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Diary] 우리가 일하는 이유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우리들은 일한다.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일 자체가 사치품이 된 시대에 마주치게되는 어떤 기묘한 풍경에 대하여. | talk,힙스터,공유사무실

화요일 오후 3시 반, 공유사무실(Sharing-office) 업체 위워크(Wework)의 뉴욕 브라이언파크 지점 입구에 자리 잡은 커피숍 블루보틀은 한창 달아오르기 직전의 금요일 밤 클럽 라운지와 다르지 않은 분위기다. BPM 130 근처를 왔다갔다하는 하우스 테크노 음악과 진한 커피 향을 배경으로 한편에는 능숙한 손놀림의 바리스타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커피잔을 든 채 무해한 말들을 주절거리는 20~30대 남녀 손님들이 있다. 관광객, 회사원, 무직자들이 혼재된 그 무리의 공통점은 멀끔한 옷차림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굳이 베스트드레서를 꼽아보자면 회원 전용 입구로 향하는 위워크 회원들일 것이다.창 너머 보이는 위워크 전용 라운지에는 근사한 피트의 무지 티셔츠를 걸친 남자 둘이 뭔가에 싫증난, 혹은 따분한 표정으로 맥북을 가지고 놀고 있다. 그들은 물론 오래 머물지 않고 다시 사무실 쪽으로 향한다. 최저가 옵션이 한 달 4백50달러인 위워크 브라이언파크 지점에는 아쉽게도 남은 자리가 없다. 옐프(Yelp)에서 어떤 리뷰어는 말한다. “라운지가 너무 시끄러워서 일을 할 수가 없다.” (라운지가 아닌 공간에서 일하려면 최소 1백 달러를 추가해야 한다.)너무 시끄러워서 일을 할 수가 없다. 사실 이 불평은 맨해튼 전체에 적용될 수 있다. 맨해튼은 너무 시끄러워서 도대체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도시다. 도서관의 리딩룸들은 ‘독서하는 인간’이라는 지난 세기의 골동품들을 사진 찍어대는 관광객들 혹은, 유모차 속 떠나가라 우는 애들로 점령되어 있다. 쓸 만한 카페는 종일 붐비고, 카페를 꽉 채운 사람들은 스타트업이라든지 오가닉,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 대해서 떠들어댄다. 결국 진짜로 뭘 좀 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인터넷을 뒤지게 되고 그러면 거기 뜻밖에 지상천국으로 보이는 뭔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게 바로 위워크로 대표되는 공유사무실 업체들이다.글을 쓸 장소를 찾지 못해 짜증이 폭발 직전이던 지난 초봄, 나도 그런 업체 중 하나에 거의 낚였다. 신용카드 번호를 다 적고, 클릭 한 번만 남긴 채로, 전자파에 너무 많이 노출 당해 너덜너덜해진 머리로 ‘하지만,’ 하고 가까스로 생각했다. 지금 난 최신 약장수에게 당하고 있는 걸까? 창조, 가능성, 만남, 자유, 미래, 네트워크... 공유사무실 업체들의 홈페이지는 이런 말들로 뒤범벅되어 있다. 하지만 자꾸만 내 앞을 가로막는 이미지들은, 논현동 한복판에 자리 잡은 다단계 업체 사무실, 실장님의 지나치게 멀끔한 옷차림과, 혹은, 신림동에서 시작되어 서울을 먹어버린 고시원이었다.돈을 내고 일한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일도 돈을 내고 해야 한다. 왜? 지금 시대에는 일 그 자체가 사치품이기 때문이다. 영화, 음악, 패션 같은 것은 이제 흔해빠졌다. 진짜 멋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일’에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IT 일. 스냅챗 같은 걸 만드는 것. 최근에 봤던 힙스터 완전체 같던 인간들은 죄다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에어비앤비 본사와 옐프 본사 사이 어딘가를 어슬렁거리고 있지 않았던가. 쟤는 어디에서 일하지? 옐프? 페이스북? 스냅챗? 어디든 상관없다. 어디든 멋지니까.“내가 이 년 정도 일했던 소프트웨어 업체 허브스팟(Hubspot)에서는 해고를 ‘졸업’이라 불렀다.” 의 저자 댄 라이온스(Dan Lyons)는 에 기고한 스타트업 문화에 대한 칼럼에서 그렇게 적었다. 그 업계에서 해고는 졸업이고, 재취업은 모험이다. 노동이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너무나도 만화 같은 묘사라서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무슨 지상천국 같은 것이 캘리포니아의 어느 계곡에 진짜 펼쳐져 있는가 싶다. 위워크는 그 천국의 계곡에서 내어놓은 최신 흥행작이다. 천국같이 꾸며진 근사한 사무실에 다 함께 모여 세계를 뒤바꿀 엄청난 뭔가를 내놓자는 얘기다. 하지만 그 유혹은 솔직히, 강남에 있는 XX학원에 모여 공부하여 최고의 명문대에 가자는 속삭임하고 같은 선상이 아닌가? 나쁘다는 게 아니고, 승자는 거기 없을 거라는 얘기다. 남은 것은 최신 유행을 따르는 돈 좀 있는 멍청이들. 멀끔하게 차려입고, 뭔가 좀 하는 듯한,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오백 달러짜리 고시원에 출근하여, 비츠(Beats) 와이어리스 헤드폰을 낀 채 게임에 몰두하는....물론 거기에도 정말 뭔가 하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도 6년 전에 한 소설을 동베를린에 있는 공유사무실 업체의 1층 라운지 카페에서 완성했다. 매일 무거운 컴퓨터를 짊어지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그곳에 갔다. 38°C의 무더위에 묵묵히 고행하듯이. 아메리칸어패럴 원피스를 입고, 오테커(Autechre)의 신상 앨범을 들으며, 맥북을 두드리는 내가 스스로 꽤 멋지게 느껴졌다. 트위터도 좀 하면서. 결과는 뭐 그냥 그랬다. 원래 힙하다는 게 그렇고 그렇다는 뜻인 걸 그때 깨달았다.한없이 취약한 요즘의 젊은이들이 왜 ‘일 좀 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유행에 빠져들었는지 충분히 알 만하다. 엄마, 아빠, 삼촌, 이모, 죄다 꽉 막히고 영원한 직업을 가졌던 때라면 그들은 아마도 ‘누구보다 백수건달처럼 보이기’ 유행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나야말로 정규직과 아무 상관없는 세계에 살고 있고, 멀쩡한 일에 대한 엄청난 환상을 갖고 있다. 이따금 평일 오후 애매한 시간 시내 냉면집에서 아저씨들 틈에 끼어 앉아 있을 때면 안절부절 못한다. 아무한테라도 전화를 걸어서 런던과 베이징과 뉴욕에 사무실이 있으며, 우버의 창업을 도운 아이비리그 출신의 가상의 친구에 대해서 떠들고 싶다. 요즘은 다들 비슷한 심정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