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은 혼자 다 한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어째 이 불쌍한 것을 이렇게 모지랍스럽게 쌂아분다냐. 얌전히 있는 것을 끄집어 올려, 패대기쳐, 불로 쌂어, 빤스 뱃겨, 아이고 불쌍한 거." - <홍합>, 한창훈 | 홍합,In Season

가로수길에서 식당 일을 한 적이 있다. 2009년인가 그랬다. 가로수길이 막 망가지기 시작할 때였다. 메뉴 중의 하나가 홍합찜이었다. 밤에 홀이 시끄러워서 나가보니 손님이 주정을 부리고 있었다. “왜 홍합 없냐고. 응. 홍합 내놔.” 어린 여직원들에게 온갖 행패를 부렸다. 나는 이런 꼴을 못 보는데 내가 얼마나 기세등등하게 난리를 쳤는지, 그 망할 손님이 슬쩍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워낙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몰랐다. “내가 뭐라고 하든가요?” “네, 내일 오시면 홍합 한 말 삶아드릴 테니 돌아가세요라고....”그깟 홍합인데 그 손님은 왜 그랬을까. 양식당에는 얼큰한 국물 요리가 거의 없으니 홍합이야말로 해장에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겠지. 떨어졌다니 화가 났겠지. 그리 생각하니 좀 미안한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이름과 전화번호라도 알아두었다면, 지금이라도 불러서 대접할 텐데 싶다. 그깟 홍합이 뭐라고.(고백하자면, 위에 옮겨 적은 글은 아주 순화된 것이다. 홍합을 삶아서... 아가리... 처넣... 아아, 그만하자.)이탈리아에도 홍합이 있다. 한국 것과 아주 비슷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홍합이 바로 지중해 담치다. 듣기로는 서양에서 오는 배 밑바닥에 붙어서 딸려왔다고 한다. 이내 우리 바다에서 주민등록을 받고 살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 온도도 비슷하지, 인심 후하지, 그냥 눌러앉았다.우리가 시중에서 구하는 홍합은 두 가지다. 자연산이냐 양식이냐. 자연산이 바로 토종이다. 학술적으로는 참담치라고 부른다. 양식은 지중해 담치 또는 진주담치라고 한다. 자연산은 당연히 비싸다. 껍데기도 엄청나게 두껍다. 서너 개만 담으면 1kg이 된다. 자연산이라 나는 지역과 계절에 따라 맛도 많이 차이 난다. 자연산이라고 다 맛있는 건 아니다. 내가 가장 맛있게 먹은 건 저 남해 바다 매물도에서였다. 민박을 들었는데 알코올중독 남편을 수발하는 안주인이 해녀였다. 막 바다에서 따온 손바닥만 한 자연산 홍합을 넣고 된장찌개를 끓여주셨다. 홍합 입을 칼로 쩍 벌리더니 살점을 떠냈다. 그러고는 도마에서 몇 토막으로 잘랐다. 아이쿠, 홍합 살점도 해삼처럼 잘라 먹을 게 있구나, 처음 알았다. 포장마차에서 공짜로 주는 작은 양식 홍합밖에 모르던 놈이 누린 호사였다. 나는 그 이후로 아직도 그보다 맛있는 된장찌개를 먹어보지 못했다.지중해 담치라니, 이탈리아에서 당연히 많이 썼다. 한국보다는 좀 비쌌다. 맛은 더 진한 편이었다. 이탈리아에서도 요리에 흔하게 쓴다. 코체(Cozze)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유학하던 여자 성악가에게 들은 말이다. 하루는 동네 가게에 갔더니 먹음직스러운 코체가 몇 자루 있는 게 아닌가. 막 이탈리아어를 배울 때였다. 홍합 1kg 주세요, 하고 이탈리아어로 주문했다.“운 킬로 디 카초 페르 파보레.”주인이 말하기를. “마 메초 킬로그램.(5백 그램밖에 안 돼.)”이 양반이 장난하나. 홍합이 그득 든 자루가 몇 개인데 5백 그램밖에 안 된다는 거야? 주인이 징글징글 웃고 있었다. 우리의 성악가가 발음 실수를 한 것이었다. 코체와 카초는 발음이 비슷하지 않은가. 코체는 홍합이고, 카초는 남자 성기다. 그래서 주인 녀석이 자기 것이 5백 그램 나간다고 아주 저질 유머를 날린 것이었다.한창훈 선생은 한겨레문학상 3회 수상자로 문단에서 유명해졌다. 아주 엽기적인 소설이었다. 이름도 그냥 이었다.“닮아도 참 징하게 닮아으요이. 어쩌면 그렇게 똑같으까이.” 뭐 이런 대사가 연달아 나온다. 실제로 한 선생이 여수의 홍합 가공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전라도 육담이 얼마나 센가. 소설을 읽다 보면 눈물과 웃음으로 얼굴이 번질거린다.그런데 묘하게도 그 홍합이 바로 지중해 담치다. 우리가 흔하게 먹는 바로 그 홍합. 