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 발렌티노의 피에르올로 피치올리와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지금은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처럼 액세서리 디자이너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이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이들은 모두 럭셔리 하우스의 최고 위치에 오른 후 브랜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이 영향력 있는 그룹에 새롭게 추가된 인물은 조니 코카다. 셀린의 액세서리 수석 디자이너였던 그는 2014년, 베이스워터와 알레사 백으로 유명한 영국 브랜드 멀버리행을 택했다. 패션계에서는 아직 낯선 얼굴일지 몰라도 그의 최근 작품인 트라페제와 트리오 백은 세상에서 가장 잘 알려진 가방 리스트에 올랐다.
많은 기대를 모았던 그의 데뷔 다음 날, 나는 런던의 켄징턴 처치 거리에 위치한 멀버리 본사에서 수다를 좋아하는 코카를 만났다. 그는 2016 F/W 레디투웨어와 액세서리 컬렉션을 12세기부터 시청으로 사용돼온 런던의 역사적인 장소인 길드홀에서 공개했다. 중세 배경이 컬렉션의 전체 분위기를 조성했다. 셀린에서 근무한 이래로 런던에서 살아온 스페인 출신 코카는 런던의 거리만큼이나 <햄릿>에 등장하는 오필리어의 일러스트 같은 역사적 자료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여성과 그들의 모순은 제게 많은 영감을 줍니다. 오늘날 여성들은 매우 강인하면서도 여전히 부드럽고, 연약하며, 시적이에요.
데비 해리스, 애니 레녹스 그리고 FKA 트위그스 같은 여성 뮤지션들이 이런 외강내유 같은 여성의 모순을 완벽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옷으로 표현하자면 스터드 장식의 바이커 재킷, 비대칭 킬트(스코틀랜드의 전통 남자 스커트로 우연히 코카도 즐겨 입게 되었다), 밀리터리풍 아우터 그리고 투박한 부츠 등을 영국 하위문화 스타일로 절묘하게 풀어냈으며, 슬립과 보머 같은 트렌디한 아이템도 살짝 뿌려 넣었다.
백 컬렉션에는 가장 낮은 가격대의 깔끔하고 작은 크로스 보디 백(클리프톤 백)부터 빈티지 스타일의 톱 핸들 백(체스터 백), 그리고 탈착이 가능한 앞주머니와 핸들이 달린 각진 토프백 메이플까지 절충적이고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선보였다.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백을 만든 이유는 '단 하나의 백만 만들어서 이번 시즌 백으로 정해야지'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길거리에 나가보면 너무나도 다양한 여성들이 있으며 누구는 토트백, 누구는 호보 백 그리고 또 다른 이는 작은 백이나 체인 백을 좋아해요. 왜냐하면 가방은 자신의 애티튜드를 말해주는 데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니까요.”
코카가 멀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고 첫 컬렉션을 선보이기까지 15개월이라는시간이 주어졌다. 지난 2013년 중반, 엠마 힐이 떠난 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가 비어 있던 멀버리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긴 시간이 그에게 주어졌다. 루이 비통과 발리에서도 일한 적이 있는 럭셔리 브랜드 베테랑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멀버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경쟁자와 브랜드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들과 다른 무언가를 만들고 그들을 따라 하지 않는 거예요. 새로운 무언가를 끌어내야 한다는 거죠. 또 하나는 영국의 애티튜드가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다는 거예요. 프랑스, 이탈리아 혹은 미국을 가보면 모두 영국 자료를 많이 참고하고 있지만 우린 영국 브랜드로서 그 애티튜드가 DNA 자체에 내재되어 있어요. 우리가 가진 또 다른 자산은 최고의 공장들이에요. 약 6백 명의 사람들이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수많은 브랜드가 그렇지 못하죠.” 코카가 말하는 공장은 브랜드가 설립된 1971년 만들어진 서머싯에 위치한 루커리와 윌로 공장을 말한다.
코카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수행한 첫 임무는 니콜라스 나이틀리가 2003년에 만든 아이코닉한 베이스워터 백을 재정비하는 것이었다. 이는 멀버리 장인들이 가진 노하우와 코카가 지닌 가방 제작의 기본 지식 덕분에 가능했다. “정말 대단한 디자인이며 여전히 멀버리의 베스트셀러지만 저는 오늘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보다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요소들을 더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설명한다. 새롭게 향상된 버전은 좀 더 가볍고 핸들이 축 처지는 대신 세워져 있다. 그리고 패들락 장식은 없어졌으며, 내부 포켓은 좀 더 직감적인 위치로(뒤쪽이 아닌 앞쪽으로) 이동했다. “노트북을 넣을 수 있는 충분한 공간도 생겼어요.” 만일 이러한 요소들이 흥미롭지 않다면 클래식한 디자인도 여전히 구입 가능하다고 그가 덧붙인다.
우리는 둘 다 마음에 들어요.”
조니 코카의 실용주의는 이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액세서리 디자이너들이 패션 업계의 새로운 록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조니 코카, 알레산드로 미켈레,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 같은 액세서리 디자이너들이 이전에는 패션쇼의 스타가 되지 못했을지라도 요즘은 백과 슈즈들이 럭셔리 브랜드의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대부분의 경우 의류보다 훨씬 비중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의 제품’을 만드는 것을 요구하는 업계에서 그들의 이전 역할은 무척이나 중요해졌다. 이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차세대 디자이너들에게 그가 가르쳐주고 싶어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고받음과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것이 무척 즐거워요. 저는 액세서리 디자이너의 위상을 높이고 싶어요.” 그는 자신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