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air Truffle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눈덩이만 한 환상을 키워오며 짝사랑해온 재료가 하나 있다. 트뤼플이 도대체 뭐기에? | 트뤼플,송로버섯,Food

그들 각자의 트뤼플이 있다. 쌀주머니에 조심스레 담긴 트뤼플을 반지 대신 프러포즈 서약으로 받은 누군가에게 그것은 로맨스다.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하루 1백 그릇 넘는 어란 파스타를 만들던 요리사에게 트뤼플은 주문이 뜸한 귀하고 비싼 버섯일 뿐이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에게 트뤼플은 책상 위에 올려두고 바라보며 시를 쓰곤 했던 영감의 촉매였다. 그걸 찾으러 다니는 채집꾼에게 트뤼플이란 깊은 땅속에 묻혀 있는 돈이다. 을 쓴 브리야사바랭에게 트뤼플이란 “여성을 더 부드럽게 만들고 남성을 더 온화하게 변화시키는” 천연 강정제다.그렇다면 나에게는? 환상이었다. 짝사랑하는 남자처럼 간절히 원해도 마주치기 쉽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좋아지는 아득한 존재. 너무 갖고 싶어 올인했던 적도 있다. 맛깔스럽게 설명하는 누군가의 트뤼플 축제 경험담에 혹해, 귀를 팔랑거리며 잔액이 얼마 남지 않은 신용카드 한도를 늘려 밀라노행 비행기 티켓부터 지르고 봤으니 말이다.송로버섯으로 불리는 트뤼플은 우리나라에서 자라지 않는 품종이다. “트뤼플은 신선한 토양과 충분한 비를 필요로 하죠. 만약 그해 기후가 너무 더우면 잘 자라지 못해요. 맛도 덜하고요.” 이탈리아 북부 지역인 피에몬테 식물환경전문기관 농학자의 말이다. 물론 트뤼플은 국내에도 수입되는 식재료다. 아주 소량으로 비싸게. 그래서 이탈리아 현지에 직접 가서 호방하게 양껏 트뤼플과 바롤로 와인에 취하겠다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었다. 그렇게 매달렸는데 결국 이루지는 못했다. 딱 작년 이맘때쯤의 해프닝이다.이탈리아 화이트 트뤼플은 가을에 채취한다. 브리야사바랭이 ‘식탁의 다이아몬드’라 정의한 화이트 트뤼플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2014년 1.8kg 정도의 거대한 트뤼플이 뉴욕 소더비스 경매에서 약 6만 달러에 판매된 기록이 있다. 흰 버섯 채집은 10월을 기점으로 12월까지 계속된다. 트뤼플 강국 이탈리아가 ‘땅속 다이아몬드’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매해 평균 4억 유로로 추산된다. 그런데 지난 25년간 트뤼플을 생산할 수 있는 삼림지대가 3분의 1 가까이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 최근 이에 경각심을 가진 이들은 ‘Breathe the Truffle’이라는 구호를 외치거나 ‘Save the Truffle’이라는 캠페인을 펼치며 크라우드 펀딩으로 1만 유로에 가까운 트뤼플 보호 기금을 모았다. 트뤼플은 단순히 돈으로만 환산되는 재화는 아니다. 그들만의 문화유산이자 일 년 가운데 기다려지는 이벤트이다. 화이트 트뤼플의 명산지인 알바에서는 10월 첫째 주 일요일부터 트뤼플 축제가 열린다. 책 에 보면 마차와 당나귀가 줄지어 등장하고 사람들이 진귀한 화이트 트뤼플을 들고 행진한다. 거기서 오래 살던 지인이 말하길, 길거리 상인에게 즉석에서 트뤼플을 구매해 레스토랑에 들고 가면 주문한 음식 위에 슬라이스해서 뿌려주기도 한다고. 구글에 ‘Alba White Truffle Festival’이라고 검색하면 사람들이 버섯을 들고 킁킁거리며 활짝 웃고 있다. 트뤼플에 빠져들게 된 결정적 장면이다.