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LUCTANT MUSE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존 F. 케네디 주니어와의 비밀 결혼식은 캐롤린 베셋 케네디를 스타일 아이콘 자리에 올려놓았다.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칼럼니스트 대나 토마스가 아메리칸 아이콘으로서 그녀가 남긴 영원한 유산을 들여다본다. | Icon,캐롤린 베셋 케네디,존 F. 케네디 주니어,아이콘

20년 전 모든 젊은 여성들이 좌절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에서 가장 결혼하고 싶은 남자였던 존 F. 케네디 주니어가 코네티컷 주 그리니치 출신의 푸른 눈을 가진 아름답고 날씬한 금발의 30세 여성과 조지아 주 컴버랜드 섬에서 조촐한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기 때문이다.터키에서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존 F. 케네디 주니어는 뉴욕 트라이베카에 위치한 자신들의 아파트 건물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고 밖에서 진을 치고 있던 수많은 기자들과 즉흥적인 기자회견을 가졌다. 결혼식과 신혼여행에 관한 몇몇 질문이 오간 후 그는 기자들에게 “결혼은 저희들에게 커다란 변화이고 캐롤린과 같은 사적인 시민에게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가능한 한 그녀의 사생활을 지켜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파라치들은 그녀의 시어머니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에게 몇 십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캐롤린 베셋 케네디를 쫓아다니며 괴롭혔고 남편과 함께 걷거나 개를 산책시키는 모습 등 뉴욕에서의 일상이 담긴 지금의 아이코닉한 이미지들을 찍어댔다. 타블로이드가 그녀를 에워쌌으며 머지않아 그녀의 아버지가 정형외과 의사이며 어머니는 공립학교 교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졸업한 세인트 메리스 고등학교 졸업앨범에 그녀를 ‘궁극의 미인’이라고 묘사했다는 것과 보스턴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교사가 되는 것을 고려했다는 것, 그리고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이 총괄하고 있을 당시의 캘빈 클라인 홍보 부서에서 일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캘빈 클라인의 당시 부인이었던 켈리 클라인은 뉴욕의 한 모금 갈라에서 존 F. 케네디 주니어에게 캐롤린을 소개시켜주었다고 주장한다. “둘은 첫눈에 반해버렸어요.” 캘빈 클라인에서 캐롤린 베셋의 상사이자 지금은 패션 홍보회사 대표인 폴 윌못이 회상한다. “둘은 보자마자 서로 빠져들었어요.”미디어 역시 그녀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화려한 잡지들은 그녀의 긴 금발과 날렵한 눈썹부터 오늘날 사교계 잇 걸들이 여전히 고수하는 관능적이며 모던하고 차분한 패션 감각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아내고 분석했다. 인사 칼럼에서 캐롤린 베셋 케네디의 이름이 하루라도 언급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존 F. 케네디 주니어가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가 결혼하는 여자는 누구라도 사람들을 사로잡을 거예요. 게다가 캐롤린 베셋은 사진을 찍거나 인터뷰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더 흥미로웠어요. 제 생각엔 프레스와 거리를 유지하고 입을 여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우며 어디에서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존의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 같아요. 캐롤린은 카다시안들과는 정반대예요. 그녀의 거리감은 사람들에게 더 흥미로운 존재로 여겨졌어요. 만일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면 그건 아마도 상품이 되었을 거예요. 미국인들에게 그녀는 다이애나 비에 가장 가까운 존재였어요.” 당시 유명한 ‘페이지 식스’의 에디터였던 가십 칼럼니스트 리처드 존슨의 말이다.