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 자연이 주는 혜택은 무한하다. 경이로운 힘을 품은 식물의 이로운 성분을 골라 담은 뷰티 제품은 그야말로 대표적인 수혜자. 40여 년 동안 천연 식물 추출물에 에센셜 오일을 담아낸 뷰티 브랜드 시슬리가 그 중심에 서 있다. 시슬리는 최상의 식물 성분을 얻기 위해 먼저 식물을 엄선하고 효과적인 추출을 위해 재배지, 수확 시기, 방법을 까다롭게 선택한다. 수익보다 신뢰를 줄 수 있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엄격하게 유지되고 있는 이러한 전통과 철학, 여기에 랑콤, 장 달브레, 올랑에 이어 시슬리까지 뷰티 업계에 일생을 바친 도르나노 가문의 우직한 열정이 더해져 지금의 시슬리가 완성됐다.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출간된 시슬리의 창립자 위베르 도르나노의 자서전 <무한한 아름다움>에는 이러한 가문과 브랜드의 사적인 스토리가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위베르의 아들이자 현재 시슬리의 수장을 맡고 있는 필립 도르나노 회장을 <바자>가 직접 만났다.
도르나노 가문은 뷰티 업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 특별한 여정은 언제부터였나? 외교관이자 정치에 참여했던 할아버지께서 향수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프랑수아 코티를 만나면서부터 도르나노 가문과 화장품 업계의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프랑수아 코티가 죽은 후 할아버지는 1935년 랑 코스메를 설립했고 후에 브랜드의 이름을 랑콤으로 바꾸었죠. 랑콤과는 별개로 아버지 위베르 도르나노와 큰아버지 미셸 도르나노는 장 달브레라는 향수 회사를 설립했고, 1950년대 초반 스킨케어 제품을 론칭하면서 올랑이 탄생한 거죠.
그렇게 키운 올랑이라는 브랜드는 프랑스에만 이미 7백 명 이상의 직원이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었다. 그런데 위베르 도르나노가 이를 매각하고 50세 나이에 새롭게 시슬리를 인수했는데 이런 모험을 시도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할아버지가 은퇴를 원했고 큰아버지 미셸은 정계에 남기를 바랐죠. 아버지는 누군가 올랑을 더 성장시켜줄 수 있도록 매각이라는 방법을 찾은 거죠. 그 후 1976년 시슬리를 인수했을 때 아버지는 소유의 개념보다는 미래 세대에게(후세대) 물려줄 전통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온 재산을 시슬리에 투자했고 19년간 수익의 전부를 다시 사업에 투자했죠.
시슬리의 창립자인 위베르 도르나노는 시슬리에 열정을 바쳤다. 그런 바쁜 일상에서도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하던데? 몇 대를 거쳐 온 가족이 뷰티 사업에 열정을 안고 살았지만 자서전의 반 이상이 도르나노 가문 이야기예요. 그만큼 우리 가족은 끈끈했고 그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매달려 자서전을 도왔죠. 아버지는 인생의 전부는 가족이고 가장 소중하다고 늘 강조했어요. 전통을 중시하는 이런 가문에 태어났다는 게 제겐 행운이죠.
가족들은 할머니(엘리자베스 미첼스카)에게서 정신적 위안을 얻었고 시슬리를 론칭하는 데 있어 어머니(이자벨 도르나노)의 역할도 컸다. 그 시대의 여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텐데.... 가족 경영을 하면서 남자와 여자가 다른 역할을 담당하거나 차별을 받았던 적은 없어요. 할머니는 당시에도 운전을 하며 시슬리의 첫 번째 세일즈로 본보기가 되었고 어머니는 탁월한 감성과 감각을 브랜드에 불어넣었죠. 여동생인 엘리자베스는 1990년대 시슬리의 초창기 모델로 활동했고 현재 시슬리의 부회장인 여동생 크리스틴 역시 시슬리를 멕시코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시키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어요. 뿐만 아니라 시슬리 직원의 80%는 여자예요. 여성을 존중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당연하게 여자들과 함께 일하는 환경이었으니까요.
가족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프로페셔널해야 한다는 것. 한때 무너졌던 도르나노 가문이 재건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죠. 다른 직원들과 관계를 정립하는 데 있어서도 이는 매우 중요해요. 또 열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일에 임해야 해요. 일터이지만 인간적인 면을 중시하죠. 시슬리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 가족이에요. 인간적인 환경에서 함께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죠. 그 안에서 동기부여를 얻고 목표를 갖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20년 이상 함께 일한 직원들이 많아요.
