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여자, 너드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두꺼운 안경을 쓰고 SF 코믹북이나 컴퓨터에 집착하는 여자들. 여자 너드는 매력적인 존재일까? 혹은 너드인 척하는 타도의 대상일까? | 고스터 버스터즈,여자 괴짜,여자 너드

아마 올해 유튜브에서 가장 많은 ‘싫어요’를 기록한 무비 트레일러는 리부트된 일 것이다. ‘좋아요’가 고작 30만 개, ‘싫어요’는 무려 1백만 개가 넘는다. 역대 최악의 히어로 무비라는 리부트 나 조차도 ‘싫어요’보다 ‘좋아요’의 수가 많은 걸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괴짜들이 유령을 소탕하고 세상을 구한다는 컨셉트는 원작과 같고 기술적으로 보나 스토리로 보나 감히 에 견줄 ‘망작’은 아니건만! 그럼에도 트레일러엔 처참한 댓글이 쏟아진다. “남자(Dick)가 없다는 게 사실이었다니!” “여자(Chick)가 모든 것을 망쳤어.” “페미니스트가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는 걸 확인시켜준 영화.” 결국 분노의 이유는 영화적 재미나 작품성보단 남자가 아닌 ‘여자 괴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너드’인 ‘여자’가(그러니까 의 스칼렛 요한슨 같지 않은 여자가) ‘히어로’가 된다는 건 누군가에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인 거다.너드의 세계만큼 여자에게 척박한 곳도 없다. 성비는 아마 9대1쯤 될 것이다. 당신은 여자 너드의 이름을 몇이나 알고 있나? 야후 CEO 마리사 메이어 혹은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 전설적인 너드 미드 의 작가이자 배우인 티나 페이 정도까지 가까스로 떠올리고 나면 말문이 턱 막힌다.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가 외모와는 상관없이 인류의 새로운 롤모델로 추앙 받는 반면 마리사 메이어는 실리콘밸리의 슈퍼스타로 떠오를 때조차 ‘슈퍼모델 같은 슈퍼 괴짜(Super geek with the super model looks)’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여자 너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또 어떤가. 애초에 몇 편 없는 데다 그마저도 ‘무늬만 너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 ‘캣’(줄리아 스타일스)과 의 ‘제이미’(맨디 무어)가 그랬듯 반사회적인 소녀들은 결국 사랑에 구원 받으며 의 ‘미아’(앤 해서웨이)는 안경을 벗고 공주가 된다. 그 외에도 등 여자 너드의 메이크오버 스토리는 지겨울 만큼 차고 넘친다. 여자 너드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존재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어쩌면 여자와 너드 DNA는 별개라고 의심하는 건지도 모른다. 전 세계 너드들이 치밀한 수사를 펼치고 있는 ‘Fake Geek Girl’ 논란을 보라.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남자들로부터 주의를 끌기 위해 비디오게임이나 만화책과 같은 주제에 관심을 표명하는 여성을 비꼬는 용어’란다. ‘Fake Geek’을 검색하면 결과가 없다고 나오지만 ‘Fake Geek Girl’을 넣으면 관련 기사, 하물며 논문까지 등장한다. 너드가 새로운 힙스터로 떠오른 이후 성급히 너드이고 싶어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나 이건 남녀불문 해당되는 얘기 아니었나? 만화가 스콧 스나이더의 뒤 표지에 실린 일러스트는 너드 세계가 여성에게 얼마나 적대적인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스타워즈 로고 티셔츠를 입고 “난 매일 페이스북에서 롤캣(짤방, Lolcat)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 그러니까 난 엄청난 괴짜야!”라고 말하고 있는 소녀. 그림의 제목은 ‘사기꾼: 너드 역사상 가장 강력한 빌런(적, Villains)’이다. 더욱 충격적인 건 적지 않은 만화가들, 즉 남자 너드들이 이 게시물을 리포스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믹스 업계가 여자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 것이 무척 흥분된다! 여자들은 모두 위선적이다!” 같은 지지를 덧붙여가며.‘이런 멍청한 짓거리를 봤나.’ 이건 미국의 웹매거진 의 ‘왜 가짜 괴짜 소녀들의 밈(Meme)이 타도의 대상이 되었나’에서 나온 얘기다. 더불어 이 전쟁이 남자 너드들의 얄팍한 우월의식에서 비롯됐다며 짧은 카툰을 함께 공개했다. 컨버스 척 테일러 모델을 신고 있는 남자 너드가 배트맨 티셔츠를 입은 여자에게 쏘아 묻는다. “배트맨 코믹북을 읽어본 적은 있어?” 여자는 그저 로고가 좋을 뿐이라고 답하면서 반문한다. “넌 척 테일러가 누군지는 알아? 아니, 농구 경기를 하기는 해?” 이제 막 너드 세계에 입문한 몇몇 여자들이 너드 문화를 피상적으로 즐긴다고 비아냥대는 그들 역시 다른 문화권에선 마찬가지란 얘기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유튜버 알빈 원더랜드는 이 논란을 한 방에 정리했다. “가짜 괴짜 소년이 없다면, 가짜 괴짜 소녀 역시 존재하지 않아요! 좀 다르고 사회가 괴짜라고 규정 지은 카테고리 안의 문화를 좋아하는 것뿐이에요. 왜 여자도 너드 문화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거죠?”그렇다. 놀랍게도 세상엔 여자 너드들이 존재한다! 남자 너드들과 똑같이 집착적인 외골수이며 트렌디하진 않으나 대체 불가능한 여자들 말이다. 미드 의 작가이자 배우인 민디 캘링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보라. 너드였던 자신의 학창 시절을 투영해 만든 는 현재 다섯 시즌째 방영 중이고 전혀 모델 같지 않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또 다른 여자 너드, 소설가 마가렛 앳우드의 만화 역시 괴짜였던 본인의 학창 시절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 작품을 출판한 홉 니콜슨은 기획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괴짜들을 위한 데이트 정보나 조언에 관한 기사를 볼 때마다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그 흥분은 곧 실망이 됐는데 언제나 남자 괴짜들만을 위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킥스타터에서 크라우드 펀딩 형식으로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수많은 여자 너드들의 갈증을 해소시키면서 목표 모금액을 세 배 이상 넘긴 상태다.이쯤에서 여자 너드에 관한 마크 저커버그의 생각을 소개해도 좋을 것 같다. 한 여자가 그에게 “딸에게 너드와 데이트하라고 말해줬어요! 그 너드가 언젠가 당신처럼 될지도 모르니까요.”라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그에 대한 마크 저커버그의 답. “그보단 딸이 너드가 되는 게 더 좋지 않겠어요? 우리에겐 더욱 많은 여자 너드가 필요해요!” 그 말에 ‘좋아요’를 누르며 한 구절을 추가하고 싶다. 우리에겐 더욱 많은 여자 너드, 그리고 여자 너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