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맨 홍종현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생애 첫 악역으로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의 극적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는 배우 홍종현. 그가 만들어낸 바람의 파장이 거칠지만 고요하게 퍼지고 있다. | 인터뷰,홍종현,배우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을 거라는 문장을 다음과 같이 바꿔보고 싶다. 홍종현의 아이라인이 조금만 두꺼웠다면 SBS 드라마 시청률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시청률 저조로 월화 드라마 틈 사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이 드라마가 왕요(홍종현 역)의 광기 어린 반란을 계기로 시청률 추이가 달라지고 있다. 권력을 쟁탈하기 위한 야성적인 황자들 사이에서 그는 가장 악랄한 역으로 분한다. 눈꺼풀 아래 위를 꼼꼼히 메운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 반짝이는 금 귀고리 한 쌍, 그리고 최근엔 무성하게 자라난 턱수염까지. 두 시간에 가까운 분장 과정을 거쳐 희대의 악역 ‘왕요’라는 캐릭터가 완성된다. “아이라인을 그리고 처음 거울을 봤을 땐 이상했어요. 그런데 드라마 중반부를 넘어가니까 오히려 그리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어색하더라고요.(웃음) 착해 보이는 얼굴은 왕요 같지 않거든요. 살면서 언제 이렇게 소리 지르고 못되게 굴어볼까 싶은 마음으로 악역의 디테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학창 시절 날카로운 눈은 그에게 콤플렉스였다. 그러나 배우로서 그 눈은 훌륭한 도구가 된다. “어릴 때 저는 조용하게 학교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눈 때문에 오해를 많이 샀어요. 가만히 있어도 와서 시비를 걸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와서는 이런 제 눈이 너무 좋아요. 여러 감독님을 만나면 눈빛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거든요.” 2008년 데뷔 이래로 홍종현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첫 악역에 도전했다. 장황한 대사 없이 눈빛과 표정을 통해 분노와 욕망을 표현해야 하는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았으나 도리어 몸에 잘 맞는 수트를 입은 듯 이 드라마를 통해 ‘재발견’이란 수식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동안 차갑고 시크한, 흔히 말하는 도시 남자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어요. 어떤 분야든 경력이 쌓이다 보면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게 되잖아요. 그렇게 편하게 안주하다 보면 뻔한 느낌의 배우가 되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항상 해왔어요. 요즘 욕을 해주는 분이 많아서 제가 지금 잘하고 있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시청자 게시판을 모니터링해보니, 왕요가 ‘독약을 먹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막무가내 유형부터 ‘이듬해 3월에 죽었다’는 역사적 기록을 꺼내 든 학구파 유형까지, 패륜아적 인물을 개탄하는 아우성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악의 지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드라마의 파장은 선한 방향으로 커진다. 이 드라마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날, 왕요는 고려 2대왕 혜종을 죽이고 황제가 되었다. “왕요는 결벽증이 있어서 누군가를 죽일 때도 꼭 자기가 하지 않고 뒤에서 음모를 꾸미죠. 액션 연기를 위해 나름의 준비를 좀 했는데 칼싸움보다는 멀리서 활을 쏘고 도망가는 인물이라 제대로 된 액션 연기를 보여드릴 장면이 별로 없었어요.(웃음).” 드라마는 초반부터 남자 배우들의 상의 탈의 장면을 불쑥 들이밀며 뭇 시청자들을 느닷없이 설레게 했다. 이날 화보 촬영장에서도 스태프 모두의 시선을 대동단결시킨 홍종현의 복근은 그렇게 화면과 지면으로 두 번 공개되었다.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엔 몸이 정말로 말랐었어요. 60kg 초반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몸이 싫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살도 좀 찌우고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우니까 체중이 70kg 가까이로 늘었어요. 그런데 이번 드라마를 찍으면서 신경도 많이 쓰고 스트레스도 받으니까 아무리 야식을 먹어도 오히려 살이 다시 빠져버렸어요.”홍종현은 지난겨울부터 올 초여름까지 전국을 돌며 드라마를 찍었다. “서울에서 찍은 장면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감독님이 새로운 장소를 찾기 위해 사전에 헌팅을 오랜 기간 다녔다고 들었어요. 이천, 나주, 평택 전국을 돌았고, 심지어 섬에 들어가서 찍은 장면도 있어요.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었어요.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는 디테일한 장면 하나하나도 공부하고 연습했을 정도로 공을 많이 들였어요.” 드라마 방영 전 제작발표회에서 김규태 감독은 홍종현을 두고 ‘가장 큰 수확’이라 표현하며 그의 활약을 예고한 바 있다. “감독님이 말씀하길 다른 사람들은 정보가 있고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데 저에겐 약간의 물음표가 있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촬영이 끝나고 나서 저를 두고 ‘새로운 발견’이란 말이 떠오른다고 해주셔서 배우 생활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만들어주셨어요. 그 한마디가 앞으로도 연기하는 데 있어서 원동력이 되어줄 것 같아요.” 여전히 ‘라이징 스타’처럼 신인의 풋풋함이 있는 홍종현은 사실 데뷔한 지 8년 차에 접어든 배우다. 스포트라이트를 확실하게 받는 중심보다는 단역과 조연을 구분하지 않고 주변에서 한 계단 씩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소위 말해 한 방에 떠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여러 가지 시기와 운이 맞아야 하는 거고 제 의지로 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배우라는 직업은 저를 필요로 하는 역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으로 시작한 일이에요. 제 생각보다는 더 열심히 차근차근 해왔기 때문에 한편으론 스스로 대견한 부분도 있어요. 아마 데뷔 이래로 지금까지 쉬어본 기간이 두 달도 없을걸요? (웃음)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이니까요.”사전 제작으로 드라마 촬영을 이미 끝마친 요즘, 홍종현은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시기를 오랜만에 보내고 있다. 혼자 독립된 공간에서 지내는 그는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냥 보통 남자처럼 살아요.(웃음) 거실에 소파랑 TV처럼 딱 필요한 것만 놔두고 살고 있어요. 평소에 친구들이 어디 다녀와서 좋다고 하면 호기심이 생겨 새로운 카페나 바에 가보기도 하고요.” 남산 야경이 한없이 가깝게 느껴지는 이태원 우사단로 피맥 가게 ‘UPP’는 그의 페이버릿 플레이스. 의 MC로 활약 중인 덕분에 요즘엔 차를 타는 것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강원도 인제나 태백에 있는 서킷 트랙에서 마음껏 달리면 스트레스가 완전히 풀려요. 자동차 레이싱을 즐기는 것에 대해 돈이 많이 든다는 편견이 있을 수 있는데 제 생각엔 정말 비싼 차를 제대로 타지 못하는 것보다는 차종에 관계없이 누구보다 빠르게 잘 타는 사람이 더 멋져 보여요.”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천만원을 선물로 준다면? “타이어를 아주 많이 사서 트랙 위에서 차만 타다 오고 싶네요.”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알고 보면 홍종현은 저축을 즐기는 성실하고 착실한 청년이다. 그가 그려본 서른, 마흔의 모습이란? “막연하게 생각해보면 멋진 남자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주는 그런 사람? 어쨌거나 모두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데, 지금부터는 잘 늙어가고 싶어요. 배우로서도, 그리고 사람으로서도.”https://instagram.com/p/BL_YtNCgG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