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집, 코우니스 코티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갈망과 취향에서 싹틔운 컬렉션의 여정은 불현듯 어떤 놀라움을 만들어낸다. 빈티지 가구 컬렉터 서동희의 아파트먼트 쇼룸 ‘카우니스 코티’에서 그 소리 없는 놀라움의 면면을 만날 수 있다. | 카우니스 코티,빈티지 가구,가구,서동희

아르네 야콥센의 폴딩 테이블과 모스키토 체어 위로 폴 헤닝센의 1950년대 플레이트 램프가 걸려 있는 풍경빈티지 가구를 쓰고 있다. 혼자 살 적에 월급을 모아 산 서랍장을 시작으로, 결혼과 함께 들여놓은 사이드보드와 식탁, 몇 개의 의자는 TV를 포기한 거실의 중심이 되었다. 정작 집에 놀러온 지인들이 TV와 푹신한 소파가 없는 공간을 낯설어했을 뿐, 음악과 이야기, 은은한 조명 빛으로 채워진 저녁 시간을 만끽하며 지내온 지 5년째가 된다. 오래된 나무의 결을 따라 이따금 오일을 발라주어야 하고, 물기나 얼룩의 방지를 위해 매번 코스터와 테이블 매트를 갖춰야 하는 번거로움도 애정으로 상쇄하며 살아왔건만, 얼마 전 문득 까닭 모를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과연 덴마크나 독일에서 사용되던 오래된 가구들이 서울의 아파트 라이프에서도 가장 탁월한 것일까? 거실 한 벽을 차지하고 있는 너비 2미터짜리 사이드보드는 정말 평생 써야 할 정도로 육중해 보였다. 빈티지 가구를 고집했던 당시의 명분을 떠올리느라 애써 5년 전의 내 마음을 되살려보기도 했다. 다행인 건, 그 의구심이 후회가 가져온 고민이 아니라 불현듯 찾아온 내 생활방식에 대한 재고의 기회라는 거였다.빈티지 가구 컬렉터 서동희가 자신의 아파트에 ‘카우니스 코티’라는 쇼룸을 오픈한다고 했을 때, 어쩌면 그에게도 같은 고민이 거쳐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만남을 청했다. 그의 아름다운 컬렉션이 궁금했음은 물론이다. 수년간 독일과 핀란드, 일본과 프랑스를 돌아다니며 찬찬히 수집한 의자와 테이블, 램프와 사이드보드가 한데 어우러진 공간은 광진구의 17년 된 아파트였다. “쇼룸이나 매장처럼 스타일링되어 있는 곳에서는 참 예뻐 보이지만 막상 가구를 집에 들여놨을 때 어울리지 못하고 어색하게 보이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거예요. 사실 우리나라 집들은 천고가 낮아서 빈티지 가구를 들일 때 밸런스나 비율을 잘 고려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세일즈하는 입장에서는 대부분 디자이너 명성이나 디자인적인 의미만을 강조하죠. 저도 초창기에 꽤 많은 구매 실수를 겪었어요. 요즘은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하니까 이런 현실적인 공간에 어떤 규모의 가구가 적당하고 어떤 스타일링이 좋은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가 쇼룸으로서 가장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죠.”오래된 아파트의 베란다 너머로 성수동의 주택가가 정겨운 마을 풍경처럼 오밀조밀하게 내려다보였다. 그 풍경이 마음에 들어 단박에 결정했다는 그는 아파트 구조의 군더더기를 걷어낸 뒤 공간을 구획하는 가벽과 하얀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하고 집 전체에 화이트 벽지를 발라 천고 2백30cm 남짓한 30평 아파트를 핀란드 어딘가의 소박하고 우아한 빌라처럼 만들어냈다. 방과 방, 그리고 거실, 주방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각각 다른 디자이너의 가구로 스타일링되어 저마다의 쓰임과 미감을 변주하고 있었다. 우린 녹색 패브릭이 인상적인 한스 베그너의 1950년대 라탄 데이 베드, 폴 키에르홀름(Poul Kjaerholm)의 PK22 체어와 시즈 브락만(Cees Braakman)의 간결한 사이드보드가 어우러진 거실에 앉아 있었다. “지금 이 집에 놓인 모든 것들은 현재의 제 마음을 사로잡은 디자인이라고 보시면 돼요. 제가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을 어떻게 믹스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하나하나 따로 모은 것들인데 다행히 서로 잘 어울리더라고요. 다른 소재를 믹스 매치하는 걸 좋아해서 이 공간도 패브릭, 대리석, 오래된 나무와 스틸을 함께 놓아봤어요.” 디자이너의 이름이 각인된, 오래도록 잘 쓰였을 충실한 가구 하나하나가 이곳에서는 서로 힘겨루기를 하지 않는다. 컬렉터를 사로잡은 저마다의 형태와 소재 그리고 섬세한 라인들이 공간 안에서 안정적인 ‘자기 자리’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이드보드 위에 놓인 바겐펠트의 유리병들을 회화처럼 드리우던 조명 빛이 노랗고 둥글게 모든 것을 감싸안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선택한 게 저 램프였어요.1950년대에 루넬(Lunel) 사에서 제작한 르네 마티유(Rene Mathieu)라는 디자이너의 조명이죠. 