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미식 총정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유난히 먹는 것에 사활을 걸었던 2016년. 냄비처럼 훅 달아올랐던 미식 공화국을 떠올리며 그냥 지나쳤을 법한 몇 가지 키워드에 대해 생각해봤다. | 미식,로봇,채식,다이닝,미쉐린 가이드

채식 다이닝이란 신세계육식주의자들이 탐탁지 않아 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일부 레스토랑에서 메뉴 전체를 베지테리언을 위한 요리로 구성하거나 점차적으로 그 비율을 늘려가고 있는 것. 게다가 한 해 트렌드를 미리 조망하는 책에선 신념보다도 트렌드로서 융통성 있게 풀을 뜯는 ‘플렉시테리언’의 급증을 예상한다. 알랭 뒤카스, 알랭 파사르 등 유명 셰프들의 지속적인 채소 예찬론에 이어 얼마 전 노마의 남자, 르네 레드제피 셰프도 베지테리언 레스토랑으로 다음번 ‘다이닝 모험’을 감행하겠다고 선언했다. 버려진 창고를 개조해 팜투 테이블 형태의 레스토랑을 2017년에 선보일 계획이라고. 국내에서도 셰프들이 바쁜 틈을 비집고 ‘식재료 채집 여행’을 떠나고 있다. 요리사들의 커뮤니티인 ‘븟’을 주축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명 ‘리스(L.I.S.S-Local, Ingredient, Seasonal, Simple) 여행’. 얼마 전 ‘리스 여행’을 다녀온 ‘7PM’ 김태윤 셰프는 남양주 ‘준혁이네 농장’에서 수확한 청겨자, 쑥갓, 당귀 등의 쌈채소를 이용한 쿠킹 클래스를 열었다. 사실 채식은 사찰음식이라는 우리나라 고유의 식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는 에도 등장할 만큼 평소 사찰음식에 조예가 깊은 스님과 긴밀히 교류해왔다. 그로부터 영감 받아 만든 것 중엔 말린 나물과 버섯을 넣은 ‘사찰식 라비올리’ 위에 채소와 과일로 발효시킨 육수를 부은 요리도 있다. 서울에서도 ‘살코기와 생선 살’이 아닌 ‘뿌리와 이파리’ 사이에서 메인 요리를 선택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사후 대책미쉐린의 뚜껑이 마침내 열렸다. 서울에서 총 24곳의 레스토랑이 별을 달았고 그 개수의 타당성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설왕설래 중이다. 단, 별의 개수는 확실히 영향력이 강했다. 발표 다음 날 별 2개를 받은 식당에 전화했으나 10번 중 단 한 번도 연결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결국 이 빨간책은 외국인을 위한 가이드 아니었던가? 국내 레스토랑의 예약 시스템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얼마 전 런던 미식 투어를 떠났을 때 오직 레스토랑의 자체적 사이트나 예약 대행 사이트, 이메일로만 예약한 경험이 있다. 일본 역시 최근 음식업계 인터넷 예약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온라인 예약 대장 서비스인 ‘토레타’는 오픈 2년 반 만에 음식점 7천 곳을 유치했다. 토레타는 예약 접수뿐만 아니라 고객 관리와 테이블 관리도 겸한다. 또한 일본의 레스토랑은 외국어로 접객을 서포트하는 서비스 툴 ‘패롯’을 도입해 영어 울렁증이 있는 직원들을 북돋우고 있다. 별 개수보다 중요한 건 내년에도 그 별을 지켜내는 것 아닐까?햄버거의 호시절햄버거는 억울하다. 그간 패스트푸드라는 굴레 아래 저렴하고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으로 홀대 받아온 게 사실. 누군가에게 버거는 ‘45초’ 만에 만들어 ‘17분 30초’ 안에 배달해야 하는 심장 떨리는 미션이기도. 그런데 단군 이래 햄버거를 먹겠다고 이토록 길고 오랜 시간의 줄을 서본 적이 있던가? 그것도 폭염 아래에서. 뉴욕의 명물 쉑쉑버거가 강남에 상륙했던 지난여름 벌어진 일이다. 파인, 오가닉 등 햄버거와 상극처럼 느껴지던 수식어가 착착 달라붙고 있다. 고급 햄버거 붐의 과열 현상은 우리보다 일본에서 먼저 일어났다. 2015년 뉴욕에서 온 오가닉 버거 ‘베어 버거’가, 2016년에는 플로리다에서 온 ‘칼스 주니어’도 버거 전쟁에 합세했다. 우리보다 일 년 먼저 쉑쉑이란 ‘신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에는 이번 겨울 L.A.의 우마미 버거도 오픈할 예정. 요즘 일본이든 우리나라든 ‘파인 버거’를 먹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것은 필수 과정이다.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불편을 감수한다. 되려 SNS에 사진을 올리며 그 순간을 자랑하고 즐기는 걸 보니 지금이야말로 버거의 호시절이다.#요리계_내_여성 셰프들2016년 ‘월드 베스트 50 레스토랑’에서 영예의 1위는 이탈리아에 있는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에게 돌아갔다. 대륙별로 선정한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는 밍글스(15위), 정식당(22위), 신라호텔 라연(50위)이 이름을 올렸다. ‘미식계의 오스카’라 불리는 이 행사는 매해 ‘세계 최고의 여성 셰프’를 선정해오고 있다. 올해는 샌프란시스코 ‘아틀리에 크렌’의 도미니크 크렌(Dominique Crenn) 셰프에게 영광이 돌아갔다. 그녀는 수상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광이긴 한데 왜 남자 셰프에게는 상을 안 주나?(웃음) 아직까지도 요리계에 젠더 갭(Gender Gap)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 해도 2년 안에 이런 ‘여성 셰프 어워드’는 없어졌으면 한다. ‘셰프 어워드’란 타이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내 요리계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셰프들이 있다. 7년 동안 서래마을의 터줏대감이었던 ‘더 그린 테이블’의 김은희 셰프가 얼마 전 신사동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메뉴로 단장했다. 