검은색은 모든 색을 다 흡수하기에 색깔로 가득 차 있는 색입니다. 반면 흰색은 다른 방식으로 색의 기억을 저장할 수 있어요. 흰색과 검은색은 단순히 한 가지 색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색들입니다. 어쩌면 색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다른 색깔처럼 정체성도, 내러티브도 없고 다른 색과 함께하지도 못합니다. 훌륭한 서예가가 먹으로 그린 대나무를 떠올려보세요. 그 누구도 왜 초록색 대나무를 검은색으로 칠했는지 의아해하지 않습니다. 검은색이 훨씬 더 대나무의 존재감을 잘 전달하기 때문이지요. 즉, 유사성보다는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거라는 거죠. 제 접근도 이와 비슷합니다. 언젠가는 다른 색도 사용할 테지만 아직까지는 두 가지 색깔이 전혀 지겹지 않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