집을 스타일링할 땐 가장 먼저 램프를 결정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램프를 띄워서 전체적으로 빛이 떨어지는 느낌을 보고 그 아래로 가구들이 잔잔하게 깔리도록 말이죠. 프랑스나 이탈리아 조명 특유의 섬세하고 잘게 분사시키는 빛은 북유럽 조명하고는 견줄 수 없는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 어렵게 구한 한스 베그너의 1950년대 데이 베드에 앉은 서동희. 벽에 걸린 르네 마티유의 램프는 그가 요즘 유독 아끼는 아이템이다."집을 스타일링할 땐 가장 먼저 램프를 결정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램프를 띄워서 전체적으로 빛이 떨어지는 느낌을 보고 그 아래로 가구들이 잔잔하게 깔리도록 말이죠."그는 틈나는 대로 마음에 품은 가구를 찾으러 여행을 떠났고, 이따금 어렵게 찾아간 옛 건축가들의 공간에서 그들의 이상을 지탱하기 위해 손수 지어나간 삶의 아름다운 흔적을 만났다. 르 코르뷔지에, 아르네 야콥센, 핀 율, 미스 반 데어 로에를 따르던 견실한 여정 가운데 그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건 알바 알토였다. “건축을 하면서 동시에 가구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공간에 가보면 그 건축과 가구가 완벽하게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중에서도 알바 알토가 최고인 것 같아요. 디자인은 간결하지만 나무의 묵직함이 공간에 딱 들러붙어 어우러지는 느낌은 알바 알토 가구만 한 게 없죠. 그의 테이블 위에 오브제를 올리면 그 오브제가 더 빛나고, 그 위에 걸린 조명은 물론이고 앉아 있는 사람까지 더 우아하게 만들어요. 참 신비로운 것 같아요.” 그가 가장 공들여 모은 알바 알토의 가구가 가득한 작은 방으로 옮겨 앉았다. 1930년대 초 알바 알토가 요양원의 의뢰로 만든 파이미오(Paimio) 의자와 정겨운 티 트롤리, 식탁보다 나지막한 테이블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알바 알토는 유럽에서도 참 구하기가 힘든데, 여기 이것들은 아주 운 좋게 한꺼번에 구했어요. 핀란드의 아흔 넘은 어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아들이 유품을 정리하려고 내놓은 리스트에 이 아이템들이 있었던 거죠. 알바 알토를 좋아하셨던 할아버지가 40년이 넘도록 집 안에서 사용한 거라 컨디션도 아주 좋아요. 이 가구들이 저에게 온 모든 과정이 큰 선물 같았어요.” 길게 누운 오후의 햇살이 벽 선반의 곡선을 따라 그림자를 그리는 사이, 맞은편에선 아이너 알토(알바 알토의 아내)의 조명 빛을 머금은 트롤리 위의 새하얀 식기들이 하나의 정물화처럼 긴 고요와 조형적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래도록 시선을 붙드는 사물들의 정적 앞에서 각자의 집에는 사는 사람의 몸짓이 담겨 있다던 인도 건축가 발크리시나 도시의 말이 떠올랐다.카우니스 코티(Kaunis Koti)는 핀란드어로 ‘아름다운 집’을 뜻한다. 핀란드의 어느 숍 주인이 지금은 발행되지 않는 핀란드의 옛 리빙지 를 꺼내 보여주었을 때, 그 안에 담긴 소박하고 조화로운 삶의 그림들이 서동희의 감각을 일렁이게 했고 돌아오는 길에 ‘카우니스 코티’라는 예쁜 이름을 아로새겨두었다. “리빙이라는 건 보기에도 좋지만 생활에서 쓰인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에요. 도쿄에 가보면 집은 아주 작지만 각자의 정제된 미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최근엔 우리나라에도 리빙에 집중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런 집들을 소개하며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이라는 웹진을 준비 중이에요. 좋은 걸 혼자 하기보다는 나누면서 같이 하고 싶거든요.” 창밖이 어둑해지도록 긴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편안함과 자연스러운 감각은 이상하리만큼 완벽했다. ‘카우니스 코티’는 단순히 가구를 판매하는 쇼룸이 아니라 은밀하고 친밀하게 서로의 취향과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는 한 남자의 따스한 집이며, 그렇기 때문에 가장 특별한 ‘비정형의 장소’가 아닐까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에서 @KauNis_Koti를 통해 ‘카우니스 코티’에 관한 정보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