한남동 ‘봄봄’에서 묵묵히 요리해오던 임도경 세프 역시 8년 만에 활동 반경을 넓혀 성수동에 ‘살로토 봄봄’을 오픈했다. 그가 책임져왔던 기존의 좌석 수 18개에 96석이 더해졌다. 셰프는 아니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광화문에 모던한 한식 주점을 오픈하고, 실력 있는 젊은 셰프와 팝업 레스토랑을 기획하는 등 외식 업계에서 진보적인 행보를 이어오고 있는 ‘월향’ ‘문샤인’의 이여영 대표 역시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주방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로봇은 우리의 적인가 조력자인가? 세계 곳곳의 레스토랑에서 인간을 대신해 ‘열일’하고 있는 신인류의 출현이 반갑다가도 내심 불안하다. 지난 9월 싱가포르에 등장한 키 1백50cm 루시와 메리는 앞치마와 스카프를 두르고 열심히 음식을 날랐다. 로봇 웨이트리스는 병가나 휴식 기간이 전혀 필요 없고 무거운 음식을 거뜬히 나르며 심지어 생일 축가도 부를 줄 안다. 그러나 2천만원에 육박하는 이들의 몸값과 답답증을 유발하는 ‘거북이 속도’라는 약점도 있으니 걱정하기엔 이르다. 오히려 요즘 부쩍 눈에 띄는 키오스크가 인간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책 에 따르면 “키오스크는 식당 운영에 필요한 총 종업원의 20~25%를 줄일 수 있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셰프들이 3D프린터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난여름 영국 런던에 ‘3D프린팅 팝업 레스토랑’이 반짝 오픈했다. 미쉐린 스타 셰프들 역시 훨씬 섬세하고 정교한 플레이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기계를 선망한다. 복잡한 디자인의 요리를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 영국에 나타난 주방용 로봇 ‘몰리’ 역시 비슷한 이유로 여성들에게 사랑 받을지도 모르겠다. 몰리는 양손에 도구를 집고 채소 썰기, 육수 끓이기 등 자유자재로 요리한다. 여성의 노동집약적 요리의 결정판인 김장철에 ‘로봇 팔’의 활약이 빛날 듯! 단, 몰리가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두 유 노 김치?”영 제너레이션의 생존법요리사야말로 21세기를 사는 지극히 노마드적인 종족이다. 가게 없이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에 나가 샌드위치를 팔고(지금은 망원동에 이탈리아 작은 마을에 있을 법한 ‘미아논나’라는 매장으로 자리해 있다.) 몸담고 있던 레스토랑을 퇴사한 후 덴마크로 미식 기행을 떠나며(‘앤드 다이닝 프로젝트’를 끝마친 장진모 셰프는 현재 새로운 매장을 준비 중에 있다.) 서울의 크고 작은 미술관을 돌아다니면서 그림 같은 요리로 케이터링을 풀어낸다.(‘홈그라운드’도 올해 회기역 주변 작은 작업실에 안착했다.)젊은 요리사들은 영리하게도 일종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거친 후 본 방송에 임한다. 그것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팝업 레스토랑 아닐지? 이준 셰프가 ‘준더파스타’를 거쳐 지금의 ‘스와니예’가 된 것처럼. 두 요리사가 이끄는 팝업 비스트로 ‘므슈’도 올여름 합정에서의 첫 번째 테스트를 마친 후 ‘시즌 2’를 준비 중이다. 셰프들의 이러한 시도는 큰 자본이 필요한 본격 오픈에 앞서 리스크를 줄여가며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일종의 모의시험으로 읽힌다. 그런가 하면 ‘최저임금 1만원, 하루 8시간 근무, 주 5일제, 한 달 휴가 보장’이란 이상적 삶을 꿈꾸며 여러 명이 함께 만든 ‘협동조합 달고나’라는 새로운 형태의 식당도 등장했다. 또한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유명 레스토랑에서 탄탄한 경험을 쌓아 배짱 있게 독립한 젊은 셰프들도 눈에 띈다. 한남동 오만지아와 청담동 파스토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그라노 출신의 셰프들이 각각 올해 오픈한 곳으로 예약은 필수다. 프렌치 레스토랑 줄라이에서 오랜 시간 내공을 쌓아온 소믈리에가 오픈한 라모라 역시 새롭게 부상한 올해의 핫 플레이스.파인 다이닝도 배달이 되나요?역으로 생각하는 게 빠를 것 같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배달이 불가능한 음식이 뭐가 있나? 뵈프 부르기뇽, 양갈비 스테이크, 감바스 알 아히요? 푸드 테크 벤처 기업 ‘셰프온’에서 지난 11월 오픈한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제 집에서 편하게 파인 다이닝을 즐겨보세요.”라며 셰프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앞서 언급한 세계 각국의 요리를 집에서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것. 배달의 세계는 팽창과 과열을 넘어 보다 고급스럽게 진화 중이다.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음식 배달 기업 딜리버루는 2016년 약 1천9백억원 매출을 예상하는 이 분야의 선두주자다. 이들은 배달 음식에 콧방귀 뀔 법한 프랑스에서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에 등재된 고급 식당의 3~5개로 구성된 코스 요리를 30분 안에 배달해주니 콧대 높은 프렌치도 마음을 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