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텔란의 유머에 경의를!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돌아왔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카텔란의 전시 풍경을 전한다. | 마우리치오 카텔란,전시회

간혹 전시장에서 목구멍에 돌덩어리가 걸린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요지경에 힘든 일 천지인 세상인데, 힐링하려 찾은 전시장에는 현실보다 더한 현실을 낱낱이 보여주는 작품들이 가득하다.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유머와 사랑, 정겨움을 느껴본 적이 언제던가. 그런 면에서 201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의 고별 전시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던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5년 만의 귀환은 박수를 치고 싶을 만큼 반가운 소식이다. 더구나 그 스스로 ‘포스트 레퀴엠’이라 칭하고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만을 골라 배치했다니 카텔란이 무엇을 보여주려나, 마음이 풍선처럼 방실 부풀어 오른다. 카텔란의 세계로 입장하는 계단참에서부터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티라미슈’라는 더할 나위 없이 이탈리아적인 이름을 가진 말 한 마리가 공중에 떠 있는 작품 ‘노베센토(Novecento)’는 온갖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카텔란 월드의 상징처럼 관람객을 맞는다. “어머, 저게 왜 저기 매달려 있대?” 소리가 절로 나오는 공중부양과 더불어 교수형에 처해진 듯 벽에 매달린 형상은 카텔란의 장기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전시장에는 벽을 뚫고 뛰어오르는 바람에 목 아래만 보이는 말 한 마리와 벽걸이에 옷처럼 걸려 있는 뽀로통한 표정의 카텔란 실물상도 있다. 심각하지 않을 것, 규칙적이고 질서 있는 것들을 배척하며 상상과 자유의 세계를 추구할 것. 카텔란다운 재기가 전시장 곳곳에서 번득인다.모네 드 파리(Monnaie de Paris)는 외관상 소박해 보이는 19세기 건물이지만 내부는 대리석과 신전식 기둥, 거대한 돔과 청동 조명 등으로 실상 화려하기 그지없는 문화재다. 교황이 머물렀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과거의 영광이 번쩍번쩍 빛나는 고급스러운 살롱 가운데 카텔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라 노나 오라(La Nona Ora, 1999)’, 하늘에서 떨어진 바위에 깔린 장 폴 2세 교황의 실물상이 덩그러니 누워 있다. 그리고 바티칸의 돔처럼 우뚝 솟은 천장 아래 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2003년 작품인 ‘북 치는 소년(Sans Titre)’이 교황을 놀리는 것처럼 매 시간마다 북을 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교황을 지켜보는 것 같기도 하고 관람객을 구경하는 것 같기도 하니, 그야말로 작품을 관람하는 작품인 셈이다. 의 미니미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카텔란의 복제, ‘미니미(Mini-me)’ 역시 마찬가지다. 작은 인형 사이즈로 축소된 카텔란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 위에서 실물 사이즈의 비둘기들과 함께 관객들을 구경한다.대리석 벽난로 위에는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린 카텔란의 흑백 초상 사진, ‘Lessico Familiare’(1989)가 관람객을 응시한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인,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묻는 듯 바닥을 뚫고 나온 카텔란, 장례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는 두 명의 카텔란, 전시장은 그야말로 카텔란으로 가득하다. 아티스트의 존재감을 이보다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전시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그리고 그 카텔란들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벽을 뚫고 날아가는 말과 대리석으로 만든 시체 형상이되 진짜 시체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작품 등 또 다른 작품을 구경하는 작품이자 관찰자이기도 하다.그리고 그 관찰자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카텔란의 진솔한 자아성찰이다. 학교와 어른들의 억압을 견딜 수 없었던 카텔란은 학창 시절 동급생의 손을 볼펜으로 공격하는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이러한 과거사는 작품 ‘찰리 돈 서프(Charlie Don’t Surf, 1997)’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텅 빈 하얀 책장을 마주하고 있는 이름 모를 소년은 책상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다. 양 손등에 연필이 못처럼 박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니까. 이 장면을 보고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를 떠올리지 않을 한국인이 있을까? 카텔란의 작품들은 지나간 카텔란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경험은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더 깊은 사유의 세계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사유의 끝은 사랑으로 닿는다. 그의 작품들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순간조차 웃음을 잃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우리가 만물 중에 유일하게 웃음으로 죽음을 치환할 수 있는 존재이자 사랑으로 덧없는 인생을 위로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텔란은 외친다. 그 스스로 붙였다는 전시의 제목처럼, Not Afraid of Love, 사랑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년 1월 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