한국은 싸고, 유럽은 비싸니까 그걸 삶아서 냉동하여 수출을 하는 공장이었던 거다. 나는 그 홍합을(한창훈 선생이 가공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에서 많이 사 먹었다. 냉동 해산물 파는 가게가 따로 있는데, 삶은 홍합 살 하나하나에 얼음막을 씌워서 마치 캔디처럼 딱딱한 상태로 팔았다. 전문 용어로 ‘IQF’ 즉, 인디비주얼 퀵 프로즌이다. 삶은 것이지만, 품질이 괜찮아서 홍합 제철이 아닐 때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이 썼다.홍합은 유럽에서 ‘빈자의 굴’이라고 한다. 굴 못지않다. 살이 통통하고 굵기가 제법인 건 입안에 품으면 아주 죽인다. 양식이라도 좋다. 보들보들한 식감에 씹으면 육즙이 뭉클 나온다. 제대로 된 홍합 세 개만 있으면 짬뽕 국물 한 그릇 뽑는다는 이연복 형의 말이 생각난다. 좋은 제철 홍합은 국물도 진하게 낸다. 좀 짠데, 홍합이 안 짜면 수돗물에서 키운 거다. 안 짤 수가 없다. 홍합 짠맛은 파리나 벨기에 여행 갔다 온 분들이 손사래를 친다. 한겨울, 그쪽 날씨가 좀 살을 에이는가. 언 몸 녹이고 맛있는 홍합 국물로 속을 풀려고 레옹 같은 프랜차이즈 홍합찜 집을 들어간다. 주문한다. 웬걸, 국물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다. 코를 박아야 몇 방울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시원하게 국물 좀 훌훌 마셨으면 여한이 없겠는데, 웬 홍합 국물을 저렇게 조려서 내는지 원망스럽다. 그네들이 하는 식으로 빵을 찍어 먹는다. 아, 한국의 홍합은 선물이구나 알게 된다.좋은 홍합은 다른 재료가 별로 필요 없다. 그냥 아무것도 안 넣고 홍합 무게의 절반쯤 되는 물을 넣고 삶으면 된다. 간이 모자라면 조금 조리고, 짜면 물을 좀 더 붓는다. 홍합이 좋으면 다른 향신채를 안 넣어도 된다. 그래도 심심하면 대파나 한 줌 썰어 넣고, 마늘 쪽 딱 두어 개면 족하다. 후추도 고춧가루도 다 사족이다. 홍합은 제 스스로 공부하는 착한 아이다. 남의 도움 필요 없다. 과외도 안하고 자기소개서 첨삭 지도 안 받아도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서 전국 수석 한다. 물론 물 좋은 제철 홍합에 한해서다. 지금이 그 철이다.알 굵은 홍합을 사자면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 현대백화점 같은 데 가면 된다. 그 백화점 생선 코너는 ‘가오’로 먹고 산다. 비싸게 팔되, 수산시장에서 제일 좋은 걸 받아다가 진열한다. 고등어도 한 2만원씩 하는 코너다. 그래 봤자 홍합에 1만원은 못 붙인다. 한 5천원이나 붙일 거다. 남들 사 가기 전에 얼른 집어오자.홍합은 일단 사 오면 그날 먹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려두려면 물에 소금 풀어서 어쩌고 하지 말고, 그냥 마른 채로 두는 게 낫다. 물에 넣으면, 바다인 줄 착각해서 물을 들이켰다가 속은 걸 알고 죽어버린다. 다른 조개도 마찬가지다. 해감이 좀 걱정이지만, 물에 담가두면 빨리 죽는다. 마른 채 사왔으면 그냥 그대로 냉장보관이 최선이다.홍합은 저렇게 백숙해서 먹고, 국물 마시는 게 최고지만, 약간의 요리도 할 수 있다. 토마토소스 넣어 끓이는 거다. 먼저 큰 냄비에 올리브유를 몇 숟갈 넣어 짝짝 갈라지면서 가열되면 마늘을 몇 쪽 으깨 넣는다. 연기를 피우고 마늘 향이 부엌에 꽉 차서 미세먼지 농도가 왕창 올라가고 기침이 나면 그때 잘 씻은 홍합을 넣는다. 주걱으로 몇 번 휘젓고 화이트와인을 조금 뿌린다. 뚜껑을 닫아 최후를 준비한다. 입을 쩍쩍 벌리게 되는데(실은 입이 아니라 옷을 벗은 것이다) 즙을 마구 토해낸다. 그 대목이면 한 80퍼센트 익은 거다. 미리 따뜻하게 해둔 토마토소스를 한 컵 붓고 한소끔 더 끓인다. 파슬리 가루나 바질 잎 두어 장 넣어준다. 빵을 찍어서 먹으면 된다. 매운맛을 내고 싶으면 페퍼론치노나 청양고추를 좀 썰어 넣는다.홍합 자료를 얻으려고 이리저리 검색을 하는데, 1930년대 신문이 나온다. 경성(서울)의 물가 시세인데 홍합 가격이 등장한다. 이때 홍합은 당연히 자연산이다. 물가 시세에 나올 정도면 꽤 많이 먹었다는 뜻이다. 그 시절 홍합 맛은 어땠을까. 그때도 선술집에서 홍합찜을 팔았을까. 오래된 서울 요리 중에 홍합밥이 있는데, 아마 그것이 이런 자연산 홍합을 가지고 요리한 것이었을 듯하다. 참기름 간장 넣어 비벼 먹는 홍합밥. 침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