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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 로더의 상속녀 에어린 로더가 햄튼에 위치한 집과 영감을 주는 요소, 그리고 할머니인 에스티 여사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 추억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 에스티 로더,fashionable life,에어린 로더,패셔너블 라이브

에어린 로더의 침대 옆 테이블 위에는 그녀의 할머니이자 전설적인 뷰티 선구자인 에스티 로더가 친필로 쓴 편지가 금빛 액자에 걸려 있다.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쓴 편지에는 뉴욕의 롱아일랜드 웨인 스콧에 위치한 집을 자신의 손녀에게 상속한다고 쓰여 있다. 46세의 에어린 로더는 뉴욕 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특히 롱 아일랜드의 이스트 엔드에 깊은 애착을 갖고 있다. 자라는 동안 에어린 로더는 동생 제인과 함께 부모인 로날드와 조 캐롤이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할머니 댁으로 걸어 다니곤 했던 것을 기억한다. 몇 십 년이 지나고, 그녀의 두 아들은 그들의조부모를 만나기 위해 똑같은 그 길을 걷곤 한다.Michael Kors Collection, 슈즈는 약 $1044로 Manolo Blahnik 제품."/>오랜 세월 햄튼에 주택을 가지고 있던 에어린 로더의 가족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주말과 휴가를 이곳에서 보냈다. 에어린 로더가 17년 동안 소유하고 있는 이 집은 그녀의 어린 시절 추억들로 가득하며, 에스티 여사의 영향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공간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는 파우더룸 벽에는 에스티 여사의 밀짚모자 컬렉션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1930년대 지어진 그리스 스타일의 2층 건물로 강렬한 역사의 향기가 풍기는 집이기도 하다. 현관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하얀색 기둥과 입구 통로에 위치한 웅장한 나선형 계단은 이 집의 클래식한 미학의 일부라 할 수 있다. “할머니는 늘 확고한 스타일을 가지고 계셨어요. 기둥이 있는 하얀 집을 좋아하셨죠. 팜비치에 위치한 할머니 집에도 기둥이 있었고, 런던 이튼 스퀘어의 집도 하얀색 이었어요. 이건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신 영화인 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Erdem 제품."/>또한 이 집은 장엄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가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긴 털 닥스훈트인 디스코가 브리타니 스패니얼인 비스킷, 슈아치와 함께 짖어대며 집 안을 뛰어다닌다. 가장 어린 강아지인 슈아치는 수영장에 몸을 던지고 돌아와서는 가구 주변에서 물을 털어낸다. 그러나 그녀는 동요하지 않는 듯 보인다. 이런 것들이 이 집이 편안한 이유니까. 아스펜, 콜로라도의 집들과 맨해튼의 아파트를 모두 포함해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주택은 웨인 스콧에 위치한 이곳이다.아마 어릴 적 추억 때문일 거예요.저는 시골과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기가 천국 같아요.”햄튼은 에어린 로더가 남편인 45세의 개인 투자가 에릭 진터호퍼와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둘은 처음 만났는데 당시 그녀는 4학년, 남편은 3학년이었다. 졸업 후 정착한 그들은 다시 연애를 이어갔고 1996년 6월 웨인 스콧에 위치한 에어린 로더의 부모님 댁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은 언제나 이곳으로 바람을 쐬러 오는 것을 좋아해요. 나만큼 그도 이곳을 좋아한다는 점이 절 행복하게 하죠.” 에어린 로더와 그녀의 남편이 두 아들과 처음 이 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 방은 두 개뿐이었다. “처음 몇 년 동안 전혀 손을 대지 않았어요. 아이 둘이 함께 작은 방을 사용했어요. 할머니가 다른 가족들이 머무는 용도로 사용하던 방이었죠. 그러다 두 아들이 자라고 친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오면서 방의 개수를 확장해야겠다 마음먹었어요.” 그들은 부엌부터 공사를 시작했고 방 세 개를 추가했다. 그리고 거실 공간을 확장했다. 이는 오래된 집을 전문적으로 복원하는 업체와 함께 작업했다.‘시간을 초월한 우아함과 개성’이라 표현되는 에어린로더의 스타일이 이 공간 속에서 잘 묻어난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방 중 하나인 서재는 완벽하게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조명 기구들과 절충적인 믹스 매치로 감각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서재 바로 맞은편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또 다른 방이 나온다. 할머니의 거실로 사용하던 곳으로 그녀가 소장하고 있던 블루와 화이트 컬러의 도자기 컬렉션이 장식되어 있다. 이는 에스티 로더 브랜드의 패키지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컬러 팔레트다.“저는 블루와 화이트 방을 좋아해요. 할머니가 아가 칸, 모나코 왕비 그리고 낸시 레이건과 함께 이 테이블에서 사진을 찍으셨거든요. 전 이 사진 옆에 특별한 날 찍은 두 아들 사진을 추가했어요. 어떻게 역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죠. 저 방은 매우 감성적이에요.” 가족 사진부터 아들들이 그린 그림을 담은 액자 그리고 에스티 여사가 소장했던 그림들과 티나 바니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사진과 다양한 미술품들이 집 안 곳곳에 장식되어 있다. 티나 바니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에도 걸려 있다. “그녀는 매우 지쳐 보이는 저와 아이들 사진을 찍었어요. 