시슬리를 지금의 자리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가족 경영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비전을 세울 수 있다는 거예요. 언제까지 얼마의 수익을 내야 한다든가, 제품을 언제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등의 압박이나 한계가 없어요. 때문에 오직 화장품의 미래를 생각하며 목표를 세울 수 있었고 오랜 시간 고민하여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죠. 이는 최고의 품질을 갖춘 제품이 출히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브랜드의 성공은인내와 탁월한제품에 기반해야 해요. 그 믿음은 지금도변함이 없어요
오랜 시간 연구를 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데 있어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시슬리는 피토-코스메톨로지(식품 화장품학: 식물 추출물을 주성분으로 사용하는 화장품)를 기반으로 제품을 생산해요. 제대로 효능을 갖춘 텍스처를 담기 위해선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고 이는 시슬리가 하이엔드로 포지셔닝 된 이유예요. 주변의 반대에도 아버지는 수익을 위해 제품의 질을 낮출 수 없다고 주장했어요. 그 고집 덕분에 시슬리는 원하는 양질의 성분을 담아 최상의 포뮬러를 지닌 제품을 만들 수 있었던 거고요. 그 자유는 연구원들에게 지금까지 보장되고 있어요. 제대로 만든 제품만 있다면 성공은 보장될 수밖에 없죠! 다시 말하지만 시슬리는 시장성을 따져 돈을 벌기 위해 제품을 만들지 않아요. 다만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죠.
제품의 본질에 중심을 두는 건가? 그렇죠. 단언컨대 돈을 써야 한다면 제품의 효능(질)에 투자해요. 어떤 면에서 향수는 우아한 보틀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메이크업은 컬러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시슬리의 패키지는 화려하지 않고 심플해야 해요. 대신 보틀 안에 담긴 퀄리티를 늘 고민하죠.
시슬리라는 브랜드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인가? 피토 테라피를 기반으로 꾸준히 한 길을 고집하는 집념! 1976년 당시만 해도 식물 성분과 에센셜 오일을 추출해서 담는 피토-코스메톨로지는 미지의 분야였어요 시슬리는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시작했고, 유행을 따르기보다 가장 뛰어난 성분을 밝혀내는 데 집중했어요.
트렌드를 좇지 않는다는 건 1990년대 중반 뷰티 업계에서 유행했던 과일산 성분의 각질제거제를 너도나도 만들 때 피부에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제품을 만들지 않았던 일화와 일맥상통한다. 그 결과 판매에 타격을 입지 않았나? 타격을 입었어도 후회는 없죠. 시슬리는 유행이나 타사와의 경쟁을 생각하지 않는 브랜드이니까요. 단순히 유행을 쫓아 제품을 복사한다면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을까요? 혁신을 원한다면 더더욱 이 부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죠.
다른 브랜드에선 넘치고 넘치는 SPF 지수 50 이상을 가진 제품이 시슬리엔 없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SPF 지수가 50이 넘어도 이를 단독으로 사용하기보다 차단 효과가 있는 몇 개의 제품을 같이 사용하고, 한여름에는 여러 번 덧바르곤 하죠. 숱한 레이어링 과정을 피부가 견딜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제품에 SPF 지수를 높이거나 넣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SPF 지수를 넣은 제품을 만들면 단기적으로 수익이 올라가겠지만 시슬리가 원하는 목표는 그게 아닌걸요. 고집스럽게 철학을 지켜내고자 시슬리는 ‘올데이 올이어(한 번 바르면 8시간 이상 자외선을 차단하는 에이지 디펜스 기능을 갖춘 프로텍션 데이 로션)’를 론칭했고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렇게 제품으로 승부수를 걸었고 시간이 흘러 신뢰와 명성이 쌓이면서 타 브랜드나 제품과 비교되는 일이 없어졌어요.
식물을 원료로 하는 뷰티 브랜드인데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특정한 활동이 있다면 알려달라. 천연 추출물을 원료로 사용하는 데 있어 최대한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환경을 존중하는 게 먼저니까요. 기본적으로 공장에서 나오는 하수나 단열은 철저하게 관리를 하고요. 전기 생산을 위해 프랑스 북쪽에 1만8천 제곱미터의 큰 태양열 루프를 설치했고 몇몇 공장에는 1천5백에서 2천 그루 정도의 나무를 심었어요.
시슬리를 처음 써보는 사람에게 대표 제품을 추천한다면? 대표적인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시슬리는 방식을 판매해요. 시슬리를 찾아오는 사람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 시기에 딱 맞는 제품을 추천하는 거죠.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맞춤 조언을 해주는 게 시슬리의 목표예요. 그러니 추천 받는 사람이 어떤 피부 고민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추천 제품이 달라지겠죠?
그렇다면 시슬리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브랜드를 소개한다면? 제품의 효능에 포커스를 맞춘 브랜드. 효과가 없었다면 판매량이 나올 수 없었겠죠. 그리고 부작용이 없다는 점.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이유예요.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대체할 수 있는 가치는 아무것도 없어요. 마지막으로 리프레시를 위한 뷰티. 매일 바르는 화장품인데 바를 때 기분이 좋아지는 텍스처와 향을 겸비해야겠죠?
아름다움이란? 늙지 않을 순 없어요. 극단적인 치료나 시술의 힘을 빌리기보다 뷰티 제품을 통해 아름답게 나이를 먹어가는 것. 삶은 얼굴에 반영될 수밖에 없어요.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감에서 비롯되죠.
뷰티 브랜드를 새롭게 시작하는 후배에게 전하는 한마디? 언제 어디서든 좋은 제품은 통하게 되어 있어요. 단순히 돈이 벌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죠. 뷰티 업계를 사랑하고 고객들에게 무언가를 더 주기 위해 노력한다면 인정받는 날은 곧 찾아올 거예요. 그걸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