이탈리아 여행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친한 선배가 받았다는 그 프러포즈의 한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 를 방구석에서 심드렁하게 돌려보는 것이다. 화이트 트뤼플 오일에 이틀 지난 식빵을 쿡쿡 찍어가며. 송로버섯 농장을 운영하다 우연한 기회에 대통령의 요리사가 된 오르탕이 이런 대사를 읊는 순간엔 스페이스 바를 탁 하고 눌러 화면을 정지시킨다. “아침 일찍 개와 산책 나와서 숲속을 걸으며 땅 냄새를 맡는데, 갑자기 개가 흥분해서 여기저기 킁킁대죠. 거기, 바로 나무 밑에 완벽함이 있어요. 기적이죠!”트뤼플과의 밀당에서 튕겨나간 내가 대안으로 선택한 건 SG다인힐이 지난 9월 한 달 동안 개최한 ‘다인힐 트뤼플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축제처럼 트뤼플을 원하는 만큼 즉석에서 구매해 자신이 선택한 메뉴에 자유롭게 뿌려 즐기는 미식 이벤트다. 신사동 ‘오스테리아 꼬또’로 향해 먹물로 반죽한 탈리올리니 파스타를 주문했다. 보석함 같은 유리관 안에 그저 단단한 돌멩이처럼 보이는 트뤼플이 담겨 있었다. 흰 장갑을 낀 남자가 저울에 5g을 재서 사각사각 얇게 갈아 파스타 위에 소복이 얹어주었다. 허브와 오일로 마리네이드한 통통한 킹크랩 위로 블랙 트뤼플이 나비처럼 내려앉는다. 상상이 입안에서 서서히 녹아내린다.사실, 트뤼플은 더 이상 특별하고 진귀한 재료는 아니다. 이미 국내 다수의 호텔, 레스토랑, 심지어 ‘소프트리’나 ‘베이커리 룰루스’ 같은 디저트 숍에 트뤼플 아이스크림이 등장했을 정도로 외식 업계 저변으로 트뤼플이 뿌리를 뻗고 있다. 파크 하얏트 서울의 슈테판 헤야트 셰프는 이렇게 말한다. “트뤼플을 잘 음미해보면 견과류나 나무 같은 맛이 납니다. 블랙 트뤼플이 더 부드럽고 연하다면 화이트 트뤼플은 강한 흙냄새와 톡 쏘는 듯한 맛을 지녔어요. 개인적으로는 파스타나 리소토, 달걀 요리에 갈아서 넣어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심플한 요리에 트뤼플로 약간의 터치만 줘도 전혀 새로운 요리가 되죠.” 그가 주방을 지키는 ‘코너스톤’에선 이탈리아 북부 몬차 지역의 레시피로 만든 ‘블랙 트뤼플 통밀 펜네’ 파스타를 맛볼 수 있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의 ‘스카이라운지’에서도 11월 30일까지 피에몬테 특선 코스를 선보인다. 8개 코스로 이뤄진 기나긴 여정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트뤼플과 포르치니를 채운 한우에 바롤로 와인으로 만든 소스를 곁들인 요리다. “트뤼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고 불규칙한 결이 보여요. 씹으면 사르르 부서지죠. 구수하고 기분 좋은 자연의 향이 식욕을 자극합니다. 트뤼플 요리에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 와인을 곁들이면 가을 최고의 마리아주죠.” 원대영 셰프의 설명이다.서울신라호텔 바 & 라운지 ‘더 라이브러리’에는 크래프트 맥주와 트뤼플 피자 페어링 메뉴가 있다. 포르치니, 양송이 등 다양한 버섯을 다져서 크림과 함께 끓인 소스를 도우 위에 뿌리고 트뤼플 슬라이스를 솔솔 뿌린 피자를 청량한 에일 맥주와 함께 즐길 수 있다. 한남동의 핫 플레이스 ‘오만지아’에 가면 피자 한 판 위에 트뤼플을 터프하게 올린 ‘타르투포(Tartufo, 트뤼플의 이탈리아 발음) 피자’를, 청담동 ‘스코파더쉐프’에선 트뤼플 페스토를 넣은 파스타나 리소토를 주문해보는 것도 트뤼플에 입문하기 좋은 선택! 여름과 겨울마다 트뤼플 코스 메뉴로 식도락가들을 즐겁게 해준 압구정 ‘톡톡’의 시그너처 메뉴인 트뤼플 파스타를 주문하려거든, 일정 금액을 추가하고 테이블 위에서 즉석으로 뿌려주는 트뤼플 세례를 흠뻑 받아보는 건 어떠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