저는 M&M 초콜릿으로 아이들을 달래고 있고 그 중 한 명은 수영복 안에 기저귀를 차고 있었어요. 최고의 룩은 아니지만 당시 엄마로서의 제 삶을 제대로 포착했어요. 매우 현실적이죠. 또한 거대한 작품 사이즈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그 순간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주죠.”예술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에어린 로더의 감각에는 가족의 영향이 있다.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오스트리아의 미국 대사로 발령을 받았던 아버지 로널드는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20세기 초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미술 박물관인 노이 갤러리(Neue Galerie)를 공동 설립했다. 또한 현대미술관에서 명예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아트 컬렉터로 알려진 그는 2006년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을 약 1억8천만 달러에 구입했는데 이는 당시 미술품 구매액 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아버지는 거의 집착하는 수준이었어요.” 그녀는 아트를 향한 아버지의 열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놀랄 만한 아이디어들을 갖고 계세요. 우리 집에 오시면 저에게 물건들을 어떻게 바꿔놓아야 하는지를 늘 말씀하곤 하셨죠. 근사한 아트 북들도 사주세요. 저에게 아버지는 아트와 시각적 측면에서 롤모델이에요.”에어린 로더의 또 다른 롤모델은 그녀의 할머니다. 1946년 4백억 달러 규모의 뷰티 왕국을 설립한 그녀는 살아 있을 당시 자수성가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브랜드 에스티 로더는 가장 사고 싶은 뷰티 제품 중 하나로 이 거대 그룹은 라 메르, 크리니크, 맥, 그리고 조 말론 런던 등의 브랜드도 소유하고 있다. “할머니가 걸어온 길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대단해요. 대부분의 여성들이 일하지 않던 시대에 무에서 유를 창조해냈다는 사실 말이에요. 어떤 이들은 최고의 교육을 받고 너무나 많은 것들이 주어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죠. 할머니는 대학을 가신 적도 없어요. 그저 열정과 꿈을 가지고 계셨죠. 열정과 의욕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이뤄내는지 늘 생각해요. 할머니가 그 길을 만드신 거죠” 7년간 에스티 로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에어린 로더는 할머니의 뒤를 따라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시작했다. 에스티 로더 브랜드와 여전히 많은 부분이 연결되어 있지만 4년이 된 그녀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에어린은 원단과 벽지, 핸드백, 액세서리 등 새로운 컬렉션 론칭부터 더 많은 종류의 뷰티 제품들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사람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플하게 만들어주는 아이디어를 좋아해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세련되어 보이는 에포틀리스 스타일과 편집이 중요하죠. 그래서 우리는 립스틱을 처음 론칭했을 때 20개가 아닌 10개만 선보였어요. 액세서리의 경우 신발은 백과 매칭돼요. 스타일링을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에어린 브랜드는 온라인과 전 세계 백화점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최근 국내에서도 일부 제품을 분더숍에서 만날 수 있다. “컨셉트 스토어는 브랜드 제품들이 모두 공존하는 첫 번째 장소예요. 이상적인 여건에서 브랜드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곳입니다. 보통 뷰티는 뷰티 제품끼리, 액세서리는 액세서리끼리, 홈은 홈 제품끼리 선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처럼 모조리 다 볼 수 있는 곳은 많지않죠. 이곳에서 제품들을 구경할 때 브랜드의 확고한 컨셉트와 재미난 이유를 깨닫게 될 거예요.”에어린 로더는 여러 매장에서의 전략적 배치는 유지하되 이 컨셉트를 여러 도시에서 펼칠 계획이다. 또한 그녀는 할머니로부터 배운 또 다른 교훈으로 전 세계의 매장들과 신중하게 관계를 발전시켰다. “할머니는 매장을 방문하고 카운터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우리는 갤러리 라파예트나 해러즈 백화점을 가곤 했죠. 연세가 드셔서 더 이상 백화점 계단을 걸어 올라가지 못하셨을 때조차 그녀는 차를 타고 삭스 백화점과 로드 앤 테일러의 모든 크리스마스 쇼윈도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할머니는 쇼윈도를 바라보는 것으로 본인이 매장 분위기의 일부가 된 듯 한 느낌을 받으셨죠.”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것이 로더 가족의 성공 비결 중 하나다. 에어린 로더는 할머니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다무엇을 하든제대로 하고 열정을 갖고 하라.”그리고 “열정과 강인한 직업 의식.”에어린 로더에게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단순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열심히 일하는 것.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여야해요. 언제나 1백 퍼센트를 쏟아붓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이건 제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준 거예요.” 그렇게 로더 가의 유산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