그리고 여전히 글로 담기 힘든 말이지만 그녀와 남편, 그리고 언니가 탄 경비행기가 메사추세츠 주 마서스 빈여드 근처의 대서양에 추락한 지 17년이 지난 후 캐롤린 베셋 케네디는 영원한 문화와 스타일 아이콘이 되었다. 잡지와 웹사이트는 정기적으로 ‘캐롤린 베셋처럼 옷 입기’라는 기사를 기재한다. 그녀의 스타일에 헌정하는 핀터레스트 페이지도 엄청나다.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디자이너인 나르시소 로드리게즈가 디자인한 새틴 슬립 형태의 바이어스 컷 결혼식 드레스는 신부들이 가장 원하는 룩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깔끔하게 뒤로 넘긴 플래티넘 금발의 포니테일과 레드 립스틱의 런웨이 모델들은? 바로 캐롤린 베셋 케네디다. 디자이너들은 종종 그녀를 뮤즈로 삼는다. 타이트한 스웨터와 펜슬 스커트에 매치한 끝이 뾰족한 힐의 데이타임 실루엣 혹은 티셔츠와 데님 차림에 끈 달린 샌들을 신은 쿨한 캐주얼 룩이 그렇다. 그녀의 이브닝 룩은 롱앤린 실루엣과 블랙 색상의 드레스로 보통 어깨를 드러내는데 정기적으로 파리, 뉴욕, 밀라노 그리고 런던 패션 위크 때 재활용된다.“캐롤린 베셋은 순수한 아메리칸 스타일의 정수를 담아냈다고 생각해요.” 파리에서 활동하는 호주 출신의 디자이너 마틴 그랜트의 말이다. 그는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이모인 리 라지윌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스키니 크롭트 팬츠와 짧은 스웨터는 그녀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롭게 만든 거예요. 그리고 보이프렌드 옷차림 역시 캐롤린이 심취해 있던 룩이고 주류로 만들었어요. 그녀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녔고 차분하게 아름답고 심플해요. 제 머릿속에 새겨진 것은 결혼식 드레스로 당시엔 매우 평범하지 않았으며 다이애나 비가 입었던 결혼식 드레스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디자인이었어요. 저는 다른 디자이너들처럼 그 드레스를 참고하고 재해석했어요. 저와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녀의 수많은 룩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거죠.”영화배우 로자먼드 파이크는 데이비드 핀처의 스릴러 영화 에서 맡은 ‘어메이징 에이미’ 역할을 준비하며 캐롤린 베셋 케네디에게 영감을 얻었다. 미국의 시트콤인 의 주인공인 캐롤라인 채닝은 캐롤린 베셋 케네디를 모델로 삼았다. “살짝 비꼬는 면이 있으면서 고급스럽고 세련되었으며 젊고 신선해요.” 시트콤의 트레이시 필드는 캐릭터에 대해 설명한다.“ 그녀가 손대는 모든 것은 부자가 되는 느낌을 갖고 있어요.” 조지 클루니의 스타일리시한 38세 부인인 아말 클루니가 지난해 컬럼비아 로스쿨에서의 강의를 위해 맨해튼으로 왔을 때 미국 는 ‘아말 클루니가 뉴욕의 새로운 캐롤린 베셋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당시 나는 의 기자로서 결혼 발표가 공개된 날 그녀에 대해 더 알아내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내가 알아낸 것은 다음과 같다.존 F. 케네디 주니어와 결혼하기 전 캐롤린 베셋은 유쾌하고 재미있는 여성이었고 팔리아멘트 담배를 피웠다. 그녀는 잘나가는 싱글이었으며 트렌디한 바에서 데이트하는 남자와 키스를 했고 터널(Tunnel)과 같은 다운타운의 나이트클럽에서 꼭두새벽까지 머물렀다. 그녀는 모두가 봐줄 만큼 섹시했다. 나의 모델 친구 중 한 명은 캘빈 클라인의 캐스팅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캐롤린 베셋을 만났다. “존재감이 엄청났어!” 친구가 내게 말했다. “스파이크 힐에 매우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어.” 그녀는 쇼핑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고 프라다와 바니스 뉴욕에 정기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매우 친절하고 똑똑하며 꽤 터프해요. 당연히 의견을 굽히지 않아요.” 브라운 대학을 함께 졸업한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친구들 중 한 명이 당시 내게 말해주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 맞설 거예요.”“그녀는 문화적인 어떤 것이든 매우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요. 예술이든 예능이든 상관없이요. 논쟁을 할 의지도 꽤 있어요.” 당시 전 남자친구의 말이다. “이게 뉴욕이 그녀에게 좋은 곳인 이유예요. 그녀에겐 경험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어요.”