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를 먹기 위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일 년을 기다렸다. 말리지 않은 생아귀를 쪄서 간장에 슬쩍 찍어 먹거나 잘 말려 꾸들꾸들해진 아귀를 양념 맵게 풀어서 요리해 먹거나, 이 계절엔 아귀다. | 박찬일,아귀,생아귀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으니, ‘비린 것’을 내가 다 알 리 없다. 실제로 게가 옆으로 걷는 걸 바닷가에서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마치 내 인생 같았다. 옆으로 슬금슬금 눈치나 보면서 말이지. 툭하면 술자리에서 “에헴, 모름지기 요리사란 보통 노동자가 아니라 예술적 안목과 프로다운 성실성 어쩌구” 떠들고는 정작 나는 다음 날 숙취에 머리 쥐어뜯으며 요리를 하는 둥 마는 둥 한 날이 또 기하이던가 말이다. 내 친구 얘기를 보태지 않을 수 없다. 여름에 비쩍 마른 고등어를 보고 “야, 꽁치가 살이 잘 올랐네.”이러질 않나,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멸치를 보고는 “꽁치가 왜 이리 말랐어?”이랬던 녀석이 있었다. 그 친구가 노량진에서 점성어를 먹고 “역시 여름에는 민어야.” 했다는 게 친구 사이에서 전설로 통한다. 그때부터 그 친구 별명이 점성어다. 진짜다. 명지고 84년 졸업 아무개 경택이. 나도 경택이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치랑 오징어, 무늬오징어, 갑오징어를 구별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며 육젓이 돼지고기에 딱 어울려서 육젓이 아니라 유월에 담가서 그렇다는 것도 사회생활을 해서야 알았다. 이렇게 어수룩한 사람도 좀 있어야 먹고사는 상인도 있는 법이다. 어디 가서 아는 척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내 다른 친구는 일부러 귀한 손님 왔다고 청어과메기 내놓은 술집에서 상태 나쁜 꽁치를 줬다고 길길이 뛰었다. 엇따대구 맛이 간 과메기를 주고 이러는 거야, 사람 뭘로 보고, 대충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무슨 말씀인가 하실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청어과메기는 흔하지 않고 말리기도 좀 어려운 귀품이다. 본디 과메기는 청어가 원조라고도 한다. 주인이 손님 대접 제대로 했다가 뺨 맞을 뻔한 셈이다. 귀품도 알아주는 이가 있어야 귀품이다. 개 발에 편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비린 것 말고도 내가 저지른 실수, 하나 더 있다. 아무개 호텔에서 프랑스의 미슐랭 별이라는 요리사를 초빙해서 행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가 ‘관계자’ 간담회 비슷한 걸 한다고 나를 불렀다. 손님으로 말이다. 메인 요리가 나왔는데, 불그죽죽하고 손바닥보다 작은 고기가 나왔다. 비공식 간담회라 메뉴도 알려주지 않았고, 서비스 요원도 프랑스 요리사에게서 아무 말도 들은 게 없는지, 그릇만 날라주고는 말았다. 내 옆에 앉은 기자가 내게 물었다. 이게 무슨 고기예요? 보니, 색깔은 붉은데 소고기 모양은 아니었다. 그러면 양고기겠지. 크기는 양의 등심에 딱 맞았다. 그래서 “양 등심이네요.” 이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리 가슴살이라지 않은가. 굳이 변명을 하자면, 우선은 양 등심이랑 형태가 아주 비슷했다. 가슴살이면 양끝이 뾰족한 데, 그쪽을 잘라내고 구웠던 것이다. 껍질이라도 붙어 있었으면 실수를 안 했을 텐데, 왜 맛있는 껍질을 홀랑 벗겨 구워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추리하건대 냉동 가슴살이 아니었을까. 냉동하면 가슴살이 바삭하게 구워지지 않아 아예 껍질을 벗기기도 하니까. 하여튼 그 개망신이 얼마나 셌던지,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앞으로 내 별명은 양 등심이라고 불러주세요. 점성어와 양 등심이 한번 만나서 술을 마시면 술집 주인들이 아주 좋아하겠다. 이렇게 긴 사설을 먼저 한 까닭이 있다. 내 인생 최대의 실수 아귀 때문이다. 마산 하면 아귀다. 물론 요새는 별로 잡히지도 않고 값도 비싸다. 마산 시장에 있더라도 마산 앞바다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어느 사보 기자들과 취재팀을 꾸려서 마산에 갔다. 롯데 야구선수들이 부산 팬들보다 열 배쯤 무서워한다는 마산아재들이 있는 곳이었다. 야구장은 못 가보고 통술집이라는 데서 한잔 거하게 마셨다. 통술집이 뭐나면, 한 상에 얼마씩, 1인당 얼마씩 돈을 맞춰내면 알아서 음식이 줄줄이 나오는 방식이다. 통영의 다찌집의 ‘연속 증정식 상차림’이나 전주막걸릿집의 ‘상다리 부러져라 상차림’ 같은 거다. 미묘하게 다른 건, 다찌집과 전주막걸릿집이 술을 더 시키면 또 다른 음식이 나온다는 점이고, 통술집은 그냥 값을 팍 매기고 그걸 내면 주인이 그날 술상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롯데의 강타자 이대호와 강민호가 무서워서 벌벌 떨었던 마산아재의 고향다운 술상 방식이 아닌가.