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EN IN SUIT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당당한 카리스마로 빛나는 이번 시즌 수트의 특별한 매력. | BAZAAR,바자

1990년대의 커리어우먼에게 수트는 ‘프로페셔널 아머(Professional Armor)’, 즉 갑옷과 같은 상징성을 지녔다. 그리고 수트를 통해 페미니즘을 담아내거나 애써 남녀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이 구태의연하게 느껴지는 오늘날에도 수트의 파워풀한 매력만큼은 유효하다. 페미닌한 실루엣을 가두는 단조로운 라인, 모노톤의 컬러에도 여성성을 잃지 않는 수트는 쉴 새 없이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도 고고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시즌 런웨이를 장식한 수트의 향연 속에서 머릿속을 스친 것은 1990년대를 풍미한 스타일 아이콘 줄리아 로버츠였다. (영화 내에서나 실제로나) 단숨에 신데렐라로 등극할 만큼 매력적인 스타일을 보여준 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의상은 발랄한 비비안이 성숙해져가는 과도기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코럴 컬러의 수트였다. 그런가 하면 요리평론가로 분한 속 그녀는 남자친구의 옷을 빌려 입은 듯한 수트 차림으로 깜찍한 캐머론 디아즈에 밀리지 않는 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큰 키에 겅중겅중한 걸음이 매력적인 줄리아 로버츠의 시그너처 스타일을 꼭 닮은 수트가 등장한 것은 ‘아메리칸 럭셔리’를 대표하는 랄프 로렌 컬렉션. 남성 수트의 대표적인 요소인 플래드 체크 패턴과 직선적인 라인, 넥타이로 구성된 정중한 수트의 등장은 랄프 로렌이 추구하는 클래식한 아름다움의 집약체였다. 더블버튼 재킷과 고급스러운 패턴의 랄프 로렌 수트가 전통적인 테일러드 수트를 표방한다면, 미니멀한 매력을 강조한 질 샌더와 라메르 컬렉션의 수트는 우아한 이탤리언 수트와 닮아 있다. 특히 깊은 V 존과 간결한 라펠의 투 버튼 싱글 브레스트 수트는 넓은 어깨선, 완만한 허리 라인으로 여유롭지만 절도 있는 이탈리아 남부의 수트를 연상시킨다. 앞서 말한 수트가 전형적인 남성복 수트의 형태를 그대로 빌려왔다면, 구조적인 실루엣을 극대화한 발렌시아가 수트는 고전적인 수트를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했다. “현대 여성들이 어떻게 고리타분한 투피스 수트를 소화할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몇 달간 크리스토벌 발렌시아가의 아카이브를 연구했다는 뎀나 바잘리아는 볼륨 있는 어깨 패드와 허리선을 강조한 플란넬 소재의 수트로 브랜드 고유의 드라마틱한 조형미를 담았다. “모든 것은 자세와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크리스토벌의 전통적인 테일러링에 오늘날의 우아함을 더하고자 노력했지요.” 과감한 컷아웃과 흥미로운 액세서리의 매치 역시 뎀나만의 클래식을 정의한다. 해체주의적인 베트멍의 수트, 아방가르드한 자크뮈스의 수트처럼 과감함으로 압도하는가 하면, 페미닌한 요소의 주입 역시 눈에 띈다. 화려한 시퀸, 센슈얼한 실크 소재의 이너를 레이어링하거나 장식적인 브로치, 구조적인 액세서리를 매치하는 것처럼. 하지만 대부분의 룩(구찌 정도를 제외한다면)이 청키한 굽의 앵클부츠나 클래식한 로퍼로 마무리되었다는 것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니시한 터치, 절도 있는 애티튜드야말로 수트 스타일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의도적인 섹슈얼리티를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수트가 지닌 역설적인 여성스러움과 가장 동시대적인 스타일링의 비결인 것이다. 에디터/ 이지민