“매우 독립적인 여성이에요. 그리고 자신의 옷 입는 방법에 대해 매우 편하게 생각해요. 아름다움, 매력, 태도, 지성과 스타일, 이 모든 걸 한 사람한테서 찾기란 드문 일이죠.” 나르시소 로드리게즈가 내게 말했다.가장 중요한 건 그녀가 항상 유명세와 멀리 살았다는 것이다. 아무도 캐롤린 베셋이 누구였는지 혹은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캐롤린 베셋 케네디가 되자마자 전혀 다른 상황이 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케네디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에게 쏟아질 정밀조사의 수준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삶이 그와의 결혼으로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도요.” 그녀의 전 남자친구의 말이다. 존 F. 케네디 주니어는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사는 법을 알고 있었고 평생 동안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캐롤린 베셋 케네디는 그런 삶이 낯설었고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다. 캘빈 클라인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그녀는 모금 활동을 조금씩 했으며 그 중에는 리 라지윌이 후원하는 파슨스 댄스 컴퍼니와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반려동물 단체 중 하나인 시립미술협회가 포함되었다. 남편과 함께 그녀는 휘트니 뮤지엄 갈라, 백악관 연례 만찬과 영국 수상인 토니 블레어를 위한 백악관 공식 만찬 같은 격식 있는 행사에도 참석했으며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정치적인 잡지인 의 비공식적인 홍보대사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제가 조지의 여자예요.”라고 소개하곤 했다.캐롤린 베셋 케네디는 항상 특별해 보였는데 종종 요지 야마모토의 시크한 테일러드 수트를 입었으며 디자이너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그녀는 걸어다니는 창조물이에요. 취향과 기품을 갖고 있는 여성이에요.” 요지 야마모토는 당시 에 그렇게 전했다. 존 F. 케네디 주니어는 그녀의 공적인 성공을 뿌듯해했으며 그녀를 무척 아꼈다. 밀라노에서 열린 패션 업계 만찬에서 그는 게스트들에게 “35년 전 제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파리를 방문했을 때 썼던 것과 똑같은 문구를 사용하겠습니다. 저는 존 케네디이고 밀라노에 캐롤린 베셋과 동행한 남자입니다. 그녀가 제 부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립니다.”하지만 머지 않아 캐롤린 베셋 케네디는 유명인의 섬광 속에서 약해지고 있었다. 제네바에서 열린 까르띠에 행사를 취재하던 사진가들이 전통적인 파티 사진을 찍기 위해 두 사람에게 다가갔을 때 그녀는 테이블 아래로 숨었으며 그들이 떠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뉴욕으로 돌아와 그녀는 바깥 세상과 점점 거리를 두었다. 그녀가 선택하는 의상들은 몸을 감싸는 갑옷처럼 되었다. 사진이 찍힐 때는 다이애나 비처럼 종종 아래를 응시했으며 미소 짓는 일이 드물었다. 놀랄 정도로 살이 빠졌으며 단 한 번도 인터뷰를 한 적이 없었다. 잡지를 위해 포즈를 취한 적도 결코 없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그녀가 무척이나 힘들어 했고 존 케네디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는 등 결혼생활에 관한 불화와 코카인 중독에 관한 보도가 있었다.그리고 캐롤린 베셋 케네디는 그녀가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만큼이나 빨리 사라졌다. 33세의 나이에. 결혼한 지 1천 일이 채 지나지 않았으며 슬프게도 시아버지의 대통령 임기만큼 짧았다. “존은 오늘날 대통령 후보에 오를 나이가 되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쯤이면 무언가를 위한 선거운동을 했을 거예요. 그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며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지를 알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50세의 캐롤린은? 오직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