(확인은 못했는데, 롯데 선수들의 마산구장 타율이 사직구장보다 더 높다고 한다. ‘쌔리지 않으면’ 아재들한테 ‘쌔림’을 당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그렇게 술을 퍼마시고, 다음 날 취재를 나갔다. 사보 기자들이 미리 섭외해놓은 어떤 건물에 갔다. 식당에는 안 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통술집의 술과 안주에 ‘쌔림’을 당한 나는 띵한 머리에 기자들 꽁무니를 따랐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옥상에 웬 대구가 쫙 펄쳐서서 덕장이 있는 게 아닌가. 명태라고 하기에는 크기가 크니 당연히 대구였다. 마산은 게다가 대구가 원래 유명하다. 그래서 이렇게 전문가로서 한마디 했다. 멘트를 날려야 하는 게 전문가의 숙명이다. “허, 대구가 바닷바람 아주 제대로 맞는 덕장이구만. 어허! 좋다.” 기자들이 내 얼굴을 빤히 보았는데, 아침을 안 먹었으니 얼굴에 밥풀이 붙을 일도 없었다. 그리고는 1층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사보 기자가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옥상 아귀 덕장 아주 멋있네요. 촬영은 조금 있다 하고 일단 요리부터 찍을게요.”나는 그날 아귀찜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가는지 몰랐다. 나라 잃은 사람의 표정이 그랬을 것이다. 취재 마치고 차로 모시겠다는 그들을 두고 나는 기어이 고속버스를 탔다. 아아 씨바, 아귀 떼들은 콩나물하고 고스톱이나 치고 있지 왜 덕장에 걸려 있는 거야. 그 빌어먹을 아귀놈들. 마산(요새는 창원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마산을 마산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맛이 안 산다) 아귀찜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수육을 쳐준다. 복어를 유달리 좋아하는 동네가 마산이다. 복어처럼 담백하게 삶아 먹는 식으로 그냥 삶아서 먹는다. 이건 말리지 않은 생아귀를 쓴다. 내장을 그대로 섞어주기 때문에 선도가 중요하다. 수입 아귀가 참 많은데, 숙회는 거짓말을 못한다. 수입은 내장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귀 간이 빠졌다면 주인아저씨가 몰래 먹은 거다. 아귀 내장은 두 가지가 맛있다. 간과 위다. 간은 푸아그라 저리 가라 한다는 그 귀물이다. 쪄낸 걸 간장에 슬쩍 찍어 먹는다. 위장은 오늘의 아귀를 만든 주인이다. 무슨 고기 위장이 돼지 오소리감투 같다. 두껍고 질깃질깃하다. 원래 아귀는 눈이 나쁘다. 심해어다. 그래서 입을 벌리고 바닷속을 유영하면서 입에 들어온 걸 다 처먹는다. 오죽하면 이름이 아귀(餓鬼)이겠는가. 아귀는 불교에서 죄가 많으면 지옥에서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아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악순환의 벌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먹은 걸 소화시키려니 위장이 튼튼하기 이를 데 없다. 큰 아귀 배를 가르면 간혹 다른 아귀가 한 마리 들어 있기도 하다. 숙회 다음으로는 말린 것이라야 진짜 아귀 대접을 받는다. 잘 말려서 꾸들꾸들해지면 양념 맵게 풀어서 요리한다. 전분 풀고 이것저것 넣고 만든 아귀찜이 아니라 콩나물 정도만 넣어서 찜으로 낸다. 콩나물이 아주 제대로다. 콩나물은 물이 좋아야 맛있다는 건 정설이다. 이건 확실하다. 숙주랑 헷갈린 게 아니다. 콩나물공장을 제대로 취재했다. 콩나물이 먹는 건 오직 물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물맛이 콩나물 맛이다. “물 좋은 마산의 명물 무학소주”라는 광고 들어보셨는지. 일제강점기에 일본놈들이 마산에 양조장을 집중적으로 만들었다. 물이 좋으니까, 술맛의 반은 먹고들어가니까 그랬으리라.(항구라 물동이 좋은 것도 한몫했겠지만.)요샌 마산아귀찜도 전국적 유행처럼 전분 소스가 흔해졌다고 한다. 관광객이 그런 걸 찾으니 그리 내주는 모양이다. 마산에 가면 아귀찜집이 수백 개다. 오동동에 있는 원조라는 집은 아예 ‘진짜 원조’가 들어간다. 진짜원조시조태조할매집이다. 동치미도 진짜배기로 내주는데, 사카린과 빙초산으로 만든 가짜 동치미가 아니다. 가게가 낡아서인지 위생도 좀 그랬고 별로 밝아 보이지 않았다는 기억이 남는다. 아귀는 한국만 먹는 줄 아는데,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도 즐긴다. 즐긴다, 는 표현은 좀 틀리다. 흔하지 않아서 많이 먹지는 않는다. 그 유명한 부야베스(먹어보면 맛이 그냥 그래서 유명하기도 하다)에 들어가기도 한다. 아귀는 살점보다 찐득한 지느러미와 이것저것 잡 부위를 쪽쪽 빨아 먹는 맛인데, 등에 있는 살점만 도려내어 쓴다. 가시 있는 부위를 상에 내지 않는 그 동네 요리 방식이 그렇기도 한다. 아귀 등에 보면 묵직한 등심이 두 줄 나온다. 이것만 발라내어 쓴다. 물론 다른 부위를 버리는 건 아니다. 채소 넣고 화이트와인 쳐서 푹 삶은 후 소스를 만든다. 맛은 뭐, 아무래도 콩나물 넣고 만든 찜만 하겠는가. 우